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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Aug 28. 2021

비열한 선택이 이끄는
‘현실이라는 섬’에 갇히기 싫다

[단비글] ‘섬’

섬에 갇힌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다시 취업준비생이 된 나는 계획표를 지키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 이틀이면 꽤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함을 느끼지만, 기간이 길수록 고독과 답답함은 커져만 간다. 고독을 해소할 방법으로 일탈을 하기로 결정했다. 평소에 버킷리스트로 써놓은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등 색다른 경험을 꿈꿨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포기가 쉽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안부 인사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일탈’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는 내가 해보지 않았던 소개팅이나 해보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안면도 모르는 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탈보다는 봉사에 가깝다고 생각해, 단칼에 거절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앞에 그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청년사업가였다. 사업가라는 직업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아마도 그의 사회적 배경이 있어서인가. 그는 강남 8학군에, 민사고에, 미국에서 대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또, 미국에서 유명한 금융기관에서 1년이나 재직했단다. 나도 모르게 ‘젊은 나이에 대단하다. 나는 뭐했지?’라는 말이 툭 나왔다. 이후, 그는 내가 물어보지도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부지원금 일부 금액으로 비트코인을 해서 커다란 이득을 봤고, 그 돈을 종잣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해 강북 빌라 한 채도 샀다고 자랑하듯이 말했다. 순식간에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말하는 요행을 잘 이용한 삶이었다. 


이제 그가 내게 질문을 한다. 너는 직업이 뭐였니/ 취업 준비를 왜 다시 하는 이유 / 모아둔 돈은 있나/ 하고 있는 재테크/ 앞으로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할 거니. 나는 처음에는 당황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나의 인생에 관심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였다. 이후, 따라오는 감정은 미묘했다. 그동안 남들보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자긍심 하나로 지내왔는데, 내 선택과 거기에 따른 삶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비춰질까를 보게 됐다. 물론 자랑할 만한 결과물이 없어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 순간, 오늘 아침밥을 퍼주시던 어머니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꿈보다 현실을 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나랑 동갑인 엄마 친구 딸은 꿈보다 현실에 순응해서 공무원이 됐고, 10억 이상의 신도시 아파트 1채와 멋진 남편을 가졌다는 잔소리였다. 두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현실이나 환경과 타협한다는 이유로 미래 가능성과 선택의 자유를 회피하고 책임을 미루지 말자는 마음이 들었다. 사르트르는 자기기만에 사로잡힌 비열한 자가 되기 싫다고 생각해 ‘행동하는 지성인’의 삶을 살지 않았는가.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했고,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을 반대하는 운동도 했다. 소개팅남이나 엄마 친구 딸은 젊은 나이에 십억 이상을 가진 중상층이 됐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이 맞고 틀리고는 평가될 수 없다. 또, 지금 꿈을 위해 노력하는, 내 인생도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 없다. 단지 내가 세상 탓을 하며 꿈을 포기하는 사람이 된다면, 평가는 달라지는 것이다. 비열한 선택이 이끄는 ‘현실이라는 섬’에 다시 갇히게 되는 꼴이니까. 나는 그 섬에 갇히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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