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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어바웃 Sep 07. 2022

마을 놀이터를 만들고 있어요.

서울특별시 | 박현정(북촌탁구)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tambang.kr / @tambang.kr



Interview | 북촌탁구 박현정(북촌 홍반장)님과의 인터뷰


운동 좋아하세요? 요즘 운동 후에 인증사진을 찍고,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해시태그를 다는 것이 인기라고 해요. 운동크루나 체육관 친구도 많아졌고요. 헬스장이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저에겐 #오운완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동네에 좀 더 재밌는 체육관은 없는 걸까요? 놀다 보면 땀이 뻘뻘 나고 건강해지는 놀이터처럼요.


한옥마을로 알려진 북촌에 제가 찾던 곳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 달려갔어요. 탁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벽화가 화려합니다. 탁구를 하는 동물들, 악기를 연주하는 동물들, 뛰어노는 동물들. “탁구장이 맞겠지?”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 칠판에 “탁구장 맞아요"라는 글귀와 핑-퐁- 핑-퐁- 탁구 하는 소리가 저를 안심시킵니다. 아담한 지하 탁구장에서는 한창 레슨이 진행 중이네요. 주변을 둘러보니 탁구라켓 옆에 기타와 우쿨렐레, 뒤에는 커다란 가수 김광석의 사진, 벽에는 다양한 포스터와 그림들. 오늘의 주인공은 이 신기한 탁구장을 운영하는 박현정님이에요.


신기한 탁구장, 북촌탁구 Ⓒ탐방



탁구장 맞아요.


북촌탁구가 이름만 탁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탁구장 맞아요.(웃음) 문화 공간을 겸하는 탁구장이죠.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문화 공간을 염두에 두었어요. 탁구대는 접었다 폈다 하는 활용성이 있으니까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사실 전문 탁구장은 탁구대를 절대로 안 접어요. 접을 일도 없고 공이 들어가지 말라고 스커트로 아예 막죠. 근데 생각해보면 그때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월례대회라든가 시합을 하고 난 뒤, 탁구대를 식탁으로 만들어 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었거든요. 탁구대는 여러 가지 용도가 있는, 유연한 물건인 거죠.


처음에는 공연 공간으로만 생각했어요. 문을 연 2018년 1월부터 공연을 시작했으니까요. 제가 음악을 원체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탁구장을 운영해 보니 북촌에 아이들이 꽤 많더라고요. 탁구장에 아이가 오면 보통 엄마가 함께 와요. 그렇게 엄마들과 친해졌죠. 그 엄마들이 아이들에게는 지출하지만, 본인에게는 지출하지 않아요. 문득 엄마들을 운동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는데 마침 친한 동생이 매트 필라테스 자격증을 취득한 거예요. 이 친구도 그룹 레슨을 하고 싶어 하고. ‘그래, 잘 됐다!’ 하며 북촌탁구의 아침 필라테스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렇게 북촌탁구에는 점점 다양한 활동이 생겨났어요. 동네 산책이라는 노래도 만들고, 마을 사람들과 뮤직비디오도 만들었죠. 기타 선생님과 오카리나 선생님도 계세요. 탁구대에 테이블보를 깔고 수업을 하죠. 저는 북촌을 누구나 1인 1악기를 할 수 있는 마을로 만들고 싶어서 ‘북촌클라스’라는 문화예술단체를 만들기도 했어요. 조금은 특이한 탁구장인가요? 그래도 북촌탁구는 탁구장이 맞아요. (웃음)


그래도 북촌탁구는 탁구장이 맞아요. Ⓒ탐방


사실, 이전에도 탁구장을 운영했었어요. 100평 면적에 회원도 한 80명, 코치도 3명이 있는 꽤 규모 있는 탁구장이었죠. 그런데 엄마가 항암 투병을 하시게 되었고, 그다음엔 제가 아팠죠. 연달아 안 좋은 일이 겹치다 보니 상실감, 박탈감이 가득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탁구장을 닫게 되었죠. 그러던 중 서울시 50+ 재단의 홍보물을 보게 되었어요. 한 글귀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죠. ‘조금은 다른 삶에 용기를 더하는’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쫙- 있었던 거죠. 바로, 전화해서 운 좋게 들어갔어요. 당시에 저는 50대가 아닌 40대였거든요.(웃음) 그렇게 인생학교 1기생이 되었답니다. 인생학교에서 많은 배움이 있었고, 다양한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아요.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지만, 그냥 탁구장을 하고 싶지는 않았죠. 탁구도, 회원들도 좋았지만, 제 안에 있는 문화 예술적인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거든요.



확실히 살고 있으니 ‘북촌 사람'이 되더라고요.


북촌은 저에게 꽤 익숙한 동네예요. 김광석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둥근소리’ 덕분이죠. 모임 분들이 여기에 많이 살고 있다 보니 북촌에 자주 오게 됐죠. 둥근소리 모임은 보통 밀과보리라는 식당을 통째로 빌려서 진행했어요. 그곳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다 보니 식당 주인과 친해졌죠. 동갑이고, 김광석을 너무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었거든요. 북촌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식당을 하는 친구가 있다 보니 굶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북촌에 오게 되었달까요? 실제로 제가 여기로 이사 올 때 그 친구가 산해진미 한 상을 딱- 차려주기도 했어요(웃음).


북촌탁구의 문을 열고 한 2~3년 뒤에 북촌으로 집을 옮겼어요. 생각보다 꽤 늦었죠? 아침에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갈 때는 친구들이랑 술 한잔을 걸쳤으니 택시를 타고 갔죠. 교통비를 무시할 수 없더라고요. 무엇보다 필라테스 레슨은 아침 일찍 하니 출근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북촌으로 이사를 했어요.


확실히 살고 있으니 ‘북촌 사람'이 되더라고요. 출퇴근할 때는 아는 사람만 알았어요. 마을을 자주 돌아다니지도 않았고요. 이곳에서 살게 되니 보이는 것들과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더 넓어지더라고요. 어르신들은 애들을 가끔 데려다주러 오시거나 이런 것 말고는 지하 세계로 내려오지 않으시죠. 그런데 여기에 살면서 길에서 만나게 되고 먼저 말도 걸어주시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처음 제게 건넨 말씀이 “우리 집에 방 나왔는데 누구 들어올 사람 있는지 알아봐 줘.”였고요(웃음). 제가 동네의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와 친하니까 말씀하신 거죠. 그때부터 ‘북촌 홍반장’이 되었답니다. 이제는 시계 건전지를 갈아드리고, 책상도 옮겨드리죠. 어르신들에게 뭘 해드리고 싶어도 마땅한 경로가 없었는데, 살게 되니 그런 걸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럴 때, 마을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전에도 여기에 오면 북촌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그때부터 ‘북촌 홍반장’이 되었답니다. Ⓒ탐방


어느 날 어르신이 시계 건전지를 바꿔 달라고 하셔서 갔어요. 혼자 살고 계시다 보니 외로우셨는지 종이 앨범을 꺼내서 보여주시더라고요. 한 권을 보고 이제 일어나야겠다 싶었는데, 한 권을 또 가져오시더라고요(웃음). 정말 일을 하러 가야 해서 마지막 한 권은 못 보고 일어났어요.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예술인 팀 예벤저스(예술인 어벤져스, 현정님이 붙인 이름이다)를 만났을 때 어르신들을 위한 무언가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걸 계기로 <어르신 사진 교환전>을 열었어요.


어르신이 사진을 가지고 오시면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동안 장갑을 낀 전문가가 사진을 소중하게 다루면서 디지털 사진으로 변환해서 핸드폰에 담아드리는 행사였죠. 어르신은 사진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해주시고요. 맞아요(웃음). 명품이나 보석 다룰 때처럼 어르신의 사진을 조심히 만졌죠. 그 역할을 했던 예술가가 연극을 하시는 분인데 정말 최고였어요. 어르신과 저, 그리고 더 어린 세대들까지 서로 더 가까워지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참여하신 예술가들도 너무 좋아하셨고요.


어르신 사진 교환전 Ⓒ탐방


북촌탁구라는 공간이 참 고마워요.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북촌이라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니까요. 예를 들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출연하는 ‘아무연주대잔치’가 그렇죠. 출연진만 해도 족히 30명이 되는 대형 공연이에요.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만들죠. 탁구장인지, 공연장인지, 연습실인지 명확하지 않은 이런 공간이니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전 북촌탁구를 더 유연하고 다양하게 사용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마을, 북촌을 더 발견하고 알릴 거예요. 지금도 예벤져스와 재미난 일을 준비하고 있죠. 한 10월쯤, 계동길을 놀이동산으로 만들려고 해요. 탐방도 와서, 계동 빅3 이용권 꼭 이용해 보세요(웃음)


우리 마을, 북촌을 더 발견하고 알릴 거예요. Ⓒ탐방


인터뷰를 마치고 현정님이 평소 좋아하는 장소인 북촌서재에 함께 갔어요. 도보로 3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는데, 그 사이에 현정님과 인사를 나누는 동네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동네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면서도 참 신기하고 어색했답니다. 동네를 30분 이상 산책을 할 때 아는 사람 한 명을 만나기도 어려울 것 같거든요. 어쩌면 우리는 당연한 게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일상을 사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북촌의 홍반장, 현정님이 되진 못하더라도 오늘은, 마주친 이웃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보려고요.


로컬의 삶, 현정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과 리뷰로 나누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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