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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어바웃 Jan 11. 2023

즉흥적으로 모여 과일을 먹어요.

서울특별시 | 백가영(벗밭)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tambang.kr / @tambang.kr



Interview | 벗밭 백가영과의 인터뷰


며칠 전, 과일 과게에 갔어요. 탐스럽게 생긴 딸기가 모습을 드러냈더라고요. 곧 봄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계절의 변화는 과일 가게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눈, 코, 입을 즐겁게 하는 제철 과일 때문이죠.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에겐 과일이 사치라더군요. 비쌀 뿐 아니라 사더라도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네요. 제철 과일을 함께 먹을 사람이 어디 없을까요? 오늘의 주인공 가영님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제철 과일을 먹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바로 ‘즉흥과일클럽’입니다. 이 귀엽고 독특한 모임이 궁금해졌어요.


오늘의 주인공, 벗밭의 가영님 Ⓒ탐방




벗이 되고 밭이 되는 이야기


가족들과 함께 사는 저는 평소에 과일을 쉽게 먹어요. 원할 때마다요. 그런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자취하는 친구는 사과 한 봉지를 사면 2주 내내 사과만 먹는대요. 사과를 썩히지 않기 위해서요. 과일을 사는 것도 큰 결심이었는데, 먹는 것도 너무 큰 일이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도시에 사는 1인 가구 친구들에게 과일 한 바구니는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생각해 보게 됐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대학교 재학 중에 프로젝트 그룹 ‘벗밭’을 만들었어요. 벗밭의 벗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어요. 친구 할 때의 벗과 그러나(but)의 벗이죠. 그리고 밭은 말 그대로 밭이에요. 먹거리나 식문화도 좋지만, 식탁 너머에 있는 밭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거든요.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을 모았고, 건강하고 신선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을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1인 가구 친구들에게 과일 한 바구니는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탐방


첫 번째 활동은 소셜 다이닝이었어요. 공유주방을 빌리고 친구들을 초대했죠. 메뉴는 샤부샤부.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대접했어요. 어색한 침묵이 흐르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다 함께 열심히 먹고 떠들었답니다. 배부르고 푸짐하게 잘 먹인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했고요.(웃음)


한 번은 끼니 만족 설문조사를 진행했어요.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언제, 얼마나 먹고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마지막 질문은 ‘당신이 바라는 식사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였어요. 가장 많이 나온 말이 ‘건강’이었죠. 과연 청년들도 건강하고 신선한 식사를 원할까 궁금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어요. 그걸 계기로 벗밭의 가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잡을 수 있게 됐고, 본격적으로 파머스 마켓을 기획했어요.


원래 시장에 가는 걸 정말 좋아해요. 여행의 필수 코스죠. 특히 외국에서는 파머스 마켓(지역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거나 만든 농산물과 수공예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굉장히 흔하잖아요. 먹는 것의 출처를 알고 생산자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 참 흥미로웠어요. 재밌는 문화가 가득한 파머스 마켓을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죠. 좋은 경험을 나누고 싶었달까요?


벗밭의 첫 번째 오프라인 활동, 소셜 다이닝 Ⓒ벗밭 가영




귀촌하지 않고 도시에 있어요.


일 년에 한 번씩 파머스 마켓을 열었어요. 처음에는 대학 안에서 열었기 때문에 기숙사처럼 조리시설이 없는 집에 사는 친구들도 먹을 수 있는 꾸러미를 구성했어요. 파나 마늘, 양배추 같은 걸 소분한 채소 꾸러미였죠.


하지만 실패였어요. 30개를 준비했는데 팔린 건 단 3개. 소비자가의 절반 정도에 팔았는데도 말이죠. 저희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식문화와 현실의 간극을 확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사전 설문조사에서는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막상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선뜻 구매하지 못했던 거죠.


다음에는 더 쉽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재료로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 해에는 시리얼과 그래놀라, 김부각을 담은 간편식 꾸러미와 복숭아 한 알, 포도 한 송이, 사과 두 알, 고구마를 담은 과일 꾸러미를 준비했어요. 그리고 꾸러미가 완판되었죠.(웃음)


벗밭의 파머스마켓과 꾸러미 Ⓒ벗밭 가영



프로젝트 그룹으로 시작한 벗밭은 작년 6월 회사로 발전했어요. 벗과 밭이 모이는 지속 가능한 식문화 커뮤니티로서 먹거리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연결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마켓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제주도 겨울 꾸러미를 준비하고 있어요. 콜라비랑 귤, 감자, 당근 등 제주에서 나는 겨울 농산물로 구성할 예정이죠. 사실 꾸러미만 판매하는 건 특별할 게 없어요. 농부님들이 직접 하실 수도 있고요. 벗밭의 역할은 판매 이후의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죠. 꾸러미를 샀지만 어떻게 해 먹어야 할지 잘 모르는 2030 청년들과 꾸러미를 함께 먹어보는 경험을 할 거예요. 도시에서요.(웃음)


왜 농촌에 가지 않냐, 농사를 지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꿋꿋이 서울에 남아있는 이유가 있어요. 저희가 가까이에 있어야 사람들이 쉽게 행동할 수 있거든요. 만약, 저희가 함께 귀촌해서 농사를 짓자고 한다면, 선뜻 귀촌할 청년들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귀농과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저희(벗밭)도 어려운데, 다른 분들은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래서 저희는 도시에 남아있기로 했어요. 도시를 거점으로 ‘농산물을 건강하게 생산하는 환경과 생산자, 그리고 먹는 이가 더불어 건강한 식문화’를 만드는 게 벗밭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거창의 사과밭 Ⓒ벗밭 가영


지역에 방문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농부님들과 친구가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들이 현실적으로 겪는 문제들을 알게 되었죠. 저희의 생각도 변했어요. 이전에는 ‘우리가 건강하게 먹는 것’에 집중했다면, 농부님들을 만나면서 ‘다른 존재와 더불어 건강하게 먹을 방법’에 집중하기 시작했죠.


먹거리의 지속 가능성과 환경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부님들의 문제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지게 된 거예요. 그래서 생산자의 이야기를 같이 전하기 시작했어요. 조금 어렵긴 하지만 농부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리고 왜 겪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전개해 나가고 있어요.





한데 모여 제철 과일을 먹어요.


최근에는 우물 안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새롭게 들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벗밭을 모르는 사람들과 식문화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죠.


그분들과 자신이 먹는 게 무엇인지 살펴보고 과일을 함께 먹기도 하고, 때론 이전에 먹어보지 않았던 식재료를 경험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런 시간을 통해 식문화에 대한 물꼬를 틀려고 했던 거죠. 식문화에 대한 첫 번째 경험을 벗밭이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더 쉽고 재미있고 완만하게 이야기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밭과 식탁,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을 실험했던 <비슷한 들에서 같이 자라는 풀> Ⓒ탐방


즉흥과일클럽은 말 그대로 과일을 먹는 모임이에요.(웃음)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즉흥적으로 제철 과일을 먹죠. 복숭아를 시작으로 무화과, 감, 석류를 먹었어요. 이번에는 귤을 먹을 것 같고요. 사람들이 오면 자기소개를 하고 둘러앉아서 과일을 먹어요. 복숭아랑 감처럼 깎아 먹는 과일은 모둠별로 앉아서 깎아 먹죠.


사실 시작은 단순했어요. 혼자 자취를 하시는 벗밭 팀원분이 과일을 평소에 못 먹으니까 과일을 함께 먹는 모임을 하자고 했죠. 그런데 의외로 인기가 많았어요. 그동안 벗밭의 활동에 관심이 있었지만, 토종이나 농사 같은 이야기는 조금 멀게 느껴져서 선뜻 참여하지 못했던 분들이 많이 오시더라고요. 친구를 따라오시는 분들도 있지만요.(웃음) 모임에 참여하면 스티커를 드리는데, 스티커를 다 모으실 만큼 열심히 참여하시는 분도 계시죠.


벗밭의 역할은 최대한 다양한 과일을 준비하는 거예요. 과일은 품종이 정말 많잖아요. 복숭아에는 황도, 백도, 천도 등이 있고 무화과에도 붉은색 무화과와 청무화과가 있죠. 또 무화과 잎은 차로도 마실 수 있고요. 감에도 홍시나 연시, 감과 배를 접목해서 만든 태추 단감 등이 있죠. 혼자서는 이렇게 다양한 품종을 경험할 수 없어요. 여럿이서 함께 먹어야 가능하죠. 그래서 즉흥과일클럽에서는 여러 종류를 먹어보실 수 있도록 하는 것에 힘을 주고 있어요.


사람들과 함께 즉흥적으로 과일을 먹는 모임, 즉흥과일클럽 Ⓒ벗밭 가영


모임 마지막에는 다음에 어떤 과일을 먹고 싶은지 이야기해요. 즉흥과일클럽 감 편에서는 석류를 먹고 싶다는 참가자가 계셨어요. 사실 석류는 좀 어려운 과일이에요. 국산 석류는 너무 시고, 미국산 석류는 저희가 지향하는 바와 맞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도 한 번 비교해보고 경험해보는 건 의미 있겠다고 생각해서 국산 석류와 미국산 석류를 먹어보는 모임을 준비했죠. 그런데 석류를 제안한 분이 일정이 있어서 못 오셨어요. 대신 본인이 석류를 기가 막히게 깔 줄 안다며 DM으로 석류 까는 방법을 보내주셨어요. 그 메시지를 함께 읽고 자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분의 설명대로 입안에서 석류가 별처럼 터지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유쾌했던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웃음)


‘어서와 00은 처음이지?’라는 모임도 있어요. 지금까지 못 먹어봤던 식재료를 먹어보는 모임이죠. 9월에는 씨앗매개자 강나루 작가님과 토종 흑보리로 만든 개역(미숫가루)과 튀밥을 다양한 방식으로 먹었어요.


최근에 한 팀원분이 밀웜을 함께 먹어보자고 제안하셨어요.(웃음) 식량과 기후 위기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주제잖아요. 저희가 꼭 이야기하고 싶던 내용이고요. 지속 가능한 식문화를 이야기할 때 주로 채식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것 말고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기를 바라요. 토종 농산물을 먹는 것일 수도 있고, 유기농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내가 직접 텃밭에서 길러서 먹는 방식이 될 수도 있겠죠. 밀웜도 어떻게 보면 기후 위기와 식문화라는 주제와 연결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는 밀웜을 먹어볼까 해요.


어서와, 토종 흑보리는 처음이지? Ⓒ벗밭 가영




식탁 너머의 삶을 나누고 싶어요.


혼자 보다 여럿이서 먹을 때 좀 더 풍요롭게 식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 잘 챙겨 먹게 되고요. 그래서 서로의 끼니를 물을 수 있는 식구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농부와도 식구가 될 수 있기를 바라요.


계절마다 농장에서 농산물들이 오는데, 이것들을 먹을 때 자연스럽게 농부님들이 떠올라요. 농산물과 농부의 이야기가 함께 오르는 식탁은 이전의 식탁보다 훨씬 다채로워요. 그래서 도시의 청년들과 농부들이 식구가 될 수 있도록 연결하고 싶어요.


식탁 너머에는 삶이 아주 많아요. 지금껏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이야기죠. 그걸 알게 될수록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그런 삶과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벗들이 많아지는 걸 꿈꾸고 기대한달까요? 저희가 모이는 그 자리는 어떤 도시의 식탁이 될 수도, 밭이 될 수도 있겠죠. 장소는 특정할 수 없겠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을 만들 거예요.


식문화에 대해 알아갈수록 간극이 정말 크다는 걸 발견해요. 몇 사람들은 식문화에 관심이 있고 지식도 많지만,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죠. 저는 그 사이에 서고 싶어요.


예전에 캔 화분을 선물 받은 적이 있어요. 그해에 씨앗을 심어 기르고 다음 해엔 화분을 그저 두었는데, 제가 키우는 건 줄 알고 누군가가 계속 물을 주고 있던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 거기서 싹이 나더라고요. 흙 속에 잠들어 있던 씨앗에 물과 햇살이 닿으면 어느 순간 싹이 튼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것처럼 저희의 활동이 그 순간에는 무언가가 바로 보이지는 않더라도 다음 해 혹은 그다음 해에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트길 바라요. 그리고 그 순간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어요.


벗밭의 가영님 Ⓒ탐방




탐방과 벗밭은 닮은 구석이 많았어요. 특히 귀촌하지 않고 도시에 남아있겠다는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죠. 로컬에서 활동하는 팀이 이미 여럿 있으니 탐방은 도시를 거점으로 로컬의 매력을 알리고 도시와 로컬을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같은 생각을 하는 가영님과 이야기하니 왠지 힘을 얻은 것 같아요.


인터뷰가 끝난 후 쁘띠즉흥과일클럽이 열렸어요. 주인공은 귤이었죠. 탐방러님은 밀감류와 만감류의 차이를 아시나요? 밀감은 우리가 평소에 먹는 일반적인 귤이고, 만감류는 늦게 수확하는 품종으로 한라봉, 천혜향 등을 말한대요. 겨울이 되면 매번 먹었던 귤이지만 귤에 대해 배우고 먹으니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즉흥과일클럽이 인기 있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죠. 자연스레 다음 즉흥 과일이 궁금해지네요.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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