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멋진 이모부
요즘에도 있나? 유치원에서의 아빠 참여 수업.
사실 7살 당시에도 다 알았다. 그 때 봤던 장면과 느꼈던 기분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햇살 좋은 날, 선생님을 기준으로 동그랗게 아이들이 바닥에 둘러앉고, 각 아이 뒤에는 아이 아빠가 어린이 의자 위에 겨우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나는 엄마의 남편이 아닌 엄마보다 11살이나 어린 막내 이모의 젊고 멋진 남편과 함께 자리를 버티고 앉았다. 여느 아이처럼 즐거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두근 반 세근 반 쿵쾅거리는 심장을 붙잡느라 치열하게 애쓰고 있었기 때문에 '버틴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난 이모네 부부를 항상 잘 따르고 진심으로 좋아했다. 특히 유쾌하고 섬세하게 잘 놀아주는 이모부는 우리 사촌들 사이에서 인기스타였고. 그래도 그날은 아니었다. 그런 식은 아니었다.
왜 심장이 쿵쾅거렸을까?
친구들에게 아빠가 아닌 게 들킬까 봐?
(돌아가신) 아빠랑 오지 못한 게 화가 나고 슬퍼서?
아니,
그건 바로 나에게 허락받지 않고 이런 큰 무대 위로 나를 대뜸 올려버렸다는 것에 대한 신체적 신호였다.
항상 심장과 목구멍 사이 근육이 -과학 실습 시간에 본- 개구리 심장처럼 팔닥팔닥 뛰는 이 느낌. 커서도 아직까지도 그런 느낌이 있다.
나를 사랑하는 어른들이 기획한 연극의 주인공인 딸 역할을 해내야 했다.
그 어떤 언지도 없이, 누가 감독인지도 모른 채. 태어나서 아빠의 딸을 해본 기억도 없고, 연기도 물론 해본 적 없는데, 갑작스러운 메소드 연기를 과연 7살 아이가 할 수 있을까?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연기하는 딸을 보는 관객은 슬프지 않았을까? 가족이었던 제작진은 가슴이 미어지지 않았을까?
적어도 이모부(주연), 유치원 선생님(조연)이 실재를 아는 것을 내가 알았고, 내가 아는 것 또한 그들이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막막해서 ‘정말 나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그 후 몇 년 간 계속 고민했다.
그날 가족, 친구.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난 핀 조명을 받은 채 혼자였다.
애들은 내 뒤에 앉은 젊고 잘생긴 '아빠'를 부러워했다. 단 한 번도 아빠라는 단어를 쓰며 대화하지 않았다. 물론 이모부에게도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모, 이모부와 조금 어색해졌다. 그때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기를 해내야만 했다. 안 그러면 나를 위한 어른들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이 더 슬퍼질 것 같았다. 다 알았나 보다. 암묵적으로 우리 가족은 그날 관련해서 얘기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어린 내가 조금 달라져 보였나 보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내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천사 같은 유치원 선생님이 미묘하게 더 잘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내 착각이거나 자존심이거나)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다. 난 이게 연민이고 동정이라고 생각했다. 어색했다.
이러니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우리 집이 뭔가 특별하다는 것을.
그렇게 엄마는 애를 썼다.
이미 현실을 알았으니까.
우리 막내 딸. 차별받지 말라고.
대신 그때부터 난 침묵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커서 지금 돌아가신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