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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Jun 10. 2022

교실에는 바퀴벌레가 있다.

  얼마전, 아침부터 무언가를 찾느라 교실 사물함을 옮긴 적이 있었다. 사물함에 숨어있던 바퀴벌레는 놀라서 나왔고 반 아이들은 바퀴벌레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녔다. 다행히 우리반 개구쟁이 삼인방이 나서서 잡아주었다. 나는 납작해진 바퀴벌레의 날개와 뒷다리를 잘 수습해서 버렸다. 그 사건은 아이들로 하여금 우리 교실에도 바퀴벌레가 있구나 하는 인식을 가지게 했다.

  아침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책상 옆에 걸어둔 가방이 제법 많이 열려 있었다. 친구들이 발에 걸려 넘어질 수 있으니 잠그자, 가방이 닫혀있는게 훨씬 보기 좋단다 등의 말을 해도 아이들은 열려 있는게 쓰기 편하니 자꾸 열어두게 되었다. 나는 가방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바퀴벌레 새끼 이야기로 시작했다.

  "얘들아, 지난번 봤던 까맣고 큰 바퀴벌레도 아기가 있는 거 아나요? 그런데 바퀴벌레 아기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아요. 가방에 기어들어가도 모를걸요. 그런데 바퀴벌레가 가방 속에 들어가서 옮겨다니기도도  한대요. 우리반도 지난번 바퀴벌레가 나왔으니 바퀴벌레 새끼가 분명히 있을텐데..."

  그 말을 하자 아이들이 서둘러 가방을 잠그기 시작했다. 에잇 이라는 말도 어딘가에서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교실 가방이 모두 닫혔다. 신기한 일이었다.


  며칠 뒤, 가방이 한 두 개 다시 열린게 보였으나 가방은 이전보다 훨씬 잘 닫혀 있었다. 한 두 개 열려있던 가방도 로보트의 말로 다시 닫히게 되었는데 로보트는 내가 했던 말을 정말 믿고 친구들 전체가 듣게 할머니와의 에피소드를 전해주었다.

  "선생님, 저는 날마다 할머니집에 책가방 맨 채로 가는데요. 한 달 전에 할머니집에 바퀴벌레 새끼 두 마리가 보였대요. 할머니께서 학교에서 따라왔을거라고 말했어요."

  로보트의 말이 끝나자 마자 한 두 개 열려있던 가방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가방 지퍼가 올라가는 소리가 경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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