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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먼히 Nov 10. 2021

오늘.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아침은 악몽을 꾼 듯한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용서에 대한 20분짜리 명상을 했는데 조금 도움이 되는 듯했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했던 마음이 내 몸을 살짝 벗어났을 때 다행스러웠다.

용기를 내어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결국 용서의 마음이 나에게 건강한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시간이 약인 것을 알고 있지만 나의 망각의 능력이 조금 더 힘을 발휘해줬으면 했다.

따뜻한 버바나 티를 만들어 마셨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했다.

바로 샤워를 할까 하다 헬스장에 잠시 들러 가벼운 유산소를 20분가량했다.

이제 한국에 들어온지도 일주일이 지났으니 게으름을 떨쳐내고 슬슬 운동 패턴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의 기분 전환을 위해 샤넬 샹스 샤워젤 썼지만 샤워젤을 짜내자마자  향은 지금 나에게는 독이었다.

잠깐의 서글픈 마음을 인지했고 그 마음을 물로 씻어내 하수구로 흘러 보냈다.

무슨 옷을 입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아주 오랜만에 이것을 입었다 저것을 입었다를 반복했다.

오늘의 피부는 화장도 잘 안 먹는 것 같고 오늘의 옷걸이는 뭘 입어도 어울리질 않는 사람 같았다.

오늘은 최근 며칠 중 가장 스케줄이 빡빡한 날인데 하필 유독 오늘 내가 참 못나보였다.

갤러리아 백화점에 주차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새로운 곳에 주차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긴장되는 일 중 하나였는데 오늘은 일이 수월하게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먼저 학원을 다녀올까 하다 H매장으로 곧장 향했다. 이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도 나의 대기 순서는 9번째였다.

학원을 다녀오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아 결코 불평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학원은 작지만 굉장히 깔끔했고 인테리어며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또 생각했던 것보다 멋있고 친절한 선생님 덕분에 기분이 조금 더 나아졌다.

이곳을 다녀야겠다는 결심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조금 더 설득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연락을 반드시 드리겠다고 안심시켜 드리고 H매장의 내 대기 순서가 4번째까지 다가왔을 때 학원을 떠났다.

오는 길에 다른 상담 계획에 있던 학원들의 방문은 모두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H매장에 도착했을 때 15분 정도 더 대기를 한 후에 내 차례가 왔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전에 계획했던 두 가지 일거리를 꽤나 효율적으로 처리했다는 생각에 뿌듯함까지 느끼는, 마음의 빈곤 속 풍요를 느꼈다.

분주한 아침이라 다행인 날이었다.

직원분은 세 가지 디자인을 추천했는데 그중 처음 두 가지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엄마 눈에도 분명 예쁠 것이라는 생각에 잠깐 설렜다.

그중 블루 계열에 핑크와 브라운도 섞인 디자인을 골랐고 얼른 엄마에게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적인 오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아티제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와 쉬림프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 원더우먼을 켰고 집에 있는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샌드위치에 넣어 먹었다. 더 맛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삼분의 일도 다 못 마시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열차 시간이 다가와 30분 간격으로 타이머를 맞추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막상 조금 타이트하게 택시를 잡아버렸다.

4분 후에 도착한다던 택시가 길이 막히는지 점점 늦는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기사님이 전화가 오셔 나는 다른 택시를 타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1분 후 도착이라 조금 더 기다려 기사님을 만났다.

“저 차 시간이 3시인데 어떡해요 ㅠㅠ”

찡찡이 세포가 나오려 했지만 걱정을 조금 참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다른 시간의 기차표를 검색했다.

기사님은 늦게 도착한 것이 미안하셨는지 전속력을 다하여 달리셨다.

수서역이 다가오자 이제 괜찮다는 말씀을 드렸다.

차 시간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도착했을 때 기사님께 너무 감사하면서도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분주했다.

편의점에 잠깐 들러 헛개수를 샀고 기차에 올라 내 자리를 찾았다.

옆좌석에는 어떤 할아버지가 타고 계셨다.

그리고 모든 짐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을 때 갑작스럽게 울음이 터졌다.

적어도 며칠은 이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숨죽여 울며 눈물을 닦아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유튜브를 틀었는데 피터슨 교수의 영상이 추천 영상으로 뜬다.

제목 “결혼은 왜 하는가” 부제목 “짜증 나는 연인과 헤어지고 싶은가요?”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내 마음을 읽는 걸까 섬뜩하면서도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보는 내내 얼굴의 온 사방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결국 헤어지는 이유는 짜증 나는 연인의 짜증 나는 면들을 서로 품어줄 수 없기 때문이고

다른 말로는 사랑이 부족해서였다.

순정보다 현실을 택하는 내가 옳다고 계속해서 나에게 주입을 시켰다.

나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지난 연인을 이상한 사람이라 험담하는 것으로 혹시 남았을 미련의 틈을 빡빡하게 막아버린다.

아빠는 나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으셨다.

웬일인지 결혼은 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너 스스로를 더 돌보고 네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도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말씀하신다.

나를 위로하고 나를 다독이는 오늘, 내일, 모레를 있는 힘껏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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