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고대하던 일이 현실이 되면
그렇게 꿈꾸던 프랑스였는데
출국 일이 다가왔다. 짐을 싸기가 너무 귀찮았다. 설렐 줄만 알았던 출국이 막상 다가오니
경유하다 실수로 비행기를 놓치면 어떡하나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프랑스 도착해서 숙소까지는 어떻게 가야 하고
우버는 어떻게 불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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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일어날 수 있는 안 좋은 상황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쩌면 짐 싸는 것이 귀찮은 것이 아니라 해외로 떠나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함을 상기 키시고 싶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약 여행으로 프랑스에 간다면 기분 좋은 두근거림으로 짐을 싸지 않았을까.
2월 19일 아침 공기
오늘 프랑스 가는 거 맞지? 출국 날 아침 평상시처럼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내가 느낀 아침 공기는 16살 겨울, 처음 동남아 휴양지 여행을 갔을 때 아침 비행기를 타기 전 같기도 했고 19살 11월 수능 날 아침 같기도 했다. 정확히 묘사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침대에 누워있는 나의 찌뿌둥한 몸을 서서히 풀어주었다. 엄마가 내가 없는 몇 개월은 너무 허전할 것이라며 눈물을 흘리셨지만 슬픔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분명 떠나기 며칠 전에는 프랑스로 가게 되면 가족과 떨어져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일이 슬퍼 엄마랑 껴안고 우는 상상을 했는데 무슨 일인지 담담했다.
두 번째 파도
두 번째 파도는 (파도에 대해서는 Ep2에서 이야기했다) 공항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랜만에 가는 해외라 공항에 도착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짐은 어디서 부치는 거였더라 체크인은 모바일로 했는데 그럼 끝난 건가 해외여행 많이 가본 사람들이 보면 촌스럽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을 하고 있었다. 공항 직원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을 보며 대충 눈치껏 따라 했더니 어느새 수화물 부치는 줄에 내가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멋쩍게 여권만 만지작 거리고 코로나 음성 확인서와 백신 접종 서류를 계속 확인하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수화물 무게를 재다 문제가 생겼다. 기내용 짐이 제한 무게를 넘어버린 것이다. 집에서 미리 무게를 재었지만 위탁 수화물만 신경 쓰고 기내용을 안일하게 생각한 내 잘못이었다.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만 챙겼음에도 나는 5킬로 정도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거운 짐을 다시 끙끙거리며 대기석(?)으로 돌아왔고 꾹꾹 눌러 담았던 캐리어를 열 생각을 하니 얼굴이 화끈해졌다.
두 번의 시도 끝에 결국 그나마 사치라 생각되는 나의 모든 신발을 다 빼고 라면도 빼고 프랑스에서 새로 사귈 친구들에게 줄 한국 간식 선물 등등을 다 빼고 나서 다시 검사를 받았다. 그래도 1킬로가 초과되어 15만 원을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순조롭지 않은 출발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비행과 싱가포르
공항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해서 가족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미 진이 다 빼진 상태라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늘 그렇듯 비행기가 이륙할 땐 마음도 같이 붕 뜬다. 힘이 없어도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몇 분을 비행하다 영화를 틀었다. 비행기 소음 때문에 집중이 안됐다. 그래서 소음 차단되는 에어 팟을 끼고 아이패드로 내가 다운로드한 <그 해 우리는>이라는 드라마를 틀었다. 소음이 문제가 아니었나 보다. 그냥 집중이 안됐다. 그래서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싱가포르에 거의 도착했다는 방송에 잠에서 깨어났다.
밤이었고 창 밖으로 보이는 싱가포르의 화려한 야경과 야자수에 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짐을 느꼈다.
16살 겨울 나의 첫 동남아 여행, 필리핀 보라카이로 놀러 갔던 일이 계속 오버랩되었다. 패딩을 껴입고 출발해 비행기에서 내리니 느껴지는 후덥지근한 열기, 이국적인 향과 분위기, 세상은 참 넓다는 강렬한 인상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잠깐의 환승이지만 여행 온 것 같은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환승하러 가는 길에 동양인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진짜 내가 한국을 떠났구나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