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wegian Wood by Haruki Murakami
05/21/2022 - 05/24/2022
한국으로 가기 전,
Station 42 아파트에서,
<상실의 시대> 유튜브 playlist를 들으며,
종이책으로,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기즈키의 죽음으로 인해 내 젊음의 기능 일부가 완전하고도 영원히 망가져 버린 것 같다는 것뿐이었다.
기즈키의 자살은 나오코의 세계뿐만이 아닌, 와타나베의 세계 역시 무너뜨렸다. 대학교에 가서도 어느 것에도 크게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본인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소개하며, 반동 세력들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염세적이고 개인적이다. 그에게 있어 유일했던 친구 기즈키를 잃고 무기력증에 빠져 살던 와타나베였지만, 결국,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 알을 깨고 나온다. 아, 깨고 나왔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그의 시선이 "알을 깨고 나아가자"로 변화했다.
지금까지 나는 가능하다면 열일곱, 열여덟에 머물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이제 십 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기즈키와 나오코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인 사이였다. 그들의 마치 쌍둥이와 같은 운명이었다. 그러나, 기즈키의 죽음 이후 나오코도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세계에서 갈등한다. 또한, 그녀는 어린 나이에 친언니의 자살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불완전한 사람"으로 표현하곤 했다. 나오코는 죽은 것처럼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그녀의 속에서 혼재하고 있었다. 삶의 세계에는 어떻게든 나오코와 함께 살아보려고 하는 와타나베가 있었고, 여전히 죽음의 세계에서는 기즈키가 나오코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1장으로 되돌아가면, 서른일곱의 와타나베의 이야기를 되새겨볼 수 있다.
나오코가 우물 이야기를 해준 후로 나는 그 우물 없는 초원의 풍경을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오코에 대한 기억이 내 속에서 희미해질수록 나는 더 깊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왜 나에게 "나를 잊지 마."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나오코는 알았다. 내 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이 언젠가는 희미해져 가리라는 것을. 그랬기에 그녀는 나에게 호소해야만 했다. "언제까지고 나를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줘."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
나오코는 와타나베와 도쿄 거리를 거닐 때만 해도 그를 기즈키와 동일시하고 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기즈키가 있는 죽음의 세계로 발을 옮겼다. 그녀는 와타나베를 사랑하지 않았다.
미도리는 발랄하다. 조금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활기차고, 성적인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타나베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항상 밝은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미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답게 발랄하게 세상을 대한다. 와타나베의 정확한 사정을 모르지만 기다림을 다짐하는 그녀이다.
난 살아 있는 피가 흐르는 생기 넘치는 여자야.
기즈키와 나오코를 상실한 아픔을 채울 수 있는 건 생기가 넘치는 미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레이코와의 섹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미도리에 대한 뜨거운 갈망으로 이어진다. 와타나베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미도리를 원한다. 어떤 것에도 크게 흥미를 보이거나 적극적이지 않았던 와타나베가 그 누구보다 뜨겁게 미도리를 원하는 모습은 이 작품의 결말로서 손색이 없다. 미도리를 향하는 마음, 이는 곧 새로운 삶과 생기로 가득한 삶으로 향하는 와타나베를 보여준다.
나는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든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야기할 게 너무 많다, 이야기해야만 할 게 산처럼 쌓여 있다, 온 세계에서 너 말고 내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너와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이 됐건 모든 걸 너와 둘이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어
나오코와 요양 병원에서 같은 방을 썼던 레이코. 그녀는 주름이 아주 잘 어울리는 40살의 사람으로 나오코의 언니와 같은 존재였다. 나오코의 죽음 이후, 둘만의 방식으로 나오코를 생각하며 장례식을 치른 둘은 관계를 갖는다. 하루키의 세계에서 섹스는 서로를 연결하고 이해하며 회복시키는 의식과도 같다. 삶의 재생. 그녀와의 섹스와 다음 날 아침 헤어지면서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누는 키스는 이 둘을 각자의 삶의 세계로 이끈다.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향해 살아 숨 쉬는 삶으로 향하고, 레이코는 요양 병원에서 벗어나 "뒤틀림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의 세계"로 향한다. 그들은 살아있으니 앞으로 살아갈 일만을 생각한다. 여태껏 둘은 살아가는 일보다는 죽고, 떠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자신이 상실한 것만을 생각했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제 상실에서 약간의 방향을 트는 기점에 서있다.
우리는 살아 있었고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내 몫과 나오코 몫까지 합한 만큼 행복해야 해.
나오코라는 죽음의 세계에서 자의는 아니었지만 떠날 수밖에 없게 된 두 사람. 이전까지 삶에 대해 강하게 갈구한 적이 없는 두 사람의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당구를 친 것은 2년 6개월 전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세세하게 기억하지?
당구를 친 다음 날 친구가 죽었거든요. 그걸 이제야 깨달았네요. 저는 당구를 치면 반드시 그 친구가 기억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구를 치지 않았는데. 하쓰미 씨가 말하고 나서야 그 친구 생각이 나는 제 자신이 어딘가 미안하기도 하고...
기즈키와 나오코 모두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와타나베의 모습.
1장에서 서른일곱의 와타나베는 이렇게 말한다. "열여덟 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초원의 풍경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다." 나오코 역시 기즈키를 따라 어린 나이에 죽었지만, 나이가 든 와타나베에게 기즈키와 나오코는 그의 삶에 있어 여전히 너무나 중요한 존재이다. 죽음을 품고 있지만, 그는 삶을 계속한다. 그렇기에, 늘 삶과 죽음은 뒤섞여 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