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털어놓지 않았던 나의 백반증 구석구석
제 몸에 있는 백반증은 작거나 크게, 온몸 구석구석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 백반증의 대부분은 옷 속에 가려져 있는데요. 이번 글은 저의 백반증을 구석구석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백반증의 위치와 특징에 따른 저의 속마음에 대해서도 털어놓으려고 합니다. 어디에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 이야기는 제가 백반증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첫 발걸음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껏 꽁꽁 숨겨왔다면 이제는 드러내고, 이야기하고, 훌훌 털어버리려고 합니다.
저의 백반증에서 가장 겉으로 드러난 부위는 바로 눈 주위입니다.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에 제 눈에 있는 백반증이 가장 신경 쓰이는 부위이기도 합니다. 양쪽 눈 콧잔등 쪽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면 티가 매우 많이 났다는 걸 체감하곤 합니다. 5개월 정도 대학병원에서 바짝 엑시머 치료를 받았을 때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치료를 받은 지 어연 5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고등학교 때처럼 보입니다. 다행히 대놓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가끔 좀 심해진 거 같다는 언급을 해주는 정도였지 저도 크게 신경을 쓰진 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 눈 주위에 있는 백반증은 늘 화장으로 가립니다. 갈색 아이쉐도우나 쉐딩을 백반증 부위에 발라 제 피부색과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웃긴 건 이 부위에 강하게 쉐딩을 넣어주면 콧대가 삽니다 (그래서 가끔 어두운 곳에서 화장을 하다 실수로 진하게 해도 크게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ㅎㅎ).
눈은 그래도 피부가 얇기 때문에 엑시머 진료를 받았을 때 가장 잘 개선되는 부위 중 하나입니다. 지금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해서 이곳을 가릴 필요는 없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할 때 계속 가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그렇고 외출할 때마다 가리진 않고 화장할 일이 생길 때만 가리기 때문에 앞으로도 크게 스트레스받을 부위는 아닐 것 같습니다. 가장 신경 쓰이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는 눈 주위. 뭔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사실 이 부위는 치료가 될 거라는 낙천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는 거 싶기도 합니다. (ㅎㅎ)
겨드랑이는 원래 백반증이 있던 부위는 아니었습니다. 성인이 되고 제모를 자주 하게 되면서 서서히 부위가 넓어지더니 지금은 양쪽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기서 더 커지진 않을 것 같긴 합니다. 백반증 환자도 제모는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레이저 시술에 제약이 있습니다. 레이저 제모는 의사와 상담하고 특정 레이저만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지금 진행하고 있는 치료를 조금 더 지속해 보고 나중엔 상담을 통해 레이저 제모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아무튼 제모를 자주 하다 보니 그 부위가 자극이 돼서 병변이 넓어졌습니다. 겨드랑이에 백반증이 생기기 전만 해도 저는 밖에서 나시를 잘 입고 다니지 않았는데 막상 요즘은 나시를 입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렇지만 팔을 들 때 계속 신경 써야 하고 하필 그 부위가 딱 겨드랑이니까 더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큽니다.
겨드랑이 백반증은 치료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치료가 안된다고 해도 그냥 백반증이 있는 채로 나시도 입고 반팔도 입고, 입고 싶은 것들 다 입으려고 합니다. 요즘도 나시를 일부러라도 입고 나가려고 합니다. 아직 5월이라 나시만 입고 나가기는 추워서 늘 셔츠나 점퍼를 걸치고 나가지만 더 더워진다면 나시만 입고 나가려고 합니다. 지금 25살의 저는 나시만 입고 나갈 용기가 생겼는데 20대 초반 때만 해도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 지난 5년간 외국에 사는 동안 봐왔던 자유로운 사람들, 남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내면의 용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올여름엔 나시만 입고 당당하게 외출하기가 목표입니다. 당당히 팔도 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차츰차츰 더 드러내지 않을까요? 저는 제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됩니다.
저는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손가락 관절을 뚝뚝 소리 내는 습관도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손과 관련된 습관은 늘 저를 괴롭혔습니다. 부모님한테 혼나기도 했고, 손톱을 보여주기 민망했던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손톱 뜯는 습관은 고쳤지만 여전히 긴장하면 손톱 주변 살을 뜯는 버릇은 남아있습니다 (관절 뚝뚝도 하루 1번은 하는 것 같습니다). 손은 그렇게 늘 부끄러운 신체 부위였습니다. 그리고 백반증도 어느 순간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손에 대한 콤플렉스가 더 심해졌습니다. 물건을 집거나 타자를 치고 테이블에 무의식 중에 손을 올려두는 매 순간을 신경 썼습니다. 제 눈에 손이 보이면 저 사람이 내 손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걱정하고, 식음료 아르바이트를 할 때 혹시 손님이 내 손을 봤을 때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나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그런 걸로 컴플레인을 거는 손님이 있을 때, ‘이건 옮는 병 아니에요’ 내지는 ‘이건 그냥 흰 점이에요’ 이런 식으로 민망한 듯 살짝 웃으며 대답하는 저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실제 생기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도 발생하는 방어기제 때문에 마음속에 응어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손은 가장 치료가 어려운 부위 중 하나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손은 엑시머 레이저와 광선 치료 두 가지를 병행하면서 치료했지만 전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생활 자극이 많은 부위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손에 있는 백반증은 아마 평생 가져가야 할 존재일 것 같습니다. 대학병원 진료를 받았을 때 교수님 권유로 제 피부색과 비슷한 톤의 색소로 손 백반증 부위에 타투를 하는 시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백반증 타투가 완전히 대중화가 되진 않아서 (지금은 대중화가 되었는진 잘 모르겠습니다) 실험적(?)으로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무료로 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근데 저는 그 시술을 포기했습니다. 색소가 완전히 들어가 자연스럽게 되려면 최소 3번 정도는 같은 자리를 기계로 찔러야 했고 리터치 작업도 필요했습니다. 처음엔 타투 정도가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어 싶었지만 손가락 마디 쪽에 기계가 들어갈 때부터 너무 아파서 눈물이 절로 났습니다. 고통을 얼마나 잘 참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거기서 타투를 받고 있는 내가 너무 미웠습니다. 왜 백반증이 있어서 이런 고통을 참아야 하는지, 이만큼 했는데도 이렇게 아픈데 지금까지 한 부위에도 또 여러 번 덧대야 하고, 아직 남은 손가락들이 너무 많고 등등 온갖 생각이 머리에 꽉 차면서 저는 그 자리에서 시술을 포기했습니다. 물리적 고통보다 내가 실험쥐가 된 것 같은 기분과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겪는 것 같은 억울함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더 컸습니다. 19살 때의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때 교수님 앞에서 억울함과 속상함에 펑펑 울며 그냥 안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제가 너무 안쓰럽고 보듬어주고 싶습니다. 다른 백반증 환자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노출부위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나머지 이 타투 정도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 좁은 창고 같은 방에 앉아있던 순간이 너무 끔찍했고 지금도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걸 계기로 저는 백반증을 없애기 위한 통증을 참기보다는 차라리 백반증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배가 백반증 분포가 가장 심한 부위입니다. 다행히 배는 가릴 수 있는 부위입니다. 대부분의 생활에서 배를 노출할 일은 없죠. 그렇지만 옷을 벗어야 하는 매 순간 손바닥만 한 백반증 2개를 볼 때마다 참 쉽지 않습니다. 대학병원 교수님께서 개원하신 피부과에 초진을 하러 갔을 때 문진표를 작성했습니다. 거기에 이런 문항이 있었습니다. ‘백반증으로 인해 성생활에 장애가 있습니다’. 예 / 아니오로 대답하는 문항이었습니다. 저는 전 애인과의 잠자리에서 단 한 번도 윗 옷을 벗은 적이 없습니다. 불빛이 환한 곳에서 잠자리를 가진 적도 없고, 혹여나 윗 옷이 올라가서 제 백반증이 보일까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그 친구와 헤어진 지 꽤 됐는데 저는 벌써부터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그 걱정을 합니다. 다음엔 어떡하지, 내가 이걸 다음 사람에겐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의 잠자리에서 윗 옷을 벗을 수 있을까 등등 이런 걱정들로 저는 연애에 엄청나게 소극적인 사람이 됐습니다. 배뿐만이 아닙니다. 배 아래쪽으로 성기, 항문까지 백반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 음모의 일부는 흰 털입니다. 예전엔 흰 털이 나는 걸 보고 놀래서 흰 털을 계속 뽑았었습니다. 검은 털 사이의 흰 털은 정말 잘 보이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옷으로 가려진 백반증에 대한 두려움이 겉으로 드러나있는 백반증보다 큽니다. 가려져 있기에 제 동생과 친구들도 배에 이렇게 크게 백반증이 있는지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수영장과 목욕탕을 기피합니다. 수영장은 가지만 수영장에서 샤워를 하진 않습니다. 찝찝한 상태로 집까지 갔다가 집에서 샤워를 합니다. 위 세 군데 노출 부위에 대해서는 25살이 된 지금 이미 많은 부분 극복했고 해방되었습니다. 하지만 배와 성기의 백반증은 사실 이를 극복한 제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쉽게 가릴 수 있기 때문에 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다니면서 손바닥만 한 배 양쪽의 백반증에 조금씩 살구색 점들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희망이 보인다는 증거였습니다. 지금도 희망이 보입니다. 새로운 수술법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현재 다니는 병원의 팸플릿을 통해 세포이식술이라는 수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2019년, 제가 20살 때만 해도 이런 수술 방법은 없었고, 일부러 피부에 염증을 만들어서 그 물집에서 나온 피부를 가지고 이식하는 수술만이 있었습니다. 그 수술에는 엄청난 통증이 따라서 그 당시 수술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세포이식술이라는 수술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에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엑시머 레이저와 광선치료와 같은 비수술 치료를 계속 진행해 보고 만약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고 백반증이 번지는 걸 완전히 멈춘다면 세포이식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넓은 부위는 어떻게든 없앨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그게 어느 정도의 기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습니다. 비수술은 보통 6~12개월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 안에 백반증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수술을 할 테고 회복 기간, 수술을 통해 이식된 피부에서 살이 차오르는 시간까지 다 합치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성기와 항문에 있는 백반증은 아마 평생 안고 가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숨겨진 백반증들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성생활에 문제를 안은채 살아갈지, 그냥 포기해 버릴지 감도 오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숨겨진 부분의 백반증에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면서 저도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생각이 바뀌지 않더라도 조금의 해방감이라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면서 약간의 해방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반증 치료는 장기 전입니다. 그리고 백반증을 극복하는 과정도 장기 전입니다. 이미 13년을 백반증과 싸워왔고, 백반증을 가진 제 자신과 싸워왔습니다. 지금까지 저를 돌이켜보면 백반증 극복 그래프는 계속 상승 곡선입니다. 저는 성장했고,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백반증과 얼마나 더 싸울지는 모르겠습니다. 평생의 과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았던 저의 몸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백반증 이야기를 글로서 풀어가는 지금도 저는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 글도 지금 시점에서는 또 다른 출발점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저의 백반증에 대해 써가고 생각할 것입니다. 드러내고 꺼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