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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당 Mar 22. 2021

결국은 사랑이었다.

문목하 작가의 <돌이킬 수 있는>

책 읽다가 잠든 적은 허다하게 있어도,

책 읽으면서 꾸역꾸역 어떻게든 잠을 이기려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적은 없었는데


​북 튜버 추천으로 읽게 된 SF 소설.​

이 책에는 이 책의 매력을 본격 맛볼 수 있는 특정 포인트가 있다.

윤 서리가 서형우에게 그가 꼭 들어야 할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면서 길고 긴 녹취 보고를 하는 그 순간부터 서사가 휘몰아치고 모든 상황이 납득이 가고 어떻게 이런 스토리를 쓸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하게 된다.​


문목하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 같다.

싱크홀이라는 소재로 이렇게도 입체적인 캐릭터들과 세계관을 만들어내다니..


'돌이킬 수 있는'이라는 제목. 너무 딱이다.

Eversible도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생생해서 좋다.

이 포스팅은 이 소설을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담아두고 싶어서 써 내려간다.

이 책의 글자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감탄했던 나를 기억하고 싶다.


 <돌이킬 수 있는>의 매력

1. 선과 악의 부재

2. 쏟아지는 반전

3. ‘왜겠어요’


* 책의 스포일러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

동시에 존재하는 머리카락의 서사.

복제의 시작


이경선이 희망이라면, 최주상은 비극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가 왜 그렇게까지 아무도 기억해주지도 알지도 못하는 전쟁들을 치러가면서까지 비원을 지키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던 대목.

최주상의 세상이 무너졌었고, 그 세상을 대신할 수 있는 가영을 지키기 위해 그가 얼마나 피 튀기는 노력을 하는지....

나정의 죽음은 경선산성과 비원, 그곳에서 나온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모두가 전투를 멈추고 그 싱크홀을 볼 때,,, 그 싱크홀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날뛰며 서로를 죽이려고 치를 떠는 그 두 세력은 결국 싱크홀 하나로 하나가 되는구나... 싶었고 너무 슬펐다.

싱크홀에서 나왔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그 싱크홀에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들이 벗어났던 것 그 싱크홀의 어둠뿐이었지, 싱크홀 자체가 아니었다.

정여준이 이방인인 자신을 경선산성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스토리,

여준의 늘 깊이 있는 진심이 좋다. 시간을 멈출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깊이를 보이긴 정말 어려울 텐데

정여준을 위해 억겁의 시간을 견뎌낸 윤서리.

서리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그의 죽음을 막고 싶어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

그리고 그 수많은 시간을 되돌리고 다시 흘려보내면서 서리가 깨달은 한 가지 사실.

인간의 의지는 시간을 돌려 순간들을 바꾼다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여준의 이 각오는 서리가 비원과 경선산성의 관계를 좀 더 본질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들의 본질은 싱크홀 생존자라는 사실. 변치 않는

윤서리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

‘사랑’이라는 말만 없지 이건 온통 사랑이잖아

여준을 놓치기 싫은 서리의 마음이 와 닿았던 장면이다.

윤서리와 서형우가 이름을 버린 것.

그간의 모든 자신의 모습을 버릴 각오와 앞으로의 각오를 보여주는 요소.

유일한 선택지, 싱크홀.

눈을 감고도 싱크홀이 어디 있을지 알 정도로 그것에 대한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극심한데, 그곳에서 밖에 살 수 없었던 그들의 선택이 슬프다.

살기 위해, 죽음의 장소로 되돌아 가는 그 선택.

이 책의 결말.

폭포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경선처럼 믿고 싶다.

서형우 같은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막을지라도, 그래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결국 이들은 싱크홀에서 두 번이나 살아났다.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파트에 나오는 이야기들.

제일 마지막 반전...

억겁의 시간을 서리 홀로 견딘 줄만 알았는데, 모든 순간이 여준과 함께였다.

서리는 여준을 위해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가고,


여준은 서리를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간다.

앞머리 스토리가 이렇게 풀리다니

그 모든 시간과 순간과 고통들이 결국 제일 본질적인 사랑을 위한 과정이었다는 게 그냥 너무 아름답다


진심을 다해서 기억하고 싶은 소설.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

+) 이 세계는 도구로 인간을 찌르는 게 아닌, 인간으로 도구를 찔러야 한다. 이런 뭔가 창의력 풍부하고 발상의 전환 쩌는 초능력자들의 싸움신도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내가 초능력자였으면 창의력 제로여서 능력 반의 반도 제대로 못썼을 것만 같은

+) 윤서리가 경찰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와 맞지 않는 무심함과 어른스러움을 보여줬을 때, 그리고 정여준이 지나치게 솔직하고 마찬가지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을 때. 처음엔 소설은 소설이구나 싶었단 부분이었던 것 같다. 캐릭터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이 돼서 이질감이 많이 느껴졌었는데, 나중에 떡밥들이 풀리고 나니 그들의 그런 모습들이 슬펐다. 그 왜 많은 걸 겪어버린 아이들은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들이 딱 이런 케이스라... 진심으로 이들이 함께 행복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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