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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Apr 15. 2024

[일상] 8살 본격 책육아_주말도서관

책읽고 글쓴다. 한해 평균 200권 이상이다. 2019년부터니, 햇수로 6년이다. 세 살이던 아이는 여덟 살이 됐다. 방법도 모르고 사진도 없이 기록용으로 시작한 블로그는 '인플루언서 도서 부분 8위'가 됐다. 

 세 살이었을 때, 아이는 무릎에 앉아 책읽는 아빠를 봤다. 글쓰는 아빠를 보기도 했다. 당시의 글에는 적잖은 흔적이 남아 있다. 오타, 탈자, 비문, 주술 비호응. 아이와 소통하며 쓴 글은 역시 엉망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읽고 썼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는 '학생'이 되어 있다. 

지난주 금요일, 학교에서 '권장도서목록'을 보내왔다.

생각이 많아졌다.

'권장도서?'

나 읽기 바쁜 와중에 아이의 독서 목록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다. 그간 나의 목구멍에 보약을 넣고 아이의 목구멍에 '정크푸드'를 쑤셔 넣은 건 아닌지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학교에서 '이 정도 나이'에는 '이런 책을 읽어야 합니다'라고 추천했다. 개인적으로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간혹 '패드'를 통해 학습하기도 했고 주변 어른들이 하나씩 알려주기는 했다. 본격적으로 한글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본인이 필요하면 알 것이라고 두었다.

 아이가 '아빠'라는 말을 막 시작하고 난 뒤, '아빠치'라는 말을 배웠다. '아빠치'는 '아빠 책'이라는 말이다. 방에 어질러 있는 책을 보며 '아빠치'라고 하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책읽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읽을 거라 생각했다. 다만 다시 생각해 보건데, 과연 알아서 책을 읽게 될까, 궁금하기는 했다.

 수해 전, 동네 책방에서 꽤 인상 깊은 모습을 봤다. 다 큰 아이처럼 보였는데, 한 어린이가 엄마 무릎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키가 작고 목소리가 얇았다. 본인의 덩치만한 아이를 끌어 안고 엄마는 책을 읽어 주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3~4학년은 되어 보였다. 그것을 보고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저렇게 큰데도 아직도 혼자 읽지 못하다니...'

엄마가 읽어주니, 아이가 혼자서 읽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귀'로 듣는 독서는 진짜 독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책을 계속 읽었다. 목소리는 단조로웠고 빨랐다.

'저렇게 성의없게 읽어 주면 흥미가 생기지 않겠어'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제와 생각하길 '그녀'가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읽어주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모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는 '그림'을 쳐다보는 일이 '책읽기'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국 '그녀'가 옳았다. 적극적으로 아이의 책을 읽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권장도서목록'을 살피니 아이가 읽기 버거울 책도 있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좋지 않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이제 본격적으로 읽어주자, 서점에서 '초등 독서 교육'관련 도서를 몇 권 구매하고 읽었다. 책을 살피니 충분히 늦지 않았다 여겨졌다. 어쩌면 되려 빠른 편에 속한다. 아이와 도서관을 갔다. 학교에서 보내준 '권장도서 7권'을 빌렸다. 또한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과 무서운 책 3권도 빌렸다.

 아이와 앉아서 책을 읽었다. 아이의 머리를 말리면서 아이에게 읽게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책을 함께 읽었다. 아이의 독서감상문 페이지가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아이가 밥을 먹을 때, 처음에는 젓가락이 서툰 것처럼 초반에 독립 전까지는 무조건 부모가 떠서 입에 먹여야 한다. 어느 순간이 되면 아이는 스스로 '독립의지'를 갖는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제는 목욕도, 등교도, 숙제도 혼자하는 아이가 혼자하게 된 것은 본인이 혼자하고 싶다고 한 순간부터였다. 어느 순간이되면 분명 독서도 '혼자'하고 싶은 순간이 생길 것이다. 그 요청 전까지는 꾸준히 떠서 입에 넣어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읽은 책에서 보니, 초등학교 4~5학년까지도 아이의 책을 부모가 읽어주라는 글을 봤다.

 엄마의 무릎에서 책을 읽던 아이를 본 그 즈음에, 나는 같은 서점에서 나의 '로망'을 발견했다.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아빠와 서점을 들어왔다. 학생과 아빠는 둘이 '추리소설' 분야에 서 있었다. 그리고 딸이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이거 재밌어. 이게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어쩌구 저쩌구..."

 내 기억에 아빠는 그 책을 구매했다. 아빠와 딸이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서로 추천해주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의 '독서 교육의 목적'은 부녀 사이에 그 '로망'을 채움에 있지, 명문대 졸업이나 학교 성적 따위는 아니다. 바라건데, 아이가 무슨 직업을 갖던, 무슨 삶을 살던, 글을 쓰고 읽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아이와 도서관을 가는 날을 정했다. 도서관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라면'을 먹고 운동도 할 예정이다. 저녁까지 실컷 놀다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맥도날드'를 저녁에 갈 것이다. 아이가 '일요일'이 기다려지는 날이 되도록 하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책을 읽어주기로 결심했다. 내가 책 몇장 넘기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아이의 도서목록과 후기도 정리하여 블로그에 기록해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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