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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l 07. 2024

[계발] 최선을 다하면 안되는 이유_버려야 채워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욕의 화신'과 같은 인물이었지만 그의 욕심은 '천하를 상대'로 하지 않았다. 그는 하급 무사일 때는 하급 무사로서 최선을 다했고, 사무라이 대장이 됐을 때는 사무라이 대장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한 지역의 영주가 됐을 때는 영주로서 최선을 다했다.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부터 세계적인 그룹의 창업주가 되겠다는 욕심을 갖지 않았다. 쌀가게에서 그에게 주어진 정리와 경리일에 최선을 다했다. 최근 '퇴사'가 젊은 층에서 인기다. 지금 당장 회사를 뛰쳐나가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창업은 취업보다 어려운 일이다. 더 많은 경험과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대책없이 남의 지시를 받지 않지 않는 해방감을 위해 퇴사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티브 잡스 또한 많은 이력서를 돌리며 취업을 고대하는 취업준비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달콤한 결과만 얻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말하는 진짜 나쁜 욕심은 그런 것이다.욕심이란 완성에 대한 바람이 아니다. 방향에 대한 바람이다. 즉 이미 완성된 최고 점을 원하기만 하는 것은 욕심이고, 그 방향을 향하고 나아가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고로 욕심은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삶에서 치명적인 나쁜 습관 중 하나는 '꿈'이라는 거대한 환상을 가지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기대에 대한 충족에 있다. 고로 엄청나게 많은 기대를 하고 그것을 충족하는 것도 행복이고,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완전하게 충족해 내는 것도 행복이다. 고로 행복의 상대성으로 보건데 누구나 그것은 충족해 낼 수 있다. 그렇다. 달성 가능한 목표와 기대감만 있으면 누구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 그러나 목표한 바를 다 이뤄내면 반드시 좋을까. 그렇지 않다.

 법연사계의 네가지 규율은 이렇다. 

첫째, 세력을 다 사용해서는 안된다.

둘째, 복을 전부 다 받아서는 안된다.

셋째, 규율을 다 행해서는 안된다.

넷째, 좋은 말이라도 다 해서는 안된다.

 최선을 다해서는 안된다. 이말은 과정에서의 최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과에서의 최선을 말하는 것이다. 즉 과정에서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서는 최선을 원해서는 안된다.

 이렇다. 만약 심험에서 80점의 성적을 얻었다고 해보자. 보통 자신이 받은 점수에서 최선의 진학을 희망한다. 그러나 그러면 안된다는 의미다. 이는 내 기대치를 최대로 끌어 올린 숫자다. 즉 다시 말해서 자신의 최선에 가까워 질수록 기대치는 높아지고 그것이 달성될 가능성은 반비례로 낮아진다.

 인생에는 목표가 없다.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것은 '행복'을 위한 일이지, 목표글 달성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은 아니다. 삶의 목표를 찾다보면 결과적으로 죽음 밖에는 없다. 고로 인생의 목표가 목표가 되기보다는 재미와 의미, 행복에 목표를 두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가난과 부유함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누가 뭐래도 부유함이다. 고로 우리가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부'는 꽤 필수요소 중 하나에 속한다.

 영화 '라임라이트'에서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늙은 코미디언은 실의에 빠진 무용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살아갈 가치가 있어. 그러려면 세가지가 필요해. 용기, 상상력, 그리고 약간의 돈 말이야."

 인생에서 '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라는 듣기 좋은 말이 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많다. 그러나 그것이 돈이 중요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흑백으로 구분할 수 없고 흑이 아니면 백이거나, 백이 아니면 흑인 건 아니다. 돈 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돈은 역시 중요하다.

 독립운동가 '오광심'은 조선혁명단에서 비밀 연락활동을 전개하고 조선민족혁명당 부녀부 차장으로 활동했으며 광복군으로 활동을 했다. 그가 '안중근 의사'보다 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여전히 그는 훌륭한 인물이다.

 영화 올드보이에 이런 말이 나온다. '모래알이던, 바위던 물에 가라앉긴 마찬가지다'

 과유불급,

뭐든 극단적으로 나아가서는 좋지 않다. 항상 어느정도의 중도가 중요하며 때로는 그것은 좋은면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학식과 경험은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배웠던 경력과 경험을 쌓는다는 명분으로 시야가 좁아지는 경우가 분명있다. 나이가 많은 이들은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굉장히 좋은 스승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있어도 1학년은 2학년이 되고, 스무살은 스물 한살이 된다. 이처럼 가만히 있어도 채우기가 저절로 이뤄지는 세상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채우고 살아가는가. 몇년 째 열어보지 않은 서랍 속에는 얼마나 많은 잡동사니가 있고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부정의 찌꺼기들이 있는가. 그러고보면 채우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만 '비우는 것'은 일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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