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충격적인 경험이다. 지인의 이야기다. 그는 집에서 혼자 쉬고 있을 때 향수를 뿌린다고 했다. 꽤 명품 향수다. 어차피 집에 있을텐데 '명품 향수'는 왜 뿌리냐 물었다. 그는 답했다.
'좋아하는 향이니까'
맞는 말이다. 쉬는 날에도 샤워 후 몸에 향수를 뿌리면, 주말 내내 기분이 좋다. 가만보니 그게 '자존감'인 듯 하다.
해외에서 비슷한 바를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 위치와 돈에 전전긍긍했다. 그때 함께 견디는 누군가를 보며 위로를 했다.
'쟤도 하는데 참아보자'
그러던 어느날 그는 말했다.
'나는 참은 적이 없어.'
함께 고통을 이겨낸다고 여긴 동료가 애초에 참았던 적이 없단다. '그럼? 어떻게 이겨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답했다.
'다른 일 하면 되지, 넌 뭘 그걸 갖고 전전긍긍해?'
그는 회사에 더 오래 근무했으며 덜 스트레스를 받았고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다.
항상 나보다 과분하다고 여기기에 마음은 조급했다.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하게 되면 벌어지는 일이다.
가만보면 '잃어도 괜찮다'라는 마인드가 자존감의 원천이다. 언제 그만 두어도 상관 없는 일이라면 직장 상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언제 버려도 괜찮은 물건이라면 그것을 도둑 맞아도 상실감이 없다.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내가 끄적인 낙서의 가장 큰 차이라면 모나리자는 대체 불가능하고 나의 낙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려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든 대체되어도 상관 없다는 마음은 소유물이나 관계에서 언제나 초월된다.
유명인을 만날 때, 사람들은 의미를 부여한다.
유명인의 입장에서는 안만나도 그만인 일이다.
'잃어도 상관없다'는 쪽과 그 한번의 경험이 아주 소중한 이와의 관계 형성은 벌써 그렇게 되었다. 그것이 '갑'과 '을'이다.
'갑'은 '잃어도 되는 쪽'이다. '을'은 잃고 싶지 않은 쪽이다. 관계나 사업, 사랑.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잃어도 되는 쪽이 언제나 '갑'이다. 모든 상황과 물질에서 '갑'이 되고자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갖는 것이 아니다.
'잃어도 되는 쪽'이 되면 된다.
고로 많이 갖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잃어도 되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단언컨데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
'집착'이다. '욕심'이다.
고로 '집착'과 '욕심'이 없으면 '모든 게임'에서 이긴다. 세계적인 '투자자'들의 공통점은 '물욕'이나 '소유욕'이 없다. 그들은 패닉셀에 함께 팔지 않고, 상승하는 광기에 올라타지 않는다.
자존감이란 그런 것 이다. 오로지 '나'에 집중하는 일.
모든 걸 잃어도 아무렇지 않는 상태.
누군가의 평가도 필요없고, 누군가의 호의나 비난도 초월한 상태.
그것이 자존감이다.
자동차, 옷, 직업 등 나를 구성한다고 믿는 모든 것이 없어져도 오롯하고 완전한 '자아상태'를 말한다.
'자아'가 든든하면 그 구성하는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보면 서스펜스라는 것이 있다. '주인공'은 모르고 '관찰자'만 알 때 발생한다. 살인마가 문 앞에서 기다린다는 사실을 '주인공'은 모르고 '관객'은 알고 있을 때, 서스펜스는 작동한다.
그렇다.
흔히 허름한 복장을 한 '부자'의 이야기, 알고보니 '엄청난 미녀'였던 '왕따'의 이야기, 흔히 말하는 '힘을 숨긴 찐따'라는 '밈', '바보'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알고 봤더니 '천재'였다는 이야기 등.
사람들은 '숨겨져 있는 진짜'에 대리만족한다. 이런 반전매력은 '나만 알고', '상대가 모를 때 발생'한다.
학교 기말고사 시험에서 점수가 떨어졌거나, 수능 시험에서 미끌어졌거나, 진급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실패한 당일날 마저,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공부를 이어가는 것이 자존감이다. 남들이 알아주던 말던 그것이 나의 가치를 올리고 있다는 믿음이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
사람들은 복권 당첨되어 최대치로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당첨금을 쌓아놓고 일상 생활을 잇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
진짜 자존감은 '남'은 모르는 무언가를, '나' 혼자 알고 있을 때 발생한다.
정리된 '침실', 정돈 된 주변, 깔끔한 화장실, 규칙적인 좋은 습관.
그런 것이 자존감을 쌓는 일이다.
당장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일이 아니라, 오늘도 해야 할 목록을 완성했으며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더 자존감이 쌓는 일이다.
쉬는 날 자신을 위해 향수를 뿌린다거나, 아무도 보지 않는 부분에 큰 돈을 사용한다거나, 조용히 자산이나 통장 잔고를 쌓고 과시 하지 않는다거나, 잘 아는 주제가 나왔음에도 조용히 지켜 본다거나...
'쟤들은 모르네...'
그런 것들이 진짜 자존감이다.
'아이고,..아기처럼 보이네'
이 말을 '아이'에게 하면 버럭하고, '어른'에게 하면 기뻐한다.
말은 그대로인데 반응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언제나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성장하면 주변이 뭐래든, 관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