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진화와 문명 발전에 따른 이주에 대한 유전자 조사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책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정말 잘 짜인 역사 명서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식스센스 이후로 이런 반전은 처음이다. 마지막 두 장을 보면서 나는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물론 책을 읽기 전에 목차를 살펴보긴 했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목차를 봤을 때는 대략 감만 갖고 있었지만 이처럼 모든 이야기가 마지막 두장으로 깔때기처럼 모아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 책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한 책이었다. 다만 그 주장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도구가 너무 전문적이고 퀄리티가 높다. 마치 삼국지의 관우가 점심에 먹을 잉어의 비늘을 벗기기 위해 청룡언월도를 이틀을 밤새워 가는 일이라고 한다면 적절한 비유일까? 그러다 보니 마지막 두 장의 반전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단순하다.
'인간이 이주하려는 건 본연의 욕구라는 사실'
이 이야기를 간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작가는 인류 역사와 유전공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내공을 풀어낸다.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사실 이 책은 두 명의 작가가 쓴 책인데, 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쪽은 요하네스 크라우제라는 사람이다. 그는 DNA를 통해서 인류의 역사를 풀어낸다. 읽으면서 감탄이 몇 번이나 나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읽는 역사책은 결과만 이야기해준다. 가령, '아프리카인들이 북쪽으로 이동했다.' 혹은 '가부장제도가 생겨났다'의 식이다. 하지만 저자는 어떻게 결과를 추론해 냈는지를 유전공학에 기반하여 알려준다.
또 다른 저자는 토마스 트라페이다. 그는 요하네스 크라우제가 서술한 글을 보충 설명해준다. 비중이 많진 않지만 그도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점은 몹시 많다. 네안데르탈인이 언어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라는 의문을 푸는 것도 추측이 아닌 근거를 바탕으로 한 과학이었다는 사실도 재밌었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생긴 인간의 '탈모(털 빠짐) 현상'이 땅 배출을 용이하게 했고 그로 인해 인간의 지능이 발달했다는 전개는 몹시 흥미롭다. 기온의 변화에 따라 인류가 어떤 경로로 이동을 하게 되고 생활양식은 어떻게 변하는지도 매우 흥미롭다.
책 중반부부터는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우는 '스텝 기후'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강수량이 적어 풀과 관목의 성장에 적당하지만 작물 활동이 어려운 이런 기후는 당연히 말과 소가 자라기 쉽다. 때문에 유목민들이 넓게 활동했다. 저자는 그들의 이동을 '유당불내증'을 근거로 확인한다.
생물 중 가장 오래된 DNA를 확인할 수 있는 생물이 '말'이라는 설명이 한 줄 나온다. 이 대목에서 고개가 갸우뚱했다. 얼마지 나지 않아 왜 그 대목이 나왔는지가 명확해졌다. 이 책이 말하려는 '반전'의 예고였던 것이다. 사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피부색을 가지고 진화론적 서열을 결정하는 행위는 바보 같은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나치의 민족주의적인 이야기도 예시를 들었다. 결국 또한 언어를 예를 들며 표준어가 정해지고 이주가 힘들면서 고립된 우리의 언어 체계가 예전처럼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야기한다.
결론은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 거론하면서 현대 우리가 겪는 일들에 대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DNA의 역할을 설명하기도 했다. 사실 저자는 DNA라는 강력한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조금 내비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저자는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인 '이주'를 필연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 발생 수는 1인당 경제 능력에 얼추 비례하게 증가한다. 대략적으로 밖으로 나다니기 좋아하는 국가에서 퍼트리는 병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발전을 이루었다는 뜻인 '선진국'이라는 의미는 국가가 고도의 발전을 할수록 인간의 본능인 '이동'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에 일맥 한다. 마지막 장에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주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이주와 함께 폭력과 질병이 유입될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가장 큰 폭력과 질병의 위험을 갖고 있는 미국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이 가장 아이러니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인 '인플레이션'이라는 책과 번역이 가 같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책은 정말 재밌고 흥미로운 사례가 많았는데 서평에 모두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단순한 역사책이라고 생각했던 이 책이 갖고 있는 넓은 스펙트럼은 DNA라고 하는 소재가 증폭 작용을 했다. 인류애와 세계화, 팬데믹을 어우르며 DNA는 역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저 그런 역사책과는 다른 시선으로 전개를 해 내는 이 책은 또 하나의 좋은 역사책이자, 사회 비판서이자 자연과학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