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첫 시험이다.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던 둘째,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디지털미디어고가 목표인 둘째는 의욕이 가득하다. 3주 전부터 시험공부한다고 야단 법석이다. 2주 전부터는 우리가 얘기하기도 전에 기타, 코딩 학원 선생님들에게 시험 준비 때문에 2주 정도 학원을 쉬겠다고 얘기했단다. 평소에는 학교나 학원선생님들에게 사소한 부탁이나 이야기도 못해서 늘 엄마, 아빠를 찾던 아이가 말이다.
혼자 계획을 세우더니 평일에는 4,5시간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오늘은 4시간 했더니 배가 고프네' 하고는 간식을 찾아 먹곤 했다. 주말에는 8-9시간 공부했다고 우리한테 자랑을 하고서는 스스로 뿌듯해했다. 이때까지만 스스로 계획을 세워 잘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전까지는 힘들어했지만 꿋꿋하게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시험 1주 정도를 남기고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수학은 잘하고 있는 것 같고, 그간에도 혼자 잘하고 있는 것 같아 거의 확인을 하지 않았다. 국어는 자신이 있는지 정리한 내용도 보여주면서 2번이나 확인을 했다. 영어는 1단원 확인 후 다시 한번 확인을 하자고 하니 미루었다. 과학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때 까지는 믿고, 말로만 과목별로 다시 한번 더 보라고 얘기만 할 뿐이었다.
4월 26일이 국어, 수학 시험이어서, 25일에 최소 국어, 수학 공부 최종 점검은 해야 했다. 저녁 먹기 전에 잠깐 하는 듯하더니 저녁 먹고서는 쉰다고 뒹굴거리다가 샤워한다고 1시간을 넘게 욕실에서 나오질 않는다. 한참을 욕실에 있다 나오더니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긴장되고 걱정이 되어서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시험 당일 아침에도 걱정이 되는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것 같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하고 욕심내지 말고 차분하게 시험에 임하라고 했다. 국어는 지문을 자세히 읽어보고 수학은 쉬운 것부터 먼저 풀라고 했다.
오후에 근무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둘째가 시험을 잘 못 봐서 많이 실망한 것 같으니 전화나 한 번 해주라고 했다. 전화를 했더니 국어가 예상보다 너무 어려워서 망쳤다고 했다. 푸념을 좀 들어주고 일단 수고했다고 하고 집에서 보자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가서 시험지를 살펴보니 국어는 조금 어렵기는 했다. 국어, 수학 두 과목 모두 둘째가 한 노력에 비하면 턱없이 낮게 나왔다. 풀이 많이 죽었다. 의욕을 많이 잃은 것 같았다. 어쨌든 잘 다독여서 내일 시험을 잘 준비하도록 해야 했다. 오늘 시험은 이미 지난 일이므로 빨리 잊고 내일 영어, 과학을 잘 준비하면 된다고 했다. 대답을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긴 했는데,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둘째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일 시험을 아예 포기할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다. 둘째는 혼자 공부하기보다는 거실 식탁에 앉아서 같이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거실 식탁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둘째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니 둘째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동기를 부여하고자 했다.
영어, 과학 공부를 어느 정도 했나 확인해 보려고 문제집을 먼저 살펴보았더니 지난번 확인한 이후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영어나 과학은 어려워하기도 했고 흥미가 없어서 자신 없어했었는데, 그래서인지 겁이 나서 아예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난 최소한 2-3번 정도 반복 학습을 생각했었는데 3번은커녕 시험 범위를 한 번도 살펴보지 않은 것 같았다. 순간 띵 했다. 내가 둘째를 너무 대책 없이 믿었구나!(공부습관이 잡히지 않은 아이들은 직접 확인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부모가 개입한다면. 물론 학습양도 수준에 맞게 정해야 산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후회도 되고 당장 내일 시험이 더 걱정이 되었다.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화도 났다. 둘째가 많이 의기소침해 있었지만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몰아치면 기가 죽을까 봐 긴장할 정도로만 하고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영어는 살펴보지 못한 단원은 자습서, 문제집에 있는 문제 중심으로 풀고 내일 아침에 시간에 되면 요약된 내용을 한 번 살펴보라고 하고 마무리했다. 둘째도 걱정은 되었는지 생각보다는 집중해서 잘 마무리하였다. 문제 푸는 것을 보니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는 하는 것 같은데 영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다고 격려하고 마무리했다. 시간이 촉박하기는 했지만 마무리 짓고 나니 표정이 조금은 괜찮아 보였다.
과학도 둘째가 어려워하는 단원을 살펴보지 않은 것 같았다. 나도 과학은 잘하지는 못하지만 자습서 내용을 보면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일일이 다 설명을 해주기는 어려움이 있어 잘 읽어보고 문제를 풀어보라고 했더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미리 확인을 해볼 걸하는 후회가 또 한 번 밀려들었다.
다행히 영어, 과학 점수는 나쁘지 않았다(생각한 것에 비해 ㅎㅎ). 오히려 준비한 시간에 비하면 국어, 수학보다 결과는 좋은 것 같다. 시험이 끝난 후 둘째의 공부 패턴을 가만히 되새겨보니, 둘째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국어, 수학에 시간을 많이 배분한 것 같았다. 반대로 어려움을 느껴온 영어, 과학은 지레 겁을 먹고 제대로 살펴보지를 못한 것 같았다.
과목뿐 아니라 공부내용도 그렇다. 시험은 출제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출제자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대로 공부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문제에 접근하는 아이들이 많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나나 둘째뿐 아니라 대부분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은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부뿐 아니라 생활에서도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둘째가 부디 이 고비를 잘 넘어가길 바랄 뿐이다.
4학년 6개 반과 5학년 1개 반 체육수업을 하고 있는데, 수업시간에도 이런 아이들이 있다. 4학년 아이는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특히 강한 아이라 자신이 잘하는 활동을 할 때는 오버해서 참여하고, 하기 싫은 활동을 할 때는 한쪽 구석에 가만히 있거나 다른 친구들을 방해한다. 수업이니 어떤 활동이든 참여해야 한다고 하면 선생님은 왜 하기 싫은 활동을 하게 하냐고 오히려 화를 내어 나를 당황케 했다.
5학년 아이는 대부분의 체육활동을 거부했다. 5학년은 pops라는 체력 테스트를 의무적으로 측정해야 하는데, 이 측정마저 거부했다. 딱 한 종목 참여했다. 왕복 달리기. 나도 놀랬다. 다른 3개 종목은 거부했는데, 왕복 달리기는 적극 참여했다. 결과도 좋았다. 이 종목이 제일 힘든 종목이라 당연히 참여를 거부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열심히 뛰고 있지 않은가!
잘하고 하고 싶은 것을 더 잘하게 하고,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하는 것은 또 하게 하는 것, 이것이 교육자인 나의 숙명이다. 숙명이지만 이 과제는 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