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게스트하우스

by zlzl

젊은 시절 제주도를 여행하며 제주의 매력에 빠져 퇴직쯤엔 제주에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에 제주의 땅을 샀다. 땅은 샀지만 건물을 지을 여력이 없어서 밭으로 9년째 경작 중이다. 초보 땅주인으로서 경험해 보지 못한 힘든 일들('내 땅을 사수하라'로 연재 준비 중)이 많았지만 제주 숨겨진 매력에 힘든 줄 모르고 매년 서울과 제주를 왕복하고 있다.


오늘 이야기는 제주의 매력 중 게스트하우수를 이야기이다. 여러 명이 함께 방을 이용해서 잠을 잘 때나 씻을 때 불편한 게스트하우스가 제주만 가지고 있는 매력 중 하나라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공감할 수 있다면 충분히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1. 게스트하우스는 제주 곳곳에 널리 퍼져있어 접근성이 좋고 제주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도민분들이 사셨던 집을 리모델링한 곳들이 많아서 한적한 제주 시골마을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더 좋다. 시간대 별로 공통된 특징을 보면 동트기 전에 밭일을 나가시는 분들과 등교하는 학생들. 오후 무렵이면 산책하는 동네 강아지들과 동네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하시며 쉬시는 도민분들. 해가 질 무렵이면 제주의 뭉개 구름과 석양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까지 특이할 것 없는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도시 생활에 길들여져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 할머니 집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를 중심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의 모습들이 단단히 굳어졌던 가슴의 근육들을 풀어내는 것 같아 좋다.


열심히 살아온 40대 직장인들. 취직 후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열심히 달려왔지만 걸어가는지 뛰어가는지 또는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모를 때가 많다. 관성 때문에 혹은 흐르는 강물에 같이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옳다며 생각하며 달려온 누군가에게 천천히 흘러가는 모습들이 어쩌면 당연한 모습들이지만 평소와 다른 모습들로 신선함을 느끼며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러한 모습들은 제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맛집 또는 핫플레이스에서는 느끼기 어렵다. 자동차로 이동 중에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동차에 내려 두 발로 걷고 힘들면 그늘진 곳에 앉아서 쉬다 보면 조금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제주와 서귀포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밤은 어둡고 고요하다. 관광지는 6시 전에 문을 닫고 식당도 영업을 일찍 마감하는 곳들이 많다. 가로등이 적어 밤하늘의 별을 보기에 좋은 시간이지만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해가 진 밤 시간은 길고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의 시작은 이때부터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여행객들은 짐을 풀고 씻은 후 가벼운 요깃거리를 들고 거실 테이블에 모여 소등 시간까지 이야기 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보통 그날 하루 있었던 여행지에 대한 추천과 소개를 시작으로 각자 조사한 자료들을 공유하며 다음날 여행 계획을 수정 보안한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낸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그룹이 형성되고 이야기 중 몇몇이 호기심이 가는 다른 그룹에 가는 재그룹의 형성이 계속 반복된다. 이렇게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소등시간(게스트하우스 규칙 중 하나로 주변 민가 피해금지를 위해 만들어짐)이 오고 아쉬운 마음으로 각자 불편할 수 있는 침구로 들어가 피곤한 몸에 의지해 깊은 잠을 자게 된다.


사람마다 소극함의 정도가 다르다. 극심한 소극형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어려워할 수도 있고 정도에 따라 어려움의 정도가 나뉘겠지만 참가형 게스트하우스의 저녁시간은 참여를 강요하거나 제외하지 않는다. 마음속 빗장을 여는 만큼 참여할 수 있고 대화에 발을 담근 깊이만큼 재미와 공감을 가져갈 수 있어서 참여 부담이 적다.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자. 그리고 분기 또는 1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대화했던 주제들을 떠올려보자.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고 사회 속의 고민들을 나눴을 확률이 클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 만났던 게 언제였는지, 고민 없이 즐겁게 대화했던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 보자. 살아온 삶의 궤적과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삶의 짐과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듣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게스트하우스가 좋은 장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처음 1박을 했을 때를 추억해 봤다. 방 한 칸에 2층 침대 3개를 벽에 붙여 6명이 이용해야 하는 도미토리룸 방에 들어갔을 때, 나이 차가 아래로 15살 이상 차이나는 젊은 친구들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자기소개를 해야 했을 때.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생활의 불편함과 오해겠지만 젊은 친구들의 불편해할 것 같은 시선들. 이렇게까지 경비를 줄이는 게 맞는 것일까?


수년째 제주를 오고 가지만 게스트하우스를 처음 이용한 이후로 혼자 여행이나 밭일을 하러 올 때면 무조건 이곳에 묵는다. 편견일 수 있고 오해일 수 있다. 시도하지 않고 다른 시선으로 경험해 본다면 분명 자신에게 이로운 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면서 모르고 지나쳤을 '소소'한 매력를 찾았던 경험을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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