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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풍경 Nov 09. 2022

비를 듣다 비가 듣다

내 나름의 진정기법 활용기 ②


유리쪽마다 빗방울이 매달렸다.
오늘에 한해서 나는 한사코 빗방울에 걸린다.
-정지용 산문 '비' 





  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사무실에 나왔는데 가슴에 뭐라도 얹힌 것 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억누른 채 앉아있어보려다 우산과 핸드폰만 들고 나섰다. 저릿저릿 몸까지 쑤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신호를 무시했다가는 오늘의 일과가 어그러져 버릴 것이다. 골목 안이 적막하다.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 그저 빠닥 빠닥 빗방울만 수다스러운데 내려 부딪히는 사물마다 제각각인 성질 따라 그에 닮은 소리를 흉내 내며 운다. 뱁새, 참새가 작은 몸으로 낮고 바쁘게 날고 비둘기 대 여섯 마리가 금세 패인 인도 근처 물웅덩이에 모여들어 북적거리다 또 부잡스럽게 날아간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마주 보이는 24시간 무인카페가 내내 빈 공간이기에 들어섰다. 벽면이 낙서한 메모지와 도장 찍힌 보관용 무료쿠폰 낱장들로 빼곡하다. 학창 시절 단골 떡볶이 집의 벽면이 학생들의 낙서로 가득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20대 마지막 해에 청년부 동기들과 방앗간 드나들 듯 들렀던 분식집의 낙서가 벽지 역할을 했던 벽도 역시 떠오르고.



 다행히도 빗소리와 추억이 공명하여 엇나가지 않고 그럴듯하게 화음을 빚어낸다. 상가의 학원이 끝났는지 초등학생 둘이 들어와 마카롱을 까먹으며 평범한 대화를 나눈다. 떡볶이집 대신 이곳이 너희들의 아지트일 수도 있겠네. 딸아이가 생각나 모르는 사이 입가에 미소가 걸려 대롱거린다. 딸 또래의 소근거리는 여자 아이들의 음색이, 레몬 슬라이스가 동동 떠 있는 얼그레이 티의 향이, 빗소리의 차분함이 나의 추억 저장고에서 '편안함과 무해함'이라는 감각을 인출해 코 앞에 펼쳐 널어놓는다. 



그 감각에 기대어, 나의 내면에 '무해함'이 뭉근하게 풀어지고 '편안함'이 묵직하게 자리잡도록 기다린다. 타인으로부터 전이된 불안과 긴장들을 툴툴 털어내고 사무실로 복귀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다 문득 중얼거린다. 오늘의 비는 어떠한 비일까? 투명한 비닐 우산 위에 듣는* 빗방울이 사납지 않았고 제법 머문 카페의 큰 창 앞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기운을 차렸다. 그래, 충분히 위로 받았으니 내가 만난 비는 ‘공감을 잘 하는 비'다. 





뿌리는 비, 날리는 비, 부으 뜬 비, 붓는 비, 쏟는 비, 뛰는 비, 그저 오는 비, 허둥지둥하는 비, 촉촉 좇는 비, 쫑알거리는 비, 지나가는 비, 그러나 11월 비는 건너가는 비다. 

-정지용 저, 권영민 편, 정지용 전집 1권, 민음사. 
 2부 산문 '비'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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