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bbie Nov 28. 2023

쓰여지지 않은 마지막을 찾는다.

<상자 속 사나이> 체호프


읽던 소설 마지막 세네 장이 사라졌다.
작가도 페이지도 세상에 없다면,
상상하거나, 스스로 묻거나 둘 중 하나다.


전환점을 맞는 곳에서 체호프는 작품을 끝낸다.

뜯어진 페이지를 찾아 헤매다 길을 잃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주인공 삶은 바꿨을까.

알 수 없던 모호함과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불쑥 튀어나와 해석을 요구한다.


<상자 속 사나이>에는 항상 덧신을 신고, 우산을 들고 솜으로 된 따뜻한 코트를 입는 원칙 주의자 ‘벨리코프’가 살고 있다. 마을에 역사 지리 선생 ‘코발렌코’가 그의 누이 ‘바렌카’와 함께 이사 온다. 사람들은 바렌카와 벨리코프를 결혼을 시키려 노력했고, 둘의 관계는 조금씩 발전하는 상황. 자전거를 탄 것을 두고 어른 답지 못하다며 벨리코프가 지적하자, 코발렌코는 분노해 벨리코프를 계단으로 던져버린다. 실수로 넘어진 줄 발렌카는 웃음을 터트리고, 심한 모멸감을 느낀 벨리코프는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벨리코프의 힘에서 벗어난 도시는 희망에 부푼 듯 보였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론 없는 평범한 이야기. 황망한 결말을 뒤로한 채 다른 작품을 읽었지만 형식과 결말이 비슷했다.


잊고 있던 상자 사나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학인에게 건넨 축복 인사를 타고 나왔다.


당신이 나보다 낫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습니까?


“원래 본성이 고독해서 조개나 달팽이처럼 자기 껍질 속으로
기어들려는 사람들이 세상에 제법 많거든요.”
p.148 <상자 속 사나이> 사랑에 관하여


달팽이처럼 못하는 이유를 동여맨 채 시도도 하기 전 운전 못하니까, 시간 없으니까 라는 상자 속에 숨기 바빴다. 매일 식사를 고민하고, 아이 등원 시키고, 운동하는 하루는 상자 속 공 굴러가는 듯하다. 조금이라도 어긋날 까 긴장하고 부지런 떤다.  


우리는 영웅이 되기를 희망하고, 로또가 당첨되길 바라지만 실제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 최고의 순간에도 그것을 유지할 길은 없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며 나 자신조차 쉽게 바꿀 수 없는 일상을 체호프는 보여준다. 소소하고 지루하며 별것 없는 세상에 지금 우리가 있다.


고매한 이상과 과자 먹는 소리에도 못 미치는 실천능력을 자책했다. 모든 것은 큰 의미 없는 세계일 수 있다는 체호프의 말은 승모근까지 올라온 잘해야 한다는 긴장을 녹여준다.  

작품에서 문제 제기만 했던 작가지만, 실제로 의료 봉사, 집필, 후원으로 답을 찾아 나간 그였다.


모든 삶의 색을 담을 수 없어 각자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넣어둔 작품.


마지막  페이지를 제대로 완성한 사람이 없어 100년이 지나도록 이 가슴 저 가슴으로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만 지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새롭고 아름다운 인생이
시작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멀고도 먼 길이 남아 있으며,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두 사람 모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마지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