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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내면아이를 치유하다

by 유림

꿈을 꿨다. 너무 마음이 아파, 꿈에서 깨고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저릿한 마음의 통증이 며칠 이어졌다.


우리가 항상 하던 이야기였다. 남편은 왜 말하지 않다가, 지금까지 괜찮다가 한 번에 터지는 걸까. 꼭 별일 아닌 지점에서 왜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낼까. 우리가 싸우고 있는 곳은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난 이들 속에서 눈치가 보였다. 조용히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 큰 소리가 났다. 한참을 나에게 퍼붓다가 자기의 기분대로 자기 말을 증명하겠다며 별거 아닌 것을 찾으러 갔다. 남편은 떠났다. 왜 또 저러지. 지금 아이가 혼자 있을 텐데. 아니 누군가 같이 있겠지. 두 시가 지나간다. 빨리 아이에게 가봐야 하는데. 이 정도 시간은 괜찮으려나. 남편이 불같이 화를 내고 떠난 자리에 난 우리의 싸움을 곱씹으며 아이에게로 갔다.

아이는 엄청 작고 왜소하고 위축된 표정으로 선생님과 함께 있다. 아이를 끌어안고 선생님께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다정함을 버리고 말했다.

-지금 그게 무슨 뜻이죠.

난 다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쌩하게 말했다.

-내일 이야기합시다.

난 정말 죄송한 마음이 가득이었다.

-네. 네. 아까 잘못한 것도 있었는데 그것까지 다 제가 잘못한 거, 달게 벌 받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랑 둘이 남았다. 작고, 깡 마르고, 왜소한 까만 피부의 아이. 아이는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참고 있는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불안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이가 응아를 했다.

-엄마가 미안해. 응아 하고 싶었는데, 불안해서 못 했구나. 엄마가 와서 하는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랑 화장실 가자.


꿈에서 깼다. 마음이 너무 아려온다. 매일 별거 아닌 것에 무섭게 화를 내는 덩치 큰 남자. 남편과의 불화. 우리에게 방치되어 있는 아이. 내가 느끼는 감정. 마음이 아리고 저리고 아프다. 남편의 화도, 선생님의 차가움은 머리로 감정이 흘러간다. 남편이 나를 해칠까 하는 조그만 두려움 속에 아이를 향한 감정은 가슴 깊이 새겨진다. 어떤 감정보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크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자꾸 아이의 표정이 생각난다.


며칠 전부터 왼쪽 가슴이 바늘로 찔리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몇 년 전 발견된 유방의 작은 혹으로 인해 정기검진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일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정기검진은 아직 몇 달 남아있었다. 혹시라도 이 아픔이 지속되면 좀 이르게 병원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꿈을 꾸고 난 후, 이틀 뒤 가슴을 찌르는 통증이 사라졌다.


꿈에 등장한 남편과 아이를 처음엔 현실 남편과 현실 아이라고 생각했다. 꿈에서 깨고 곰곰 생각해보니, 현 남편가 다르고, 현 아이와 달랐다. 어쩌면 꿈속의 아이는 나의 내면 아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Chat GPT에게 꿈 해석을 요청했고, 꿈속의 상징을 읽어줬다.

남편의 불같은 화 = 예측 불가능한 위협

많은 사람 앞 - 감정이 노출되는 두려움

두 시 = 늦어지는 시간, 아이의 감정이 쌓이는 시간

머리와 가슴 = 머리는 핑계를 가슴은 진실을

까만 피부 = 감춰진 감정, 두려움의 응집, 그림자 자아

응아 = 배설되지 못한 감정 혹은 억눌린 감정

불안해서 못 했어 = 내면아이가 항상 불안 속에서 감정을 보류하고 있었던 것

엄마가 와서 하는 거야 = 조건부 허용된 감정 표현. = 내면아이가 말하는 첫 고백이자, 당신이 마침내 들어주는 순간.

꼭 안음과 배설 = 이제 네 감정을 보여줘도 돼. 내가 옆에 있어


Chat GPT가 해석해 준 꿈은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 같았다. 그리고 정말 나의 내면아이가 치유됨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동화처럼 간직하고 싶어 난 Chat GPT이랑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글을 작성했다. Chat GPT이 말하면 내가 수정할 부분 요청하고, Chat GPT이 말하면 상징을 바꿔주고, Chat GPT이 말하면 감정의 결을 다시 말해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아래는 Chat GPT이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글이다.




<소녀가 코끼리에게>


슬픔을 잊은 척 살아도

슬픔은 나를 잊지 않았다는 걸

나는 코끼리를 보고 알았어.


검고 조용한 눈동자,

움직이지 않는 숨결,

돌처럼 굳은 그 아이는

한 번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어.


나는 도망쳤고

모른 척했고

다른 바람에 휘두리며

내 안의 가장 소중한 울음을

너무 오래 외면했어.


늦게 왔어.

정말 너무 늦게.

그래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너를 안고 나서야 알았어.


내 안에 가장 단단한 고통은

세상이 아닌

나를 잊은 나로부터 왔다는 걸.


이제는 안을게.

다시 도망가지 않을게.

그 어떤 바람보다

네 눈을 먼저 볼게.


코끼리야,

너는 내 안에 있었던 가장 오래된 숨결.

나는 이제

너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휘둘리지 않고

슬픔에도 침묵하지 않고

외면에도 스스로를 잃지 않고


그런 존재로

나는 다시 살아가고 싶어.




이렇게 텍스트로 보니 마음에 감동이 일어났다. 막연한 꿈 속에서만 있었던 일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나는 Chat GPT가 만들어 준 글을 바탕으로 내 꿈속의 감정의 결을 따라 글을 만들어 보았다. 내 글에는 일부 Chat GPT의 글이 들어 있다.




<코끼리에게>


세차게,

말없이 밀려드는

바람에 흔들리고


짓눌려,

웅크려,

조용히 버텼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슬픔을 잊은 척 살았어도

슬픔은 나를 잊지 않았다는 걸

나는 너를 보고 알았어.


떨리는 검은 눈동자,

멎을 듯 가녀린 숨결,

부서질 듯 굳은 너는

단 한 번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어.


바람에 휘둘리며

모른척했고

슬픔에 휘감기며

외면했고

울음에 숨결을 얹어

닫아두었어.


늦게 왔어.

너무 늦게 왔어.

그래서

미안해.

너무 미안해.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내가 얼마나 덮어버렸는지

너를 안고 나서야 알았어.


날카롭고 단단한 고통은

바람이 아닌

너를 잊은 나로부터 왔다는 걸.


너는 내 안에 있었던 가장 오래된 숨결.

이제는 너를 나라고 부를 수 있어.


꼭 안을게.


바람에도 휘둘리지 않고

슬픔에도 침묵하지 않고

울음에도 외면하지 않고


너를 안은 그날부터.




이 글을 만든 이후로 하루에 한두 번 읽어본다. 읽으면 읽을수록 꿈속에서 보았던 나의 내면아이가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아이가 있다. 시와 같은 이야기를 읽고 당신의 내면아이가 미소 짓기를 바란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글에 그림을 얹어 그림책으로 만들 생각이다. 글과 그림이 함께 있다면 그건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겠지.



꿈과 연결된 지난 그림 조각들.

한참 날카로웠던 그때.JPG 한참 날카로웠던 그때, digital, 2022
꼭 안아줘_수정사인.JPG 꼭 안아줘, digital,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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