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살이에서 얻는 인간관계들, 어쩌면 허망하고 어쩌면 소중한
홍콩에서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넘어온 지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인 한 명 없는 외딴 나라에 혼자 와서, 이제는 가족과도 같은 친구들도 생겼고, 스쳐가는 인연들까지 포함한다면 많은 만남이 있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얕고 넓은 관계를 맺게 되기 마련이다.
식당에서 서비스를 주시던 아주머니에게 나는 "서울에서 왔고 현재 대학생인 누구"라고 소개한다. 오늘 이후로 이 아주머니를 볼 일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아는 채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떨러 간 바에서 늦은 밤 번호를 묻던 그 남자. 대화를 몇 번 나눈 뒤 다시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 하던 그 눈빛 속 간절함은 밝은 햇빛 아래 시내에서 다시 봤을 때 이미 사그라져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동료로 만났던 그는, 홍콩, 그것도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인 데다가 공통분모가 많아 급속도로 친해진다. 남자친구가 있는 나에게 밥을 먹자고 물어보기가 거북했는지 거리를 두더니 이제는 연락도 안 하는 아쉬운 사이가 된다.
우리는 이렇게 뻔한 미래를 알면서, 또 모르면서 사람들을 우리의 삶 속으로 들인다. 어쩌면 가족 하나 없는 타지에서 살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들을 선택해야 하는 일은 상당히 잔인하지만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이다. 내가 지금 저녁을 먹는 이 사람과 1년 뒤에 또 만날 일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이 사람은 나로부터 특정한 조언만을 듣고 단물만 빨아 날아가버릴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어쩌면 이게 소중한 인연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렇게 몇 번 단물이 빨리고 나면, 물질화되어 가는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회의를 느끼는 것에서 멈추면 좋으련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 - 또는 시간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 - 계산적으로 변하게 되는 나를 보았다. 그런 나를 직시한 순간, 스스로에 대한 묘한 혐오감이 들기도 했다.
인간관계라는 게 참 애매한 것이, 너무나도 상대적이고 비밀스럽다.
상대적이라는 것은, 두 명의 사람이 만나서 하루를 보낸다고 해도, 한 명에게는 올해 최고의 날이었음에도 다른 한 명에게는 지옥과도 같았던 하루였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비밀스럽다는 것은,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면할 때에 그 사람의 빼어난 점과 모난 점을 보게 되고 그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애정과 불신을 조금씩 쌓아가게 되지만, 나의 그러한 미묘한 평가를 절대 바닥까지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입이 싼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많이 보았다. 세상에 비밀이랄 게 없는 투명한 사람. 그런 사람을 친한 친구로 두면 아무래도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망설여진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나의 비밀을 털어놓기가 불안해요."라고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상대가 상처를 입을까 봐.
곧 다가오는 줌 미팅이 있어, 조금 있다가 이어서 대화하도록 하자.
흐르는 강물과 같이, 때로는 이어지고 때로는 갈라지는 형태로 연재를 할 예정이니 저의 구독자가 되어 꾸준히 읽어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