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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제없는 스튜디오 Jan 06. 2023

보호 제도가 있는데, 없었습니다

골칫덩어리 취급에 익숙합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주변 어디에서도 날 이해하거나 감싸 안아주지 않았다. 그저 문제 많고 구제불능인 골칫덩어리로 치부되었다. 장애가 있는 친구랑 놀지 않고 얌전히 학교생활을 했다면 학교폭력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세요’ 이 말을 더 강하게 했다면 집단 성폭행을 겪지 않았고, 조사중인 경찰로부터 내가 소년원에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듣지 않았을까?


 수 백, 수 천 번 돌이켜보았다. 이미 사건은 벌어져있고, 감당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이 일로 파생되는 나의 우울, 자해, 자살 충동과 과거의 트라우마 또한 내가 평생 지고 버텨야 한다. 다만, 아쉬움은 있다. 만약 학교가 안전했다면, 집이 따뜻했다면, 병원이나 상담소 사람들이 날 비난하지 않았다면, 나는 자살시도를 하려 했을까. 모든 일의 시작은 아주 어릴 때 겪은 학교폭력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졸업까지 학교폭력을 겪었다. 당시 집은 언니의 고3 스트레스, 엄마의 암투병으로 혼자서도 잘하는 막내딸을 원했다. 밖에서 일만 해온 아빠는 세 딸을 키웠지만 막내인 내 머리를 묶어 학교를 보내는 게 제일 어렵다고 했다.

 용돈으로 주당 2,000원을 받았다. 준비물을 사기에도 부족했다. 어떤 날은 어렵게 마련한 준비물을 괴롭히던 애들에게 빼앗겼고,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언니는 그 애들을 만나 “그러면 혼나! 빨리 물건 돌려주고 사과해”라며 화를 내고 내 편이 되어줬다. 작은 고마움도 잠시, 언니는 집 가는 길에 그 애들에게 화낸 것 보다 더 나를 혼냈다. 내가 싫다는 표현을 분명하게 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라며, 다신 이런 일로 부르지 말라고 했다.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더 어려웠다. 엄마의 입원으로 나는 8살 때부터 엄마와 떨어져 살았다. 당시 학교 수업 중에 소원 10가지 쓰라고 해서 '엄마와 10밤 자기'를 썼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빨리 보고 싶은데 언제 오냐고 펑펑 울었다. 저녁 준비 하면서 듣고 있던 아빠는 전화를 당장 끊으라고 불 같이 화를 냈다. 아픈 엄마에게 울면서 그러면 되겠냐고 옆에 있던 단소로 팔, 다리, 배 상관없이 맞았고, 무릎 꿇고 손 드는 벌을 받았다.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걸 몸과 마음에 새겼다.


 초등학교 졸업까지 혼자 버텼다. 버거운 날엔 자해를 했고, 나한텐 어떤 친구보다 다정한 일이었다. 내가 자해를 들킨 건 중학교 1학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정서검사에서 자살 고위험군으로 판명 나 상담을 받았을 때였다.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여타 선생님들께 내 상태가 알려졌고, 학교는 소문이 정말 빠른 곳이라 학생들에게도 알음알음 퍼졌다. 지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절대 검사지에 우울하다고 체크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고위험군 친구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들은 바다.


 wee클래스 상담은 최악이었다. 자해를 한다는 이유로, 내가 말한 어떤 것도 비밀 보장이 되지 않았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외출증을 끊고 수시로 외부 상담소나 정신과를 다니도록 강요받았다. 거부하면 집에선 화를 냈고, 뜻을 꺾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데려갔다. 내 의사는 아무도 신경 쓰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다. 날 돕기 위해서라는데, 호의로 포장한 말과 행동들은 더 아팠다.


 내 상태는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자기 직전에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빌었고, 과거의 일이 꿈으로 나타나서 괴롭히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가방에 책이나 관련 유인물을 챙기는 건 소홀해도 응급처치 구급키트는 항상 빼먹지 않고 챙겼다. 만반의 준비로 등교했어도 학교에 있으면 죽을 거 같았고, 쉬는 시간을 활용하여 자살 계획과 유서를 썼다. 이럴 수 밖에 없는 내 심정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았다.

 하루는 하교 후 따로 불러낸 교감선생님이 한 번 더 자해하면 부모님의 동의 없이 자신의 교감 직권으로 날 정신병원에 넣어버리겠다고 wee클래스에서 말씀하셨다. 지금이야 거짓이라는걸 알지만, 교감, 교장 선생님은 당시 나에겐 아무때나 만날 수 없는 높은 사람이라 사실이라고 믿었다. 교감선생님의 입장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학교의 입장에선 아프고 문제 많은 나를 수용하기 골치 아팠을 거다.


 그 날을 계기로 2번의 가출과 설득을 통해 자퇴했다. 학교 밖 청소년 4년차, 자유롭지만 아직까지 힘들다. 우울, 불안, 불면과 동거하고 있고, 자살, 자해 생각도 방심하면 올라온다.


 많은 기관, 단체, 사람들은 청소년의 건강한 삶 영위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학생과 학교 밖 청소년 모두를 포괄하는 1388,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등을 운영한다. 홍보도 많이 해서 한 번쯤 들어봤을 수도 있다. 청소년 상담 복지센터의 경우 시군구 지역마다 1개씩 의무적으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1388은 같은 시간대 여러 명이 접속하면 원활한 상담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없고, 내가 살던 곳은 엄청난 시골이라 구색만 갖췄을 뿐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상담사도 예산 문제로 변변치 않고, 곳곳이 케바케라 나처럼 급격한 위기 상황이 생기는 경우엔 도움 받기 한계가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wee클래스도 있다. 이용 대상은 학생으로만 제한되고 학교 당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마다 상담교사의 역량도 태도도 달라서, 급박한 어려움에 있는 학생이 적절한 도움을 받는 건 운에 달렸다.


 여러 기관에서는 청소년들의 삶을 살핀다며 각종 조사를 실시한다. [1]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표준화 검사 등을 한다. 매년 나오는 통계자료는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답은 ‘No'다. [2] 학교폭력을 겪고 있어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신고하는 게 더 위험해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제출할 수 있고, 자해나 자살,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에 고통스럽더라도 괜찮다는 청소년들은 꽤나 있다. 누구나 아프고 힘들면 병원을 가 진료를 받고, 상담을 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 중2병, 사춘기는 나의, 청소년들의 아픔을 덮어 가려버리는 편리한 말이다.


 어떻게 하면 어려움에 처한 청소년이 안전하고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지금의 제도에선 마땅히 없는 것 같다. 청소년은 미성년자라서 법적 보호자에게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고, 때로는 그게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족쇄가 된다. 난 여기서 호기심이 생겨 청소년들의 실생활 가까이에서 학교폭력을 비롯한 여러 사건을 밀접하게 만나는 한 명의 경찰관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다. 


 답변에 따르면 하루에도 10건 이상 청소년의 가출, 비행, 폭력 문제가 발생하고, 빈도와 심각함은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위기청소년을 발견할 경우, 각종 기관에 연계를 통해 지원하는데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어 해결에 난항을 겪는다고 한다. 인터뷰한 경찰이 담당했던 피해지원의 경우 당사자인 청소년이 원해도 부모의 강경한 반대로 어려움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쉼터에서도 이런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입소 시 부모님의 동의를 받고, 만일 부모가 찾아온다면 학대의 증거가 없는 이상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거 날 때려서 병원에 데려갔던 일, 신체적 폭력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학대한 일을 나열해도 제도의 눈엔 모두 내가 보호받을 충분한 사유가 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4년 전 가출 했을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쉼터 입소 규칙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쉼터의 종류마다, 지역마다, 쉼터의 사람과 각자의 상황마다 달라 내 케이스 하나로 단언할 순 없다. 누군가에겐 쉼터의 기억이 가장 편하고 안정된 때일 거고, 실제로 청소년들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쉼터의 기억이 좋지 않게 남아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의 수도 그만큼 많다. 그때에도 내 의사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청소년의 문제가 개인의 잘못일 수 있을까? 형식적으로 제도를 만들고 이런 게 있다는 시늉보다는, 진심으로 맞이하는 안전한 울타리가 나에겐 절실하다. 위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어떤 환경에 있어도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위험해지지않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정서 검사지를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문제를 터놓을 수 있고, 어린 누군가는 학교폭력을 용기내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의 구멍에 빠졌다는 이유로, 피해 청소년들이 홀로 폭력을 견디지 않도록 말이다.



문제없는스튜디오 스토리에디터

레아 (2019-20 <학교폭력이 아닌 학교폭력> 시리즈 기획/제작)


그림

실뱌



[1] 국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청소년 건강관리행태 실태조사 (질병관리청, 1년 주기), 국내 아동종합실태조사(보건복지부, 5년 주기), 국내 청소년종합실태조사 (여성가족부, 3년 주기), 국내 학교밖 청소년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3년 주기) 등이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는 2021년에 <10대 청소년 정신건강 실태조사>라는 연구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2] "왜 우리는 학교폭력을 신고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으로 문제없는 스튜디오에서 <학교폭력이 아닌 학교폭력>이란 영상을 제작했다. 링크는 문제없는 스튜디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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