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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제없는 스튜디오 Nov 16. 2022

1029 참사 이후 10대들의 일주일

다수의 1~20대가 한날한시에 죽은 1029 참사를 청소년들은 어떻게 마주하고 있고, 각자의 일상은 어떻게 지나가고 있을까요? 깊은 애도와 회복 이후, 더 안전한 청소년들의 일상을 만들 수 있도록 이 이야기를 남깁니다. 이번 1029 참사로 희생된 모든 분들과 주변분들께 깊은 애도와 조의를 표합니다.


이 대화는 11월 5일(토) 문제없는 스튜디오 정기 모임에서 나눈 대화이며, 가독성을 고려해 최소한의 윤문만을 진행했습니다. 비슷한 얘기를 묶으면서 순서를 일부 편집하였으며, 반복되는 내용과 관련이 없는 내용은 생략하였습니다.


청소년 스토리에디터: 나나(일반중3, 시흥 거주), 더블모찌(특목고2, 경기 거주), 라코(일반고2, 인천 거주), 서월(일반고1, 파주 거주), 서준(특성화고3, 서울 강동 거주), 비건서진(서울 광진구 거주)

20대 PD: 루루, 실뱌, 야채

책임: 징타


10.29 참사, 이렇게 접했어요.

10월 29일 (토)는 올해 청소년에디터들이 제작한 영상의 상영회가 있었고, 영상제작과 상영회 준비/진행으로 다들 지친 상태였습니다.

나나: 저는 그날 새벽에 안 자고 있었는데, 트위터 들어가니 실트(실시간 트위터 검색어)에 이태원이 계속 올라오는 거예요. 거의 다 도배된 것처럼. ‘뭐지?’ 하고 봤는데, 너무 충격적인 영상들이 많았고, 무방비하게 접했어요.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휴대폰 끄고, 이불을 이렇게 좀 덮고 있다가 잔 것 같아요. 다음 날, 더 자세하게 뉴스에서 보고 사상자가 얼마 나왔다 보고 나니 너무 무섭더라고요. 제가 거기 있던 것도 아니고, 제 방에 있었는데도 손이 떨렸고, 무서웠어요. 그날 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다 괜찮은지 반 친구들 30명을 확인하셨고요. 반 카톡방에도 카톡 읽으면 바로 그 투표에 확인 남기라고 해서 그렇게 주말이 지난 것 같아요.


실뱌: 이태원 영상 올라오는 것들, sns에 무방비하게 올라오더라요.


라코: 저는 당일에는 몰랐고, 다음날에야 알았어요. 철없이 그날 친구들 불러서 '할로윈 파티 해야지' 했는데, 부모님이 이런 일이 있었다 해서 너무 놀랐죠. 카톡에 다들 무사하냐 선생님이 체크하는 메시지가 올라와서 다들 괜찮다고 했고, 그러면서 상황 파악을 하게 됐어요.


서월: 저는 그날 이태원 부근에서 놀다 왔어요. 버스정류장에 제가 가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는 버스가 섰는데요. 거기 줄 서 있던 수십 명이 한 버스에 타는 거예요. 버스를 좀 늦게 타서 맨 앞자리에 앉았어요. 이 모든 사람들이 같은 목적지에 가는 걸까 생각했는데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라고요. 축제에서 하늘에 조명 쏘는 거 보고 알았어요. 엄청나게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박물관 광장에서 축제를 열었는데 줄이 너무 길고 사람도 많아서 아무 데도 못 가겠더라고요. 거기는 좁지 않고 트인 곳이어서 움직일 수 있었어요. 슬프게도.. 그 시간에 이태원에 있었던 거죠. 두 블록 떨어진 데 있었어요.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 덜 피곤했다면 갔을 거란 말이에요. 그날 상영회 준비하고, 온 친구들 챙겨주고 하느라 피곤해서 그냥 밥만 먹고 들어갔는데, 안 그랬으면..


더블모찌: 저희도 선생님이 카카오톡으로 한번 인원 파악하고, 이건 다 한 것 같아요 다른 학교도. 저는 이태원을 자주 가는 편이 아니거든요 놀랍게도. 제가 코스프레도 했었고 얼굴에 이렇게 칠하고 다니는 거 좋아하니까 엄청 자주 갈 것 같이 생겼지만, 몇 번 안 가봤어요. 연락을 진짜 많이 받았어요. 그날 문제없는 스튜디오 일정으로 서울 간다는 거 주변에서도 알았거든요. '너 이태원 갔니?'라는 얘기를 참사 다음 날, 그 다다음 날까지도 여러 번 들었어요. 
제 주변에 이태원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언니들 중에 특히 드랙쇼하는 분들은 이태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거든요. 그래서 당일에 다 연락 돌리고, (인스타그램) 스토리 확인하고, '살아 있다' 다 확인하느라고 좀 바빴고요. 코스프레하시는 분들도 주변에 많다보니, 작정하고 나가신 분들도 정말 많았거든요. 코스프레 판에서는 중학생이 코스프레 상태로 나갔다가 실종돼서 그것도 엄청 (SNS에서 얘기가) 돌았었고요. 아무튼 제 주변은 다들 살아계셨어요 다행히. 
저는 전과목 과외를 하거든요. 과외 선생님들 중에 대학생 선생님이 한 분 계신데 학교에서 한 분 돌아가셨다고 해서 검은 옷을 입고 오셨다고요. 바로 다음 날 공부를 그렇게 했죠..


학교의 일상은 어땠어요?

나나 : 학교에 갔는데, 애들이 이 얘기를 별로 안 했어요. 저도 친구들이랑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어서, 그냥 혼자 무섭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애들끼리 얘기를 했긴 했겠죠? 저희 반 애들은 거의 안 했지만. 제 옆자리 친구는 “어른들 일이라고 애들끼리 말하는 거 아니”라고 엄마가 그랬다더라고요.
애들끼리 햄버거 놀이(여럿이서 몸을 쌓으면서 하는 놀이) 하던 애들도 좀 조심했어요. 좀 이상한 애들은 그거 보고 '그러다 너네 진짜 압사 당해' 이런 얘기도 하고.. 진짜 요즘 어떤 애들은 말을 조심해서 안 하는 게 느껴져서 무서워요.


서월 : 저희 학교는 (할로윈으로) 포토부스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어요. 친구들끼리 부스에서 사진 찍고 500원 정도 내면 사진 인화해서 가져는 거예요. 포토부스를 학생회에서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이제 못 하는 상황이 된 거잖아요. 아무래도 준비하던 애들은 참사보다는 포토부스 행사를 못하는 아쉬움을 더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니까, 이상한 소리를 막 하더라고요. 왜 그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행사를 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애들이 되게 많았어요. 나는 거기 가지도 않았고 내가 겪은 일도 아닌데, 내 지인이 겪은 일도 아닌데 라면서요. 그런 걸 보면서 인류애가 뚝뚝 떨어지는 거예요. 이런 애들이랑 한 교실 안에서 얘기하면서 잘 지내고 있었던 게 약간 손사래 칠 정도로 애들이 무서워지더라고요. 애들이 제가 그날 서울에 놀러 나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야 너 거기 갔다 온 거 아니야?' 이렇게 저한테 말을 걸었는데 손만 발발 떨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때 이후로 그런 말을 한 친구들이랑 지난 일주일동안은 한 번도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루루: 이런 얘기 저도 주변에 하면서 느낀 건데요. “손해 보는 게 너무 싫어서 그런가?”라는 생각 진짜 많이 했어요. 참사라고 말해주고, 사고라고 말 안 하려고 노력하면 되는 건데, 누군가는 그게 그렇게 어렵고 싫은가? 아주 작은 것도 손해 보고 싶지 않은 가봐요..


나나: 저희 학교도 제가 학생회라 할로윈 포토부스 기획을 하고 있었고, 참사 전날도 준비하고 있었어요. 월요일 개시 예정이었는데, 참사 이후로 모든 행사 취소가 내려져서 월요일에 일찍 가서 부스를 다 허물었어요. 저희 반에 개인적으로 해놓은 풍선도 다 터뜨리고.. 학교에서 다른 행사들도 다 취소하고, 철거하고, 그런 걸 보면서 ‘이게 심각한 일이구나’라는 걸 애들이 깨달았던 것 같아요.


서월: 저희 학교는 지금 회장/부회장 선거 기간이에요. 선거 운동하는 시기라, 애들한테 예민한 상황이 된 거죠. 이번 참사에 관해 얘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이게 표수가 갈리니까. 이번 참사에 대해서 안타까움과 슬픔이 아니라, 계산적으로 투표수로 계산을 하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닌데 학교가 정치판도 아니고..' 했어요. 물론 정치판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되게 꺼려지지만요.
저희 학교는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입구에 이번 참사를 애도하는 포스터를 부착해놓은 상황이에요. 한 며칠, 화요일 수요일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목요일 날부터 본관 들어가는 제일 큰 입구 포스터 옆에 포스트잇 2장이 붙어 있는 거예요. 보통 제가 학교에 거의 제일 먼저 가는 편인데, 포스트잇 2장 딱 붙어 있는 거를 발견했죠. '이번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 지인분들, 당사자분들 애도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이런 포스트잇과 검정 리본이 붙어 있고, 이런 걸 보면서 우리 학교에는 이번 참사를 진지하게 슬퍼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고, 저도 포스트잇을 남겨놨어요. 그날 하교하면서 봤어요. 문 전체가 포스트잇으로 다 뒤덮였였더라고요. 포스터가 아예 안 보일 정도로. 제일 큰 문이라 계속 열었다가 닫아서 포스트잇이 훼손되지 않도록 학교에서 그 문을 걸어 잠갔어요. 
다음주쯤 되면 아마 학교에서 제거하거나 옮기지 않을까라는 싶긴 한데, 그래도 반에서 인류애가 막 뚝뚝 떨어지는 얘기를 듣다가, 다시 충전해서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싶었고요. 나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라코 : 저희는 일부러 이 얘기에 대해서 많이 안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주말에 뉴스를 보고, 음.. 학교에서 얘기가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얘기가 거의 안 나왔어요. 몇 명만 얘기하는 수준이고. 서월네 학교처럼 포스터  그런 건 아예 없었고요. 아무런 일이 안 벌어진 듯이 그냥 지나왔어요. (울먹하여 목소리가 잠긴다)
제가 오늘 지하철 타고 오는데, 원래는 에스컬레이터 되게 많이 이용하시잖아요. 사람들이 근데, 이제 참사 이후에 사람들이 이제 모여 있는 거를 조심하다 보니까 계단을 많이 이용하시더라고요. 그런게 좀 바뀌지 않았나 싶었어요..


실뱌 : 대학교이긴 한데 학생들 사이에서는 별 얘기 없었거든요. 근데 학교 홈페이지나 학교 카톡으로 ‘혹시 이번 참사 이후로 좀 마음이 계속 불편하거나 힘든 일 있으면 학교 심리상담센터로 연락을 달라’고 그런 게 오더라고요. 제가 성동구 사는데, 성동구에서도 그런 연락이 오더라고요 참사 이후로 힘들거나 심리 지원을 받고 싶으면 어디로 연락해달라. 나라 전체가 그냥 나라 단위로 큰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거 밖에 생각이 안 들긴 해요.


학교는 무언으로 아무 일 없는 일상을 강요했다   

서월: 학교에서 포스터와 포스트잇으로 얘기한 것도,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한 거지 선생님들 입에서 이태원 얘기가 나온 거는 당일 피해인원 확인한다고 언급한 그거 딱 한 번 외 학생들이 아닌 선생님들 입에서 이태원이 나온 적은 없었고요. 이 일에 대해서 너희 일 아니니까 묵인하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죽었는데, 우리는 여기서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가.. 우리의 일이 될지도 모르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누가 하지? 죽은 사람들이 죽고 싶어서 죽은 게 아니잖아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목적일 텐데, 학교 내 어른들은 말이 없고, 학생들이 이 얘기를 먼저 꺼내야 한다는 게 너무 참담했죠. 슬프지만 이게 현실인가 싶고요. 


나나: 진짜 공감해요. 너네는 어리니까 이런 일은 어른한테 맡기고, 너네는 신경 쓰지마. 이런 걸 더 부추기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은 공무원이시니까 인원 파악하고 의무적으로 다니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서월 학교처럼) 포스터나 포스트잇도 없었고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대로 굴러가고.
왜 애도를 해야 하는지 모두가 아는 건 아니잖아요. 왜 애도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얘기는 조금도 없이, 일단 모든 행사 취소만 하고 그냥 학교를 다니래요. 이런 상황이 이상한 말을 하는 애들을 더 부추기는 것 같아요. 세월호 때도 그렇고.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떤 얘기조차 없이 지나간다는 게 어이가 없는 것 같아요.


서월: 돌아보면 학생들이 이런 참사에 대해서 말할 자리가 없네요. 저희 학교가 그나마 나았던 거지, 라코나 나나는 학교에서 아무런 언급이 없는 거잖아요? 저희 학교가 그나마 얘기를 나눈 건지도 저는 몰랐거든요. 이렇게까지 아무 얘기가 없는지 몰랐어요. 우리 학교가 얘기를 너무 안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어서.. 되게 충격적이기도 해요. 어쩌면 제일 이 일에 관해 가장 많이 얘기해야 할 사람들인데요.


라코: 제가 사실 이 뉴스를 보고 나서 많이 울긴 했는데, 저는 좀 애도 자체를 그냥 얘기를 안 하는 거로 했거든요. 얘기를 듣고 보니까 약간 학습된 애도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울먹) 사실 저는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좀 많이 힘드네요..


더블모찌 : 학교에서 뭔가 했다는 얘기 처음 들어봤어요. 저희는 조회 시간에 선생님이 이런 참사가 있어서 너무 슬픈 심정이다라는 얘기를 한 번씩 하셨는데요. 결정적으로 애들이 관심이 없어요. 제가 특목고이고, 잘 사는 동네이기도 하고 그런 의식이 있는 거 같아요. '나는 저럴 일 없어' '난 쟤네랑 달라' 내가 신경 쓸 일 아니야 라는 분위기가 겉으로 보기에 있어요. 편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이 편견 그대로인 느낌. 
차라리 학생들한테 이번 참사에 대해 교육을 해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수요일날 창체(창의적 체험활동) 이런 거 한다고, 매번 하는 장애인 인권교육했거든요. 그때 이태원 얘기하면 딱 좋잖아요.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사람이 밀집될 수 있는 곳을 피해라. 뻔한 말이라도 형식적으로라도 뭐가 됐든 얘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서월: 저희도 금요일은 그런 교육을 하는 날이거든요. 장애인 인권교육, 성교육.. 정확히 말하면 성폭력 예방 교육이지만. 진짜 아무도 안 들어요. 어느 정도냐면요. 학교 방송실에 송출하는 영상이 전부 다 끊겼는데 이유가 학교 학생들의 과도한 와이파이를 이용이었어요. 아무도 안 듣고 그 시간에 다 영상 보고, 게임하고 그런 거죠. 아무도 듣지 않는 그런 교육을 할 바에 실질적으로 우리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힘든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 우리가 애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같이 나눌 수 있는 기회 정도를 마련을 해줬으면 좋지 않았나. 진짜 학교에선 언급이 없어요. 너희는 잊어라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이번 참사가 각자에게 어떤 거리감으로 다가오나요?

다수의 1-20대가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었는데요. 각자에게 어떤 거리감으로 다가오나요..?

나나: 이태원은 거리가 가깝지도 않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매우 가깝게 느껴졌어요. 거기에 직접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서 정신적인 충격을 많이 말하게 되는데요. 정신적인 안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요. 학생으로서 가까운 상담센터는 위클래스인데, 위클래스 상담 선생님이 이미 저를 알고 '나나는 밝고 어디든 나서는' 이미지로 알고 계시는데, 제가 이번 참사 이후에 느낀 무력감이나 힘듦, 죽고 싶은 생각. 이런 얘기를 해도 안전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상담 이후에 또 무슨 일이 생기거나 부모님에게 알려지거나 소문이 날지도 모르고요. 이런 감정에 대해 누구한테 말을 하고 싶어도 친구들한테는 말을 못 하겠고, 전문적인 분한테 상담을 받고 싶어도 청소년으로서 어려운 게 실황이니까요.


더블모찌: 저는 개인적으로 엄청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람이에요.  제가 사실 살면서 한 번도 안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여성이어서, 청소년이어서, 퀴어여서요.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아까 말했듯이 주변 분들이 이태원을 활동무대로 많이 활용하시니까요. 연락 돌리고 받고 할 때 진짜 확 느꼈던 게 ‘나 죽을 수도 있었구나’라는 실감이죠. 친구의 친구가 이태원 갔다가 딱 그 골목 바로 앞까지 갔대요. 그 골목 들어가는 데까지 갔다가 '여기 사람 너무 많다. 옆으로 가자' 해서 살아남은 거죠. 다시 돌아오는 길에 경찰이 아무 얘기도 안 해주고 그냥 길을 막더래요, 가지 마세요! 이러면서 왜 막고 난리야 이랬는데 집에 와서 딱 보니까 사람이 이렇게나 죽었구나 오...
이태원은 제가 나중에 커서 이태원에서 일할 수도 있거든요. 사실 가능한 일이 아니라, 그냥 할 것 같거든요. 안타까운 거는 이태원이란 동네에 관해 골목 자체의 지형의 위험도라던가, 유흥거리 근처 치안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이나, 그런 얘기를 주변분들로부터 많이 들었는데, 뭔가 사람이 죽어야만 변화가 생길 조짐이 있는 것 같아서 착잡해요. 죽어도 정신 못 차릴까봐 힘들긴 한데, 아무튼 그래서 살면서 한 번도 안전한 적 없는 고등학생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서월: 저는 사실 이번 참사가 정말 너무 크게 와닿아요. 솔직히 세월호 때엔 제 나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세월호 침몰도 뉴스에서 많이 나와서 알았지,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그때 느낀 건 세월호에서 죽은 사람들이 정말 많고, 대처를 잘 못해서 사람들을 잘 수습하지 못했다. 그 정보로 저한테 직접 다가오는 슬픔이나 무서움은 거의 없었거든요. 근데 이번 일은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내가 겪을 수 있는 일이란 실감이 너무 크게 들어요. 중고등학생이 죽었다는 사실만큼이나 “그 사람들은 놀러가서 죽은 건데 뭐 그렇게까지 애도를 해야 하냐”며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러워지더라고요. 저한테 하는 말처럼 들리는 거죠.


나나: 저도 세월호는 와닿지 않았거든요. 그때 유치원생이었고, 그냥 언니 오빠들이 많이 죽었고, 다들 슬퍼하는구나. 안산시 단원구 4.16 기억교실이 제가 거리가 가까워서 자주 갔었는데, 그때는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커서야 좀 와닿았고. 지금은 이번 참사가 되게 가까운 일로 생각되어요.


실뱌: 가깝게 느낄수록, 힘든 마음이 커지는 것 같아요. 전 세월호 당시에 중학교 2학년이었고, 세월호 침몰 일주일 뒤에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었어요. 그때 주변 지인이 아는 사람이 있어서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었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서 많이 힘들었는데요. 체감상 지금이 그때만큼 마음이 힘들더라고요. 세월호 이후로 참사나 사람들이 많이 죽는 전쟁 같은 일에 되게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어요. 그런 걸 상담 가서 말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트라우마로 남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무력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할로윈은 소중한 해방의 시간

'왜 그런데 놀러가냐' 라며 쉽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말들이 주변에서, SNS에서 쉽게 볼 수가 있는데..   

실뱌: 할로윈이 제 또래에서는 제일 큰 행사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할로윈 되면 분장을 하거나 뭐든 준비해가지고 에버랜드나 롯데월드를 가던가 되게 많이 했던 일이에요 청소년 때. 근데 어른들한테 할로윈은 (어른 흉내: 서양 귀신이여~) 네.. 저희보다 어쨌든 덜 챙기고 하니까 공감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저희 엄마도 저한테 할로윈을 그렇게까지 많이 챙기나? 그냥 놀러 온 거 아니야? 했는데.. 엄마 세대 때 크리스마스랑 비슷하지 않을까 하니까, 그건 좀 알 것 같다고 하시더라요. 그만큼 큰 행사고 저 10대 때엔 진짜 많이 챙겼어요.


루루: 저도 매년 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는 거 자체를 뭐라하는 건 진짜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 1년에 진짜 몇 번 안 놀잖아요. 설날이나 추석도 엄밀히 쉬지 못한다고 했을 때, 1년 내내 기다리면 딱 그런 하루 정도 날인데.. 그래서 저는 더 그 사람들이 너무 마음 아픈 거거든요? 그렇게 놀러 가는 자체가 일상에서 너무 흔하지 않은 일인데. 축제 자체가 별로 없잖아요. 그 하루의 해방감을 위해 처음 간 사람도 있었을 거고요.
근데 놀다가 죽었는데 왜 애도해야해? 보호를 왜 해줘야해?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 너무 폭력적이에요. 요새 노는 거 자체를 되게 죄악시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저희 에타(에브리타임: 대학생들의 학교별 커뮤니티)에 저급한 글 진짜 많이 올라오는데, 그중 하나가 놀다가 죽는 애들 말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을 위해 한 번 더 애도나 해라 이런 거 많이 올라오는데요. 어떻게 죽었던 한 나라에서 10명 이상이 일상을 보내다 죽었을 땐 시스템의 부재라고 생각하는데. 그 점을 주목해야 하지않을까..


더블모찌: 세월호가 터지고 수학여행, 체육 대회 진짜 아무것도 못했거든요? 조금만 뭔가 놀러간다는 느낌만 나면 취소됐고. 어디 놀러 가는 행위를 금지시킨 거니까, 아마 이번 참사로 노는 게 금지가 될 거란 말이에요. 친구들이랑 파티하지 말고, 콘서트도 가지 말고. 물론, 애도 없이 과하게 놀거나 무례한 행위는 없어야겠죠. 근데 이런 건 오히려 반감만 더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비건서진: 초등학교 때 세월호 이후 학교의 모든 소풍 수학여행을 취소했던 정부 모습과 겹쳐 보여요.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해요. 제 친구들 중에서 공연예술 종사자들이 있는데, 그들도 엄청 곤란해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행사 스태프로 일하는 입장에서 올해 초 행사들은 다 취소가 되었는데요. 생업임에도 어떤 지원이나 보상을 받기가 어렵네요.


책임 지고 재발 방지를 위해 애써줄 분 찾습니다 (안 보여서요)

서월 : 아까부터 거리감을 가까이서 느낀 사람으로서, 정부의 의도가 정치에 정말 관심이 조금도 없는 저 같은 청소년에게도 빤히 보였다면.. 모두가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 사람들이 지금 책임을 회피하고, 다른 얘기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구나. 이 일을 국가의 애도 기간으로 덮어서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알리고, 빨리 이 일에서 빠져나가고 다 이걸 그냥 없었던 일 취급해 버리고 싶구나라는 걸 정말 많이 느꼈단 말이에요.


서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기자회견 같은 데에서도 농담이나 하고. (관련 기사: "통역 안 들리는 책임은?") 그런 거 보면은 참..


야채: 애도를 어떻게 할 거냐는 얘기로 책임의 의제를 흐리고 있는 것 같아요. 과하다 아니다 이런 이야기로 흘러가는 건 정말 원치 않아요.. 결국에는 우리가 해야 되는 거는 이분들에 대한 진심을 담은 애도와 더이상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아야 되는 거니까요. 그러려면 우리 한 명 한 명이 어떻게 해야하냐가 더 중점적으로 얘기가 나와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이런 자리가 되게 뜻깊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배울 수 있고, 입막음하지 않고 다양하게 발화해보자고요. 


그 이후 뒷 이야기

청소년 에디터들과 지난 대화 이후 다음 모임(11.12)에서 추가로 나온 얘기들입니다.

라코: 저는 그날 얘기로 몇 가지 의문이 생겨 주변 분들에게 여쭤보았어요. 먼저 학교에서 왜 이런 얘기를 안 하는지 친한 선생님께 조심스레 여쭤봤는데, 본인이 정치 선생님이 아닌데 그런 얘기는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셨대요. 자기 위치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이상해보일 수 있겠다고 어려웠다고 하시는데 그럴 수 있겠다 싶었어요.
부모님과도 얘기해보았는데, 아무래도 수능을 앞두고 참사 얘기를 하기가 분위기상 어렵지 않았을까 하시더라고요. 괜히 영향줄까봐 조심스럽다고. 우리나라는 수능날 비행기도 뜨지 않는 나라잖아요.


(to 서월: 포스트잇들은 어떻게.. 잘 유지되고 있어요?)

서월: 문에 붙어있던 포스트잇들은 예상대로 사라졌어요. 행방이 궁금해, 선생님들 통해 알아보니 포스트잇 그대로 교장선생님에게 전달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의 이런 생각을 처음 마주했다며 생각이 많으셨다나봐요. 지금 교장선생님은 내년에 다른 학교로 가셔서, 다음 교장생선님에게 그대로 전달하신다고 해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교실 창문에 친구들과 검은색 리본을 달아놓았는데요. 조만간 수능때문에 교실을 비워야 해서 곧 떼어야겠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어떤 선생님이 애도기간이 끝났다고 ‘이제 떼야지’하며 저희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확 떼버리더니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저희의 마음을 짓밟은 느낌이 들어서 너무 슬프고 화가 났어요.. 저희 학생부를 담당하는 선생님이기도 해서, 평소에 이상한 정치 얘기를 해도 암말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수업 보이콧하자는 얘기가 친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어요.


더블모찌: 저는 그날 대화 이후 알게 되었는데요. 코스어 판에서 유명한 제 팔로워 중 한 분이 돌아가셨더라고요.. 같은 카톡방에서 활동하셨던 분이라, 지난주보다 더 가까이 이번 참사가 다가왔네요.




이번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과 그로 인해 많은 슬픔을 겪은 모든 분들께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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