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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 Mar 23. 2023

만만디는 왜 안되는디



올림픽 공원 사거리 아스팔트 신에게 휴대폰 액정을 제물로 바치고야 말았다. 일요일 아침, 나는 2만 6천여 명의 인파 속에서 마라톤뽕을 맞으며 서울 도심을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날씨가 화창했던지라 3km정도를 지나자 코밑과 목 뒷덜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머리를 높게 묶고 싶어졌다. 호주머니가 없어서 휴대폰 쥔 손으로 머리카락 뭉탱이를 우악스럽게 잡고 고무줄에 쑤셔 넣다가 그만 휴대폰을 떨어뜨려버렸다. 액정필름이 여러 갈래로 쩌억 갈라져버렸다. 휴대폰 내동댕이 전적이 화려했던 탓에 전원마저 나가버렸다. 마침내...


아직 완주하려면 거리가 한참 남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려 애썼다. 고치면 되지. 그리고 어차피 바꾸려고 마음 먹었던 참이었으니까 괜찮아.(휴대폰이 내 마음을 듣고 몸을 던진 것인가.) 다행히 나는 '걷지 않고 완주하자.'라는 목표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뛰는 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10km를 뛰는 것은 이번 대회가 처음인지라 '다른 사람보다 빨리 뛰려고 애쓰기'보다는 욕심 부리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완주'하는 것이 셀프 미션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열. 자꾸 사람들을 앞서고 싶은 충동이 마음 속에서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나를 추월하는 이의 뒷통수를 볼 때마다 찾아오는 조급이가 충동이를 더 부채질했다. 나는 급히 조급이와 충동이를 테이블로 데려와 대화를 나누었다.

-너 지금 뒤쳐지고 있어. 뒤쳐지면 끝장이야. 어떡할거야. 정말! 나 불안해 미치겠다고!

조급이가 주먹을 꽉 쥐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하이톤으로 소리쳤다.

-속도를 더 내면 마지막에 못 뛸 것 같아서 페이스 조절 중이야. 좀 늦으면 어떠냐? 괜찮아.

내가 조급이를 달랬다.

-다 제껴버리란 말이야! 당장 따라잡으라고! 넌 오늘도 패배자가 될 거냐? 더 빨리 다리를 움직이라고! 어서!

동굴 보이스의 충동이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다그쳤다.

-난 펀런하러 왔다고. 완주만 해도 만족하기로 결심했단 말이야. 왜 이겨야 하는데? 왜 남들보다 빨라야 하는데?

주눅이 든 내가 묻자, 조급이와 충동이가 도끼눈으로 날 흘겨보며 혀를 찼다.

-당연한 걸 왜 묻는 거야.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라.

-애초에 질 것 같으니까 미리 쉴드 치는 꼴이란. 비겁한 자식.

나는 그들에게 제대로 된 반박을 하지 못한 채 찝찝한 마음으로 완주했다. 1시간 11분. 다른 크루원들에 비해 현저히 느린 기록이었다. 내 목표대로 걷지 않고 최선을 다해 완주했는데도 왜 기쁘지만은 않은 건지. 왜 더 빠르지 못하고 남들보다 앞서지 못하는 날 자책하고 미워하게 되는 건지. 왜 앞서나가는 것이 기본값이 되어버린 건지. (쳇, 잘해야 본전인 거잖아.) 머릿속에서는 풀리지 않는 물음표들만 불어나갔다.


"버스기사가 갑자기 내려서는 한참을 돌아오지 않는데도 승객들이 아무 불평불만을 안 하길래 깜짝 놀랐어.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께서 여행을 다녀 오시고는 중국의 '만만디 문화'에 대해 설명해주셨다.(중국도 지역별로 다를테고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지금은 아닐 수 있겠으나) 그때는 경악했다. 우리나라에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친듯이 빠르고 빼곡하게 흘러가는 21세기의 코리안 타임라인을 따라가려니 가랑이가 수십 번 수백 번 찢어져 꼬매지도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뒤쳐질 수 없으니 가랑이가 찢어져도 따라가야 한다. 뒤쳐지지 않는 것보다 내 가랑이가 훨씬 중요한데 왜 내 가랑이에게 자꾸 이번 한번만 참으라고 해야 하는 건지. 이 쳇바퀴는 언제 멈출 수 있는 건지, 멈출 수는 있는 건지 의문이다. 경제력도, 외모도, 능력도, 인기도, 센스도, 취미생활도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 '남들만큼'이란 단어가 너무 무겁다. 평생 난 세상이 정해준 과목들에서 몽땅 다 에이플러스를 받지 못하면 패배자가 된듯한 기분을 느껴야 하나 서글퍼진다. 그래서 나포함 많은 이들이 빨리 그 지점에 도달하려 노력하고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가 행복하기 위해서인지 불안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헷갈리지만.


가끔 이민을 가야 하나 고민할 때도 있다. 말도 느리고 밥도 천천히 먹고 행동도 빠릿하지 못한 나같은 느림보는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가 참 고달플 때가 많아서이다. 내 경우, (하기 싫은) 일을 빨리 하는 이유가 '이 일을 못해내면 다른 사람에게 욕 먹을까봐' 혹은 '이 일을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이다. 즉, '두렵고 겁나서'이다. 그래서 정신이 없어도 어떻게든 주어진 일을 해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제 '두려움'을 내 행동의 추진력으로 삼는 것에 지쳤다. 지친 정도가 아니라 진절머리가 난다. 정말 '빨리빨리'가 정답이자 우월한 것이고 '만만디'는 오답이자 열등한 것일까? 오히려 만만디가 요즘 다들 열광하는 여유와 힐링의 상징이 아닌지.


일요일이라 휴대폰을 바로 수리하지 못했다. 강제로 24시간 넘게 휴대폰 없이 생활했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고요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1달 정도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월요일에 수리를 맡기기로 했다. 가까운 수리센터를 컴퓨터로 찾아 지도를 출력하니 아날로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수리센터에 도착하자 엔지니어들이 30명 정도 상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번호표대로 휴대전화 뒷자리를 호명하고 수리하고(를) 또 호명하고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이전고객과 다음고객 사이의 텀은 5초 남짓이었다.

"수리비용은 13만 5천원인데 깨진 액정을 반납하시면 8만 6천 원으로 할인됩니다."

"얼마나 걸리나요?"

"40분 정도 걸릴 거예요."

"네, 해주세요."

올해 동아 마라톤 10K 참가비가 6만원이었는데 난 8만 6천 원의 추가요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마라톤 후유증에 엎드려 잠들랑말랑 하고 있을 때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수리가 끝났다. 어떤 나라는 수리하는 데에 며칠이 걸린다고도 하던데, 이건 우리나라 '빨리빨리 문화'의 혜택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 속 '빨리빨리'vs'만만디' 논쟁의 결론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둘 중 하나만 맞다고 우기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이 둘을 어떻게 통합해서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세상이 재촉하는 속도 말고 내 리듬대로 살고 싶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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