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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Mar 30. 2023

남편은 내게 도시락 싸달란 말을 못한다.


미뤄두었던 건강검진을 받았다.

남편은 운동과 담쌓고 사는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병치레를 달고 사는 남편을 걱정했다.


골골백년이라고 하던가?

작게 자주 아픈 사람은 병원을 가까이해서 큰 병에는 걸리지 않는 편이라지만 타고나길 위와 장이 약해 고생하는 남편이 걱정이었다.


검진 결과,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다만 남편의 식도 부근에서 큰 염증들이 발견되었고 어디 장기 쪽에는 물혹도 큰 게 있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 그냥 평범한 물혹이란다.)

유독 밖에서 식사를 하면 속쓰림과 배탈이 자주 나는 터라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 남편이 위궤양으로 고생을 해 몇 개월 간 도시락을 싸 준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 남편의 컨디션은 늘 좋았다.

180센치가 훌쩍 넘는 키에 70키로가 되지 않을만큼 말라서 시어머니도 살 찌우는 걸 포기했던 그가 70키로를 부쩍 넘겨 73키로를 찍었고 언제나 몸에 활력이 돈다고 했다.


그러니 결정은 쉬웠다.


"자기야. 도시락 다시 싸줄게. 들고 다녀."


순식간에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그리고 슬쩍 덧붙인다.


"사실 부탁하고 싶었는데 매번 미안해서..."


직장 근처에 이젠 더 갈 만한 식당도 없고, 먹고 나면 부대껴서 소화제를 가방마다 들고 다니는 식사 시간이 참 곤욕이었노라고 그제야 털어놓았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

"말했잖아, 미안하니까."


소심한건지 배려심이 깊은 건지.

아니다, 그냥 여전히 날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 뭐.




<오늘의 메뉴> 쌀밥, 돼지고기간장볶음, 멸치볶음, 메추리알장조림, 배추김치, 방울토마토



오랜만에 꺼낸 도시락통을 하나씩 채우고 있자니 예전 기억이 새록거린다.


"음! 채소가 또 부족하군."


고기고기한 단백질 식단을 사랑하는 나와, 풀떼기 좋아하는 신랑의 입맛은 언제나 평행선을 이루지만 도시락을 쌀 때 메뉴는 전적으로 내 몫이니, 내 맘대로 준비한다.


그러고 보면 도시락을 싸 줬을 때의 남편 건강은 내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단백질의 효과였나?


이것, 참.

알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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