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6일
그를 향해 가고 있는 어느 청명한 가을날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내가 너무 한낱 작은 사람 같아서 서러워 울었다. 나는 태평양을 건너 그를 보러 왔다. 조그만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에서만 30년을 살아온 나이기에 미국 방문은 신기할 정도로 믿기지 않는 경험이었다.
24시간이 주어진 이 시간에서 16시간 시차처럼 그는 16시간을 앞서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8시간 만을 살고 있는 사람 느껴졌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출입국심사를 받았다. 타투를 가리고 화장을 지운채로 말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
세칸더리 룸에 당연히 가게 될 줄 알았으나 그의 기도 덕인지 아니면 나의 주문 Welcome to the USA를 듣게 될 거야 되새겨서 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사히 통과가 되었다.
물론 스케줄 플랜부터 호텔 바우처 얼마나 우리가 만났는지,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실제로 만난 적은 있는지, 얼마나 그가 자주 한국에 왔었고 그의 직업과 회사, 나의 직업과 회사에 대해 물었다. 나의 대한 질문보다는 마이클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거 같아서 이상했다.
무사히 짐을 찾고 게이트를 나가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내 예상을 뒤집고 머스탱 스포츠 카를 가지고 왔는데 한국에서부터 문자로도 우리가 지하철이나 우버를 타야 한다고 그는 말했기에 차를 가져온 그의 서프라이즈에 놀라다 못해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거칠게 운전하는 그를 나는 달래야 했는데 “여기는 미국이야. 우린 이렇게 운전해.”라고 말하는 그에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운전을 거칠게 하고선 나를 작은 섬으로 데려갔는데 그게 어디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황량하면서도 넓은 미국을 처음 보면서 호주를 생각했다.
다만, 미국에서 본 그는 거칠고 와일드하고 차가우면서도 다정하기 짝이 없었다. 시간을 내서 나를 데려와주고 데려다주고 같이 여기저기를 보여주고 그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왜냐면 그는 내 파트너가 아니고 남자친구이기에.
다운타운 버클리에 주차를 하고 그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오니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고 내 호텔은 가격에 비해 허름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체크인을 하고 옷만 갈아입고 그와 함께 밖으로 나가 기라델리 초콜릿 가게를 구경했다.
그리고 트램을 타고 피어 39에 도착해 구경을 했는데 너무너무 날씨가 바람이 불어서 추워서 재킷을 가져오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친구 한솔이가 말해준 하드락 카페를 보았지만 들어가지 않았고 나는 마그넷 하나와 엄마에게 보낼 엽서를 샀다.
바다사자가 지천에 깔려있는 피어 39는 신기하면서도 신기하지 않았다. 지나가다가 올리브영 같다는 CVS를 들어가 보았으나 너무나도 워킹데드 같은 분위기에 바로 나왔다.
그에게 반쯤 안긴 상태로(그가 팔을 내 어깨에 감싸고 걸었다. 한국에서는 안 그랬는데 왜 미국에서는? 엄마 왈 내 여자라는 걸 표현하는 거라고 했다.) 걷다 보니 우리는 인 앤 아웃에 도착했다. 그는 핫초코와 치즈버거를 주문해 주고 나는 자리를 맡았다.
그곳에서는 예쁘장한 아시안은 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눈길을 끄는 아시안 여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 정도로 한국이 미의 기준이 높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왜 나를 포기하지 않는지 조금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기대했던 인애아웃은 맛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맛있게 먹는 척을 했다. 다시는 먹고 싶지 않고 나는 셰이크쉑이 좋았다.
그와 밥을 먹고 나서 얼어 죽을 뻔했지만 공원을 걷고 팔라스 오브 파인 아트에 갔다. 매우 로맨틱했고 그가 나에게 뽀뽀를 해줘서 좋았다. “데려와 줘서 고마워.”라고 했고 그는 “당연하지!”라고 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커플답게 거칠게 섹스를 했다. 나는 처음에 그를 잠자리 때문에 좋아한 게 아니었는데 어느샌가 그렇게 된 것 같다.
샌프란을 떠나는 마지막날이 되었을 때 비행기 안에서 깨달은 건 그를 향한 내 마음도 시속 5720km로 멀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