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미용 Mar 18. 2024

아빠? 강사 아님?

아빠는 그럴 수 없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햇살에서 봄기운이 느껴졌다. 아이를 등원하켜주고 돌아오는 길에 이정표로만 봤던 여의도 한강공원엘 갔다. 딸아이와 오랜만의 데이트였다.

 

 이른 시간이라 맘에 딱 맞는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캠핑의자 2개를 폈다. 준비한 도시락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떠 온 두툼한 회 한 접시를 차려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최고의 만찬이자 풍경이었다. 딸아이와 맛나게 먹고 한바퀴 걷고 돌아와보니 우리 옆으로 삼삼오오 자리를 잡은 팀이 가득했다. 그 중 아이들과 나온 가족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아빠와 딸이 있었으니 바로 '배드민턴 부녀'였다. 아무 움직임 없이 앉아서 군것질을 하던 우리는 움직이는 물체에 저절로 시선을 빼앗겼다. 잠시 잠깐 하다 마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 가량 이어지는 배드민턴 경기가 자못 재미있었다. 아빠가 어떤 공도 높이 받아 쳐주니 아이는 한껏 신이 났다. 점수를 내기 위한 경기가 아니라 주거니 받거니 아름다운 하모니였다. 나와 딸아이는 한참을 구경하면서

 " 저 아빠 정말 멋지다."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아이와 놀아주다니 놀랍다."

 " 나도 저런 남자를 만나야겠어. ㅎㅎ" " 우리 옆에 있는 잘생긴 아저씨는 먹기만 하잖아. 저런 아빠는 안됨"

 " 맞아, 저 집 엄마는 편하겠다." 

 초등학교 2학년 쯤 보이는 딸과 한참을 치다가 이젠 댓살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친다.


 세상에. 이젠 제대로 된 폼을 알려준다. 아이도 제법 비슷하게 따라하는 폼이 아빠가 한두번 놀아준 게 아니다. 셋이 하하호호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잘 들어보니 아빠는 아이들에게 ' 잘 했어요. 그렇죠.'살짝 존댓말을 한다. 이런 환상적인 아빠라니....우리의 눈엔 부러움과 존경의 하트가 뿜어져 나온다. 

 "혹시, 저 아빠 직업이 배드민턴 강사 아니야?" 딸아이가 의문을 제기한다.

 " 그러게. 아이들이 어린데 저정도 실력이라면 이건 보통 레슨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몇 년 전에 잠깐 배드민턴 레슨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나도 맞장구를 친다.


 셋이서 노는 동안 엄마처럼 보이는 우아한 여성은 한두번 모습을 보였다. 긴머리를 치렁거리며 썬그라스를 낀 모습은 멀리서도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아마 저기에서 돗자리를 깔고 커피를 마시는 중일 것이다.

오..두툼한 자태~~

한참을 깔깔거리며 놀던 아이들 소리가 잦아들어 돌아보니, 배드민턴 아빠가 백팩에 라켓 2개와 작은 공을 넣고 혼자서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 엥? 아빠는 쉬지도 먹지도 않는거야?"

마침 우리는 화장실 쪽으로 이동중이라 그 아빠를 따라가 본다. 주차장에 있는 차에 가방을 빠르게 실더니 부릉~~~~ 혼자서 가 버린다. 

"헐...." "배드민턴 강사였던거야?"

"요즘엔 놀이체육이라고도 하드라....."


우린 마주보고 한참을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그래, 솔직히 너무 이상적이었다. 보통의 다른 아빠들과는 완전 다른 놀이형 아빠였다. '토요일에 아이들과 놀잇감을 챙겨 공원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아빠야' 했던 우리의 첫 대화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한강라면을 흡입하며 놀아달란 아이에게 '잠깐만~"을 외치던 아빠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깜빡깜빡 비상등 켜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