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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효설 Aug 24. 2023

D+32. 당신에겐 완벽한 탈출구가 있나요?

저한텐 없습니다

 자꾸 제주 한 달 살기를 검색해 본다. 한 달 살기를 할 돈이 있지도 않고, 돈이 있다고 해도 내 성격상 정말 떠나지 않을 텐데도. 나만 그런 게 아니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는 휴가철에 맞춰 동남아 항공편을 알아본다. 대한민국 사람들 다 해외로 나가는 것 같아.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 푸념이 담긴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집이나 회사가 아닌 어디라도 간다면 뭐라도 될 것 같았다. 사실 알고 있으면서. ‘여기’서 안 되는 일은 ‘거기’서도 안된다는 걸. 막힌 속을 뚫어줄 탄산음료 같은 공간은 절대 없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탈출구를 가지고 있다. 여행이나 운동, 새로운 사람 만나기 등 종류는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행만을 탈출구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마 광고의 힘이 크지 않을까 싶다. 고생한 자여, 떠나라! 피드에 올라오는 수없는 여행 사진들.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웃고 있다. 얼굴을 찡그린 자는 아무도 없다. 여행만 떠난다면 손쉽게 ‘행복’이란 걸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물론 여행은 즐겁다. 나의 몇 번 안 되는 해외여행 경험은 참 즐거웠다. 하지만 내가 떠났던 여행을 전부 즐거웠다고 할 수 있을까? 그중 스트레스가 됐던 여행은 없었나? 있었다. 

 내가 탈출구라고 여기는 걸 쭉 적어보았다.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힐링’ 목록. 여행은 아주아주 늦게 나왔다. 나의 탈출구는 여행이 아니었다. 한 달 살기를 검색하던 창을 껐다. 나에게 부담이라고 느껴졌던 게 힐링의 목록에 적히기도 했고, 꽤 우선순위라고 생각했던 게 뒤늦게 떠오르기도 했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영상 보기, 운동하기, 차 마시기……열 가지 넘는 목록을 쓰면서 실실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 표정이 굳기도 했다. 모두 나에게 숨 쉴 구멍이 되어주진 않았다. 다들 어딘가 막힌 구석이 있었다. 글쓰기는 언제나 부담감을 가지고 있고, 그림은 잘 못 그린다. 내가 원체 약한 영상매체는 완벽한 힐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목록이 길어질수록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을 쓰다 막히면 그림을 그리면 되고, 그림을 그리기 싫어지면 차를 마시며 명상을 해도 된다. 내가 주로 원하는 탈출은 혼자서, 집에서도 즐길 수 있었다. 꼭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 


 궁극의 집순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게 아닌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MBTI 성향상 E고,  집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다. 이틀에 한 번은 반드시 산책이라도 나간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공간에 찾아가는 걸 좋아한다. 꼭 내향형 인간이라고 내향형의 취미를, 외향형이라고 외향형의 취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 외향형인 내가 혼자 하는 탈출구를 즐기는 것처럼.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탈출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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