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노 Feb 08. 2022

세상 어디에도 똑,똑하며 뛰는 심장은 없다.




그녀는 목걸이를 만지면 할 말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듯 목걸이 팬던트를 만지작거렸다. K는 그녀의 곤란함을 배려로써 모른 척해주기 위해 자기 몫의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그녀가 결국 다음 할 말을 찾지 못한다면, K는 기꺼이 몇 잔이고 주문할 생각이었다.


이윽고 팬던트를 어루만지던 손이 차가운 잔을 들어 냉기가 머물러있는 K의 손가락 위로 포개어졌다.
팬던트엔 아무래도 이야기 주머니의 기능은 없나 보네,라고 K는 생각했다.
하얗고 가늘고, 그럼에도 따뜻한 손가락 다섯 개가 보드라운 손바닥으로 모여 있다. 작은 그 안은 생각보다 아늑하고 포근해서 K는 아주 오랜만에 무엇으로도 상처받지 않을 어떤 강인한 보호를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건 어렸을 적 낯선 사람들 속에서의 따듯한 어머니 품과 같고, '잃은 길'에서 찾은 아버지의 손과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가볍지만 정확한 의도로 K의 손 등을 두 번 두드렸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전해 내려온 그녀만의 마법일지도 모른다.
K는 똑,똑.
두 번의 작은 손짓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공명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놀랐다. 오히려 할 말을 잃은 쪽은 K가 되었다. 그녀가 보여준 거대한 마법에 필적할 만한 무언가는 K에게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에 선 '그런 건'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K가 우물쭈물할 시간은 없었다.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티 없이 웃으며 미처 K가 주문하려 했던 맥주를 두 병이나 더 추가했기 때문이다. K가 생각했던 배려의 방법 그대로 말이다.


그 후로도 맥주는 몇 번인가 더 추가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K는 웃고, 목이 마르면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배가 차면 화장실을 갔다가,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기도 했다.


시간을 이렇게 보내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다고, K는 생각했다.
새벽이 깊어지고 나서야 K는 그녀와 헤어졌다.
거실의 불도 켜지 않고, 낮부터 답답했던 양말도 벗지 않고서 K는 그대로 소파 위에 고꾸라졌다. 겨우 맥주를 마시고 취한 것도 아닐 텐데 K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잠에 들면 분명 50년 뒤에나 깨어날 거야, K는 확신했다.
똑,똑.


K는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세상 어디에도 똑,똑하며 뛰는 심장은 없다. 아마도. 자신이 아는 한에 선 '그런 건'없었다. 누운 자세 그대로 왼쪽 가슴 위로 손을 올려보았는데 손바닥에 열이 느껴질 만큼 뜨거웠다.


한 참을 이상한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던 K는 돌연 눈물이 흘렀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똑,똑. 울리는 소리가 너무 고독해서 눈물이 났다.


뭐라도 채워야겠다고 K는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비어있는 만큼 울림은 더 커졌다. 그제야 K는 두 번의 작은 손짓이 자신에게 어째서 그렇게 큰 공명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이해했다.


그 밤, K는 낯선 사람들 속에 남겨진 아이처럼, 길을 잃은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이상한 심장 소리가 묻도록 일부러 아주 크게 소리 내서 울었다.
감정을 이렇게 보내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다고, K는 생각했다.


그리고 K는 마음껏 그녀를 탓했다. 자신을 이렇게 허물어지게 만든 건 그녀의 마법 때문이라고 질책했다.
K는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배려라는 것을 아주 잘 알았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