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급이상 회식이 있었다. 이미 팀장을 포기한 상태인데 참석하는 게 민망했지만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용기 내어 참석했다.
그동안의 회사 생활에서 우울증으로 상태가 안 좋아지면 상황을 피하기만 했다. 도망치고 피해 있다가 다시 돌아왔고 적응을 했다.
하지만 이번엔 외톨이가 되려 하는 나를 사람들 속으로 끌어들여 주는 분이 있다. 내 직속 상사가 이번엔 또 물에 빠진 나를 건저 주었다.
나를 대체할 팀장을 구하지 못했고, 그 일을 고스란히 본인이 짊어지고 가셔야 하고, 챙겨야 하는 팀이 7개나 되고, 매주 계속되는 CEO보고와
하루라도 계획된 대로 되는 일 없이 이슈와 이벤트인 상황에서 문제아인 나를 챙겨주신다. 그래서 또 염치없이 그의 챙김을 받고 회식자리에 갔다.
나의 팀장 포기를 이미 알고 계신 분도 있고, 그 자리에서 알게 되신 분도 있었다. 난 회식을 가기 전에 마음속으로 각오를 하고 갔다.
“ 참 비겁하네요!, 책임감이 없네요!, 여기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괜히 다른 사람들도 의욕 떨어지게 하지 말고 오지 않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등의 말을 들을 각오를 하고 갔다. ’ 그래 내가 한 선택에 대해 어떠한 쓴소리도 들어야지! 그게 선택에 대한 책임이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다. 나의 빠른 포기를 용감하다고 한다. 내 선택을 응원한다고 한다. 그리고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들 한다.
그리고 각자의 팀장으로서의 애환을 이야기하신다. 위에서는 8~90년대 처럼 성과, 보고로 챌랜지하고, 아래에서는 MZ세대들을 어르고 달래 가며 일하느라 낀세대로서 삶이 녹록지 않다며 하소연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올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급속도로 성장하는 이 사업에 우리가 어떻게 제 역할을 할까 술기운에 으쌰으쌰 했다. 나도 덩달아 술기운에 함께 어울렸다. 정말 리더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를 느끼며…
그리고, 팀원들과의 송별회가 있는 목요일이 다가왔다. 공식적으로 팀장으로서 마지막 날인 샘이었다.
이제 새로 팀원으로 일 할 팀의 업무를 파악한다고 기존팀의 회의는 참석하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팀원 중 몇 명은 코로나,감기,경조사로 출근을 못한 인원도 있어서 팀을 버리고 도망가는 마당에 회식을 취소하자고 하고 싶었다. 그래도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보자 이번엔 피하지 말고 이곳에 남아 내 우울증을 겪어보자 하고 업무를 마무리하고
회식장소로 갔다.
웬걸 이 사람들 뭐지?? 감기 걸려서 못 나온 친구는 아픈 몸을 이끌고 회식장소에 플래카드와 풍선, 그리고 팀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썼던 고깔모자를 세팅해 놓고 갔다.
플래카드엔 ”빛나는 당신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행복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또 울컥했다.
그런데 한 명씩 회식장소에 들어오는 팀원들 손에 케이크에 꽃에 선물들이 들여있었다. 개인들 사비로 내가 뭐라고 이렇게….
우울증 팀장이 도피하는데 이 친구들 상장도 준비했다. 뒷장에는 손글씨로 한 명 한 명 편지도 써주고…
정말이지 눈물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어 엉엉 울었다.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따라 우는 친구도 있고…
참 복 받은 사람이구나 그리고 한편으로 미안하다 생각하며 이렇게 회사라는 곳이 내가 생각한 성과,결과,이익,돈 만을 위한 곳이 아니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그곳은 사람 사는 곳이다. 아무리 자동화가 되고 시스템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모여, 사람이 일 하는 곳이다. 20년 회사 생활동안 내 적성이 아니구나를 알면서도 결국 남아서 뭐라도 해보려고 열정을 발휘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이것이었는데 또 한 번 배우고 새로운 길에서 나의 쓸모를 찾아보려고 한다.
얼마나 더 오래 회사생활을 할지 모르겠지만 이 고마움을 잊지 말고 기억하며 살아 낼 것이다.
나의 단점도 포용하며 더 빛나려고 노력하지 말고, 더 화려해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네온사인이 아닌 가로등 같은 사람으로 이 고마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남은 회사 생활을 하고 싶다. 사람 사는 세상 속에서 한 사람으로서….
다음 주부터는 이제 리더의 무게를 덜어 냈으니 좀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도움 주고 도움 받으며 지치지 않게 생활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