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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을 지나, 다시 시작하는 법

감정을 인정하기까지

by 날아라 씽 Mar 27. 2025

일단은 먹고 살아야 했다. 전남편과 개인 사업을 해왔던 시간이 길었고, 육아를 하면서 내가 했던 일은 파트타임 전화 영업, 아웃바운드 업무였다.

적어도 아이가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 출근하고 싶었고, 아이보다 일찍 집에 돌아오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현관을 지나 불을 켜는 사람이 아이가 아니라 나이길 바랐다.


그래서 다시 전화 영업을 시작했다. 내가 잘했던 일이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입사 후 6개월 동안 늘 상위권을 유지했고, 짧은 시간 일하면서도 좋은 페이를 받을 수 있었다. 퇴근 후에는 아이를 케어하고, 강의를 듣고, 블로그를 운영했다.


그런데 7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실적이 나오지 않았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고, 의지도 무너져 내렸다. 다시 잘해보자는 생각도, 잘할 수 있다는 확신도 사라졌다. 내가 봐도 이상한 내가 되어 있었다.

결국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다.


아이와 KTX를 타고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직 물이 차서 바다에 발을 담그지 못했지만, 아이는 폴짝거리며 즐거워했다. 아이와 단둘이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아이는 KTX를 처음 타봤고, 나 역시 기차여행은 10년이 넘도록 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것이 얼마 만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맞다. 그때 나는 번아웃이 온 거였다. 사실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힘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 더 이상 잘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이혼을 결정했다. 그래서 후회가 없었다.

그깟 이혼,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아니었나 보다.


10년 넘게 쌓아 올린 탑이 무너졌다. 허무하게 무너진 것들을 다시 쌓아야 했지만, 나는 벽조차 없는 허허벌판에서 그저 살아보려 했다. 아프고, 힘들고,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한 그 복잡한 감정들을 모른 척하며 지나왔다.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힘들었다.


여행 마지막 날, 독립서점에 들렀다. 그곳에서 쓴 글이 ‘강릉은 모두 작가다’에 실렸다.


"우리 딸이 스무 살이 되면 오늘의 여행을 기억할까. 바다 냄새, 보트가 통통 튈 때마다 튀던 바닷물의 느낌까지. 꺄르르 웃는 딸의 옆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이었기에, 정말로 다시 잘할 수 있었다. 강의와 블로그 외에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달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살고 있었다。


또,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누구도 내 가까이에 오지 못하게 날을 세웠고, 위로나 충고도 듣지 않았다. 사람에게 위안을 찾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다른 사람들의 진심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안정을 찾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너의 앞날을 응원한다. P.S. 인간 승리! 파이팅!"


아무 이유 없이, 단지 나보다 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미워했던 사람이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 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나 보다.

번아웃을 지나 나를 알아가며 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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