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여름
남편과 나는 비오는 스위스를 여행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스위스의 산들은 비 때문에 온통 안개로 뒤덮여 뿌옇게 가려져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매일 다니는 우리동네 뒷산 보다도 못한 풍경이었다.
겨우 이런 것을 보려고 내가 큰돈을 들여 여기까지 왔나 싶은 실망감은 며칠동안 이어지는 비에 결국 분노로 이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그렇게 3년 전 아쉬운 발걸음으로 스위스를 떠나야 했다.
시간이 흘러도 내내 남아있던 미련은
내게 또 한번의 스위스 여행을 재촉했고
우리는 이번 가을 다시 한 번 스위스로 떠났다.
3년 전 나의 분노를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일주일 남짓 이어진 이번 여행 내내 스위스의 날씨는 맑고 눈부셨다.
지난번 여행에서 그렇게 우리를 괴롭혔던 비는 단 한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였는지
아름다운 스위스의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어느때보다 배로 감동을 받고 깊은 행복을 느꼈다.
파란색 하늘 아래 하얀 눈을 덮고 홀로 또렷이 불꽃모양을 하고 서 있는 웅장한 마테호른을 바라보며..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인 산중턱 오밀조밀 그림같은 나무집들이 모여있는 그린델발트에서..
나는 천국을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이보다 예쁜 스위스는 보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우리는 두 번째 스위스 여행을 마쳤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핸드폰 사진첩에 남아있는 여행사진을 뒤적이며 나는 문득 생각해보았다.
‘처음 스위스에 갔을 때 날씨가 좋았더라면..이번 여행이 이렇게나 즐겁고 행복했을까?’
‘아마도 아니었겠지..‘
그러고보면 결핍이라는게 꼭 나쁜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비오는 스위스를 경험했기 때문에
맑은날의 스위스를 더 아름답게 느끼고 올 수 있었던 것처럼
내 삶의 크고 작은 결핍은
지금 주어진 것들에 더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여행지에서
또 다시 비를 만난다 해도
나는 이제 그때처럼 분노하지 않을 것 같다.
더불어 내 삶에 주어지지 않은 것들로 인해
더는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언젠가 천국을 만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