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6권 15.
만물에 마음을 주는 것은, 우리 눈 앞에서 순식간에 날아가 버려서 우리의 시야에 의미 없는 참새에게 마음을 주는 것과 같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6권 15 중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를 봤다.
현실판 공포라 더 무서웠다.
혹한의 추위와 지진으로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황궁 아파트 103동만 살아남았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 ‘아파트 만세’와 같은 문구를 외치며 외부인은 다 내쫓는 이기주의.
영화 속 상황이 실제 상황이어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 보는 내내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재난 영화를 보면 자연의 무서움도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 잔혹해지는 인간의 이기심이 더 무섭다.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기 전에 나라도 살아야 한다는 마음, 이타심이 질타를 받는 상황, 아파트에 부여하는 이상한 의미.
영화의 결말은 이 모든 것이 다 부질없음을 나타낸다.
'만물에 마음을 주는 것은, 우리 눈앞에서 순식간에 날아가 버려서 우리의 시야에 이미 없는 참새에게 마음을 주는 것과 같다.'라는 문장이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했다.
재난 속에서도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물론, 황궁 아파트와 같은 유토피아는 아니다.)
마치 코로나19 초창기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처 모습처럼 말이다.
나를 위하고 타인을 위한 길, 내가 살고 타인도 사는 길은 '다 같이 살자.'라는 마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