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현진 May 06. 2024

엄마와 쓰는 사람 사이에서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29.


자연과 본성이 지금 이 순간에 네게 요구하는 일을 하라.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되, 다른 사람들이 그런 너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서 주위를 둘러보지 말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9권 29 중에서



백지를 마주하고 한숨만 푹푹 내쉴 때가 있다.

자주 있다. 거의 매일이 그렇다.

등 뒤에선 두 아들의 웃음소리가 쨍쨍 울려 퍼진다.

거기에 막내의 웃음, 항의, 울음도 섞여 들려온다.

중간중간 개입해 상황을 진정시켜 보지만, 다시 높은 텐션을 유지하는 아이들이다.

꽤 길게 아프는 동안 가라앉아 있던 선우 모습을 알기에 이렇게 장난치며 노는 것이 반갑다.

 

아이들이 시끌벅적 노는 것과 내가 백지에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것은 별개라고, 다르다고 애써 부정하며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린다.

아침 먹고 치운 뒤 책상에 얼마 앉아 있지도 못했는데 벌써 점심시간이다.

개어야 할 빨래는 눈에 밟힌 지 오래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다.

때때로 생각한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쓰지 않으면 더 괴로울 것을 알기에 쓴다.

무슨 소용이 생길지 확답하지 못해도 무슨 소용이 있을 거라 믿기에 쓴다.

아이들은 왔다 갔다 말을 걸고, 우르르 내 주변을 휩쓸고 가지만 그래도 쓴다.

오늘도 썼는지 안 썼는지는 내가 앎으로 쓴다.

아주 조금이라도 백지를 채워 나간 것에 만족한다.

어떤 환경에서 나온 것인지 알기에 이 작은 결과물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진정한 생활은 현재뿐이다. 따라서 현재의 이 순간을 최선으로 살려는 일에 온 정신력을 기울여 노력해야 한다.'

레프 톨스토이가 한 말이다.

엄마와 쓰는 사람 사이에서 내 역할을 다하려 한다.

컴퓨터 앞을 떠나면 다시 엄마로 돌아간다.

어제는 종일 비가 쏟아졌는데 오늘은 맑게 개었다.

오후에는 아이들과 어린이날 못다 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외출할 계획이다.

하루가 빠르고 정신없이 지나갈 것 같지만 자기 전엔 어제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 오늘도 행복했다!'라고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언제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