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빵과 커피 : 초콜릿 생크림 케이크 & 커피
표지 사진 : Photo by. @JOFRAU
모처럼 여유 있는 주말 아침을 맞이했다. 여유 있게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비가 내리는 주말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 부부는 웃프게 받아들였다. 오늘 비가 오지 않았다면 강을 따라 보트를 타고 내려오는 튜빙을 했을 텐데 결국 튜빙 일정은 몇 주 뒤로 미뤘다. 안타깝게 비어버린 주말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당 충전으로 달래기 위해 아침부터 선물 받은 초콜릿 케이크를 꺼냈다. 보기만 해도 당 충전이 되는 것 같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음악 삼아 나름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커피를 내리고 초콜릿 케이크를 접시에 예쁘게 담으려 노력했다. 남편은 이제 익숙해졌는지 핸드폰을 찾아 건네준다. 찰칵. 선물 받은 케이크 맛있게 먹는다며 인증샷을 남기고, 식탁에 앉아 본격적인 당 충전을 했다. 커피랑 초코는 같이 먹으라고 누가 알려준 걸까. 완벽하다. 그렇게 달달한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있자니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되었던 케이크 일러스트가 생각했다. 그림만 봐도 달달함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일러스트를 다시 찾아서 보고 싶었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내가 그려볼까?'
내가 그린 그림을 글의 표지 사진으로 넣을까 하다가 얼른 생각을 접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동경한다. 부러움을 넘어서 존경스럽다. 그 감정을 오늘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다. 그 생각은 여전하며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놀랍게도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을 다녔었다. 물론, 몇 개월 안 다니고 그만뒀지만. 솔직히 그 당시 미술학원에 대한 기억은 그렇게 좋진 않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는 뭐랄까, 모든 게 어렵게만 느껴졌고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거 같다.
'아, 그래서 내가 지금 미술에 소질이 없는 거구나...?!'
내가 다녔던 미술학원에서의 첫날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선생님께서는 도화지를 주시며 나에게 그리고 싶은 걸 그려 보라고 하셨다. 나는 하얀 도화지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는 장면을 그렸는데 선생님께서 연필 스케치를 여러 번 하지 말라고 하셨다. 첫 과제부터 나에겐 조금 어려웠다. 나도 모르게 생긴 나의 미술, 스케치 습관을 그때 그렇게 알게 되었다. 연필 스케치가 끝난 후 크레파스로 색을 칠하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 연필로 스케치 한 곳을 검은색 크레파스로 깨끗하게 다시 그리고, 그다음 물감으로 색을 칠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물감을 사용할 때는 검은색, 흰색, 분홍색, 살색*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다. 만약 꼭 써야겠으면 다른 색의 물감을 섞어서 사용하라고 하셨다. 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첫날 첫 과제가 너무 벅찼던 기억, 선생님께서는 절대 무섭게 말씀하시지 않고 하나하나 차근히 설명해주셨음에도 어린 나에게는 그저 긴장이 되었던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색은 몰라도 분홍색은 필수인데 못쓰게 되어 실망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때는 나름 학원에서의 첫 작품이라 많이 긴장했던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만 나온다.
*살색 : 그 당시에는 살색이라는 색깔이 크레파스와 물감에 있었다.
미술학원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좋지 않음에도, 또 주관적으로 보나 객관적으로 보나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건 왜 일까. 나의 로망은 왜 하필 그림인 걸까. 그래서 로망(Roman)인 걸까. 그림 그리기라는 그 벽이 너무 높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내 그림을 그려서 우리 집 벽에 걸고 싶다 라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자주 한다. 실제로 그리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이야기만 자주 한다. 그러면 남편은 그려서 걸으라고 큰 일 아닌 양 대답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내 그림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인데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분명 놀리려고 하는 거 같다는 생각에 쳇 하고 뒤돌곤 했다. 생각해보니 남편은 좀 억울했을 것 같다. 남편은 나를 응원해준 건데 내가 그렇게 반응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런 생각이 들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한번 더 남편에게 그림을 이야기 꺼냈고, 남편은 역시나 응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진짜 꼭 여기에 걸 거야."하고 벽을 가리키면서 크게 웃었다.
보기만 해도 달달함이 느껴졌던 그 케이크 일러스트를 다시 만나게 되면 오늘 먹었던 초콜릿 케이크가 생각날 것이고, 그럼 그때 케이크 한 조각 그려봐야지. 과연 벽에 걸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