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스페인)
표지 사진 : Photo by. @JOFRAU
하루 종일 물에 있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바다에서, 호텔로 돌아와서는 호텔 수영장에서 저녁 먹기 전까지 시간을 보냈다. 역시 여름이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서 조금 쉬다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근처 레스토랑을 이미 알아보고 온 터라 큰 걱정이 되지 않았는데 저녁 시간이 오후 8시부터 라는 점을 살짝 간과하고 말았다. 식사 일정 담당은 나였기 때문에 나는 남편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배 많이 고프냐고 낮에 산 과자를 슬며시 건네주며 물었다. 남편은 씩 웃으며 아직 나가면 안 되나 보네 했다. 오후 8시에 맞춰 레스토랑으로 갔다.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야외 테이블은 모두 예약이 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약이 필수인 레스토랑은 아니었는데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은 각자의 예약 시간에 맞춰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조금 더 당황했다. 출입구에 서 있던 레스토랑 스태프에게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니,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미안하지만 야외는 예약이 다 찼고 실내는 가능한데 괜찮은지 물었다.
"Yes! It's okay."
Restaurant la Parada del Mar, Palma, Spain
날씨가 많이 습해서 오히려 실내가 좀 더 쾌적한데 신기하게도 실외 자리는 어디 가든 항상 만석이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을 보면서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한다면 바다내음을 좀 더 느낄 수 있으니 그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예약이 꽉 찬 테라스를 보며 대단한 맛집에 온 것 같아 기분 좋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바다 근처에 위치한 레스토랑답게 해산물 전문점이었고, 먹고 싶은 해산물을 선택하면 요리를 해서 갖다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바로 조개, 홍합, 새우, 문어, 그리고 여러 종류의 생선 등이 보였다.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분주히 손님들이 선택한 해산물들을 담고 있었다. 뷔페처럼 먹고 싶은 해산물을 골라 주문하는 것이 이 레스토랑의 특징이었지만, 2인부터 가능한 메뉴도 있었다. 샐러드, 메인 6-7 접시(종류), 음료 그리고 디저트를 포함하고 있는 메뉴였다. 우리는 여러 가지를 먹어보자는 마음으로 메뉴를 선택했고, 사장님께 추천을 받았다. 일단 메뉴부터 스페인어라 주문할 때 조금 낯설었지만, 다행히 레스토랑 직원 분들 그리고 사장님(?)께서 영어로 이야기해줘서 많이 수월했다.
Menú Degustación (메뉴 시식)
8 platos (접시) + bebida (음료) + postre (디저트)
Min. 2 (최소 2인)
[주의사항]
빠른 속도로 주문을 받으니 정신 똑바로 차릴 것.
셀프 주문을 하는 경우 미리 확인하고 주문할 것. (앞사람이 주문할 때, 레스토랑에 오기 전에...)
자리에 앉아 우리 요리가 나오길 기다렸다. 맛있는 냄새가 식당 안에 가득 찼고, 나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굴렀다. 곧이어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기대를 많이 했는대도 그 이상이었다. 양에 놀라고, 맛에 놀라고, 직원 분들의 친절함에 놀라고. 말 그대로 나는 신이 났다.
짭조름한 꼴뚜기 튀김과 담백한 생선구이,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차지 않을 것 같은 맛조개와 홍합 그리고 손꼽아 기다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산물 새우와 오징어까지. 완벽한 메인이었다. 스위스에서는 아무래도 해산물을 사 먹기가 가격 면에서도 좀 부담스럽고 자주 접하기가 어려운데 그래서 그런지 더 맛있고 더 행복했다. 여름휴가를 스페인으로 정하면서 저녁은 무조건 해산물로 먹자고 남편과 이야기했는데 진짜 그걸 실천하고 있다는 게 너무 재밌고 즐거웠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양이 너무 많았다는 점. 2명이 먹기에는 정말 차고도 넘치는 양이라 음식을 많이 남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우린 천천히, 싹싹, 잘 긁어먹었지만.
혹시라도 지인 분들이 이곳에 가게 되면 꼭 전해주고 싶다.
"샐러드 말고 해산물을 더 드세요. 이곳 샐러드는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아요."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격에 한 번 더 놀란 우리는 기분 좋게 레스토랑을 나왔다. 시간은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고 남편과 나는 우리 저녁을 먹은 게 맞냐고 야식 아니었냐고 한참을 웃었다. 배가 너무 불러서 바로 호텔에 들어가기가 내 몸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 한 바퀴 산책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는 밤바다가 너무 예뻤다. 어둠 속에서도 들리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오래 맴돌았고, 습하고 더운 공기는 여전했지만 '바닷가'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 30-40분 걸었을까, 호텔로 들어가는 길이 아쉬운 밤이었다.
오늘 낮에 본 바다보다 지금의 바다가 기억에 많이 남는 이유는 눈으로, 입으로, 온몸으로 바다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일기(2021.08. 스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