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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먹 May 20. 2021

27살에 모은 돈이 3천 밖에 없니?

대체 얼마나 모아야 정답인 걸까요

코로나가 들끓기 전. 코인 노래방에 꽂혀 외출하는 족족 가고는 했다. 두세 시간을 노래만 부르고 헤어졌는데 그날따라 이대로 끝내기 싫은 날이었다. 아쉬운 감정을 정리하지 못해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목적성 없이 가까운 곳에 위치한 DVD방으로 갔다. 구석진 방에 자리 잡아 TV 프로를 아무거나 대충 켜 두고, 간식거리를 먹으며 떠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들고, 하나 둘의 시선이 화면 스크린으로 맞춰지고 있었다.


연애에 관한 프로였다. 남자 친구가 시험에 합격하고, 무난하게 결혼 준비를 하는 한 커플의 이야기.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예비 시어머니가 따로 사연 주인공인 여자 친구와 단둘이 만나 모아둔 자산을 캐묻는 부분이었다. 2년 전이라 기억나는 대사가 정확하진 않지만.


"너, 올해 27살이었지. 모아둔 재산이 얼마니?"

"저 3000 모았습니다. 어머님."

"27살에 모은 돈이 3천 밖에 없니?"


당시 내 나이는 25살이었다. 곧 와 닿는 나이 차이. 그 장면 후로 시어머니가 여자 친구에게 돈을 빌려가서 그대로 연락이 두절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왜 자꾸 저 대사만 떠오르는지. 취직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다가오는 느낌 자체가 남달랐던 것 같다. 첫 월급을 받고 울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 월급으로 어떻게 돈을 모으지. 어떻게 살아갈까. 돌아가는 지하철, 막막해진 마음만 남았다.




미디어로 가끔 뇌를 맞는 기분, 출처 @pixabay




집에 도착한 후, 계산을 해봤다. 25살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 월 120만 원씩 12개월을 저축하면 1440만 원. 2년 2880만 원. 그리고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아니었으면 미디어의 27살에 3000 밖에 못 모은 사람 축에 낄 수 없었다. 비록 한 달에 쓸 수 있는 돈은 너무 제한적이지만. 아무튼 가능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묘한 기분. 그래도 모을 수 있는 희망은 있어서 다행이라고 기뻐해야 할지, 스스로 남과 비교하는 기준에 통탄스러워야 할지. 오히려 불행한 쪽에 가까웠다. 저축할 수 있는 환경은 모두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조급하게 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도태되는 듯한 불안감이 내 숨을 조이는 것만 같으니까.




주저앉은 나의 열등감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난다, 출처 @pixabay


전에 20살에 취업한 회사 동료가 딱히 물어보지 않았는데 먼저 20대 후반이 되면 1억을 모을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깜짝 놀라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집에서 출퇴근, 그리고 공과금은 모두 부모님이 지원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신 분이라 나와 시작점이 다르긴 하지만 사실 박탈감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다. 내 환경은 절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래도 그냥 대단하다며 웃어넘겼다. 환경을 탓해봐야 불필요한 감정 소모일 뿐이고, 성인이 된 이상 이제부터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하자.


먼 것 같으면서도 가까웠던, 난 지금 사연자의 나이가 되어있다. 목표액은 채웠다. 수입이 적은 편에 속해 단순하게 소비를 줄인 형태로 돈을 모았다. 3000만 원. 불행한 잣대지만 그게 돈을 모으게 된 계기가 되니 목표에 맞춰서 착실하게 돈을 모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느리지만 서서히 늘어나는 금액에 재미가 붙었고, 지금도 꾸준히 돈을 저축하고 있다. 다음 목표는 30살 전까지 1억이다. 이번에도 미디어의 잣대로 세운 목표는 아니다. 액수의 단위가 '억'이 되는 게 무언가를 더 자극하는 기분이니까. 이직 고려 등 변수가 많아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돈을 얼마나 모으는 게 정답일까. 정답이 있기는 할까. 참으며 살다 보니 들었던 말은 독한 년이라는 타이틀이다. 내가 독한가. 아니면 환경이 날 독하게 만든 건가. 무얼 해도 불안한 20대. 목표는 있지만 목적은 없다. 그렇다. 마음의 가난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저 이 길이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 악착같이 믿으며. 사고 싶은 닌텐도 스위치를 오늘도 참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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