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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리너 Jun 22. 2021

인종차별이라는 산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인종차별 탐지기부터 만들고 싶다.

유럽의 한 나라에서 살면서 빼놓을 수 없는 그 말, 인종차별.

자극적인 이 단어를 내 일상에 꼭 담아야 하는 걸까 싶지만 도통 그럴 수 없는 필연적인 말.

수없이 듣고, 목격하고, 직접 겪었다. 모두 일일이 나열하기에는 이 공간이 좁다. 


누군가 단순한 질문, “거기 인종차별이 있어?”라고 묻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라고 답한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 인종차별이고, 어떤 행동이 아닌 거야?”라고 묻는 질문에는 아직 가장 현명할 법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인종차별을 정의하고, 그게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제도적,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있다. 하지만 결국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일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이 의도치 않았지만 단순히 무지해서 한 행동인지,

아니면 교묘하게 인종차별성 발언을 해놓고 "어?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느꼈으면 유감이야"라고 나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버리는 건지 애매한 상황도 많다. 예시를 몇 가지 나열해 보면 같은 문장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각자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리라 생각한다


- 누군가 당신 반대편에서 걸어오다가 스쳐 지나기 직전, 바닥에 칵 소리를 내며 침을 뱉는다면? 

- 지나가고 있는데 둘이 얘기하는 척하면서 칭챙총이라고 말하고 낄낄댄다면?

- 앞사람에게는 웃으며 인사하고 영수증도 직접 건네주더니, 내 건 툭 바닥에 놓고 인사조차 없다면?

- 식사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대놓고 계속 쳐다본다면?

- 비행기에 동양인이 유일하게 커플 두 쌍 탔는데, 공교롭게도 그 두 쌍이 비행기 맨 끝자리에 나란히 배정받았다면?


사람마다 관용의 정도가 다르고,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서도, 나는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이 남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어느 주말 아침, 나는 ‘모욕의 니하오’를 만났다. 혼자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한 골목 모퉁이를 돌며 마주친 젊은 남자 둘이 큰 소리로 “니하오!”라고 내 얼굴에 소리쳤고 낄낄댔다. 순간 위협적이고 모욕적이었고, 나는 곧바로 “나 중국인 아니야!”라고 똑같이 소리쳐줬다. 

그랬더니 뒤돌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어머 그래? 나 중국인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영어로) 대꾸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뭐래. 난 전혀 상관 안 하는데”라고 받아쳐줬다. 그리고 각자 갈 길을 갔다. 

조금 이성적으로 상상해 보면, 위험했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나를 한대 치고 도망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마주했을 때 그들에게 그렇게 대응한 것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반면, 정말 내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별하기는 어려운데 그쪽 어딘가에서 온 사람 같으니 뭐라도 아는 말로 인사해 보고 싶어서 건네는 일종의 ‘무지의 니하오’도 있다. 인종차별 여부를 떠나 나는 한국 사람인데, 무작정 중국말로 인사를 듣는 것 자체가 나의 국적을 부정당하는 것 같아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한 동물농장에 가서 양 떼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나와 남편에게 한 꼬마 여자 아이가 걸어오더니 너무나도 활기차게 인사했다. “니하오!”라고 말이다. 아이 엄마는 듣고 화들짝 놀라 아이를 데려가면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가 왜 이러지 하고 황망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환하게 웃으며  “아이고, 이를 어쩌나,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야”라고 대답해줬다.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이곳에서 나를 서글프게 하는 건 비단 내가 직접 겪은 인종차별 순간 만이 아니다. 종종 듣고 보게 되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들에 감정 이입하고 조금씩 기억 속에 쌓이게 되면서, 어느덧 내 마음 한편에 묵직한 돌덩이가 된다. 

‘저 카페 직원은 나를 구석지고 멀찍이 떨어진 자리로 안내해줄까?’ 

‘고등학생 남자애들이 길 반대편에서 우르르 걸어오네, 나를 보고 이상한 말 하지 않을까?’

아직 정작 인종차별 행동을 겪지도 않았는데, 내 사고 회로에 인종차별 칩이 이미 박힌 것처럼 지레짐작하거나 상상하게 되는 순간 자체가 서글프다.


가능할 리 만무하지만, 가까이 있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인종차별 여부를 탐지해주는 센서가 개발됐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 사람을 향해 큰 소리로 '저 사람이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했습니다!'라는 경고음과 강렬한 레이저 빛이 발사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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