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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리너 Jun 15. 2021

마냥 앉아서 멍 때리는 사람들

이 나라에서 살게 되면서 내가 여유로운 사람들을 많이 목격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공원 잔디밭에서, 본인 집 앞에서, 심지어는 차를 세우는 어느 골목의 보도블록 모퉁이에서. 

혼자, 또는 삼삼오오 앉아 그냥 앉아있다.


해가 쨍한 날이기도 하고, 어둑하게 노을이 찾아드는 시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뭐하는가 보면, 특별한 게 없다.

그저 앉아서 이야기 나누거나, 혼자 눈동자에 힘없이 멍하게 있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처음에는 

'아니 평일인데,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길래 저러고 있나?'

'카페에 나란히 앉아서 서로 얘기도 안 하고 지나가는 사람만 멍하니 구경하고 왜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알고 보면 다들 본인의 삶의 있고, 고충이 있으며, 어쩌면 그 생각의 실타래를 잠시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였던 셈이다.


한국에서 나의 삶은 바빴다.

계획을 세우고, 자기 계발을 하고, 활발한 인적 교류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왔다. 퇴근하고 나서도 친구를 만나거나 운동을 가는 등, 알차게 보내는 시간이 곧 미덕이라는 생각을 실천하며 살았다.

서울 한복판, 내가 어딘가 길 위에 있을 때는 운동을 하든, 장을 보러 가든, 친구를 만나러 가든, 무언가를 하거나 최소한 그 무언가를 하려고 이동하는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놀러 간 공원에서도 돗자리를 펴고 열심히 음식을 먹고, 밀렸던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냥, 이유 없이, 밖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던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이 곳에서 살면서 갈수록 주변 환경에 맞춰 사람이 변한다더니, 점차 나도 공백의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게 됐다.

집에서도 물론 그런 시간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집에 있다 보면 밀린 집안일을 신경 쓰게 되고, 습관처럼 텔레비전이나 노트북을 켜게 된다. '무언가' 보거나, 하게 된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세워서 공원으로, 동네 카페로, 강변으로 나간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흘러가는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게 생각보다 강력한 재충전 방법임을 깨달았다. 이 나라에서는 그걸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을 뿐.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던 한 카드 광고 속 대사처럼,

지구 그 어디에서 살아가든 누구에게나 공백의 시간은 필요한 게 아닐까?


이번 주말, 동네 공원 벤치에 가서 한참 멍하니 앉아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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