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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리너 Mar 25. 2021

박사 유학이라는 단어의 무게

해외 유학, 명분과 가치 사이

한국을 떠나 외국인으로 살게 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해외 유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낼 때 이 만큼 짜릿하면서도 내 뒷모습을 멋지게 남기고 떠날 수 있을 단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말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떠나온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으로, 한국에서 학부-석사 과정을 모두 마치고 박사 과정을 위해 한국을 떠나온 유형이다. 



스스로 찾아야 했던 명분


한국 대학원에서도 박사과정을 밟고 학위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시 나는 한국 모처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박사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감사하게도 꽤 괜찮은 월급을 받으며, 계속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도 나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옵션이 있었다. 


왜 나는 한국을 떠나 박사과정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명분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단순히 외국 가서 박사를 하고 싶다는 것 만으로는 동기부여가 좀처럼 되지 않았다. 

직장 다니면서 퇴근하고 쉬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해내려면 여간 강력한 명분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시간 내서 여러 논문을 읽고, 연구 주제를 기획하고, 영문 5,000자 연구계획서를 작성해서 지원하려면 내 머리와 몸을 움직이게 할 명분이 필요했다. 계속 나는 한국에서 하는 것과 해외에서 하는 것 양립할 수 없는 옵션을 두고 고민했다. 

그러면서 눈여겨봤던 여러 대학을 찾아보고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찾아보며 긴 고민의 시간을 거치고 나니, 점점 머릿속에서 또렷한 길 하나가 생겼다.  

지금 내가 와있는 이 나라가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주제 쪽으로는 역사가 매우 깊고, 다양한 학풍과 논의를 포용하며, 이곳 대학들이 가진 세계적 위상도 좋은 편이었다. 아쉽게도 한국은 내 연구 분야에 있어 제도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쌓아온 시간이 짧았다.  

나는 깊이와 다양함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박사 연구를 해보고 싶었다. 


박사과정은 교복 입고 학교 다니던 학창 시절처럼 과목과 교과서 몇 개 정해진대로 공부하는 제도와 정반대다. 누군가의 지식을 듣고 필기하는 수업이 아니라 혼자 자료를 찾고 내용을 파악하고, 내 연구에 녹아들게 하여 쓰는 것 까지 다 알아서 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연구 환경이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을 떠나 공부하러 가자, '

실제로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배낭여행이나 한 달 살기처럼 떠나고 싶다며 떠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심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했다. 

에어비앤비 숙소 정하듯 '저 여기서 박사과정 하고 싶은데 예약 가능한가요?' 하며 관심 있는 학교에 연락했다간 답장 조차 받지 못할 테니 말이다. 

지원 후에는 최종 합격 통보를 받기까지 약 세 달 가까이 기다렸다. 



어렵게 만난 유학의 가치



지난했던 과정을 모두 거쳐 이 나라로 왔다. 이제 나만 잘하고 학위를 받으면 되는 거였다. 

지내다 보니 이제는 내가 여기서 살아가는 이유를 처음 떠나올 때 가졌던 명분만으로는 답하기가 어려워졌다. 명분은 조금씩 희석되어갔고, 나는 이 나라에서 이렇게 살만 하다는 가치를 찾아야 했다.


한국도, 이 나라도, 결국 사람 사는 데이다 보니,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따라 박사과정의 험준함이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땀은 나지만 보람 있을 하이킹이 될 수도, 히말라야 산맥 등정이 될 수도, 아니면 산꼭대기까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하산해야 할 수도 있다. 

주변에는 지도교수와의 오해, 갈등으로 지도교수를 바꾸게 된 동료도 있었다.


나 역시 지도교수 두 명을 대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너무 세세하게 신경 써주는 게 한편으로는 나의 연구에 정말 큰 도움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요구사항이 많아 피곤하기도 했다.

지도교수들은 내가 쓴 논문 일부를 읽어보고는 좋은 건 좋다 해주고, 옳지 않은 부분은 신랄하게 비판했다. 누군가 내가 쓴 내용에 반대하고, 비판하는 걸 본다는 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다 같이 앉아 회의하다 보면 문득 ‘이렇게나 많이 내가 쓴 걸 비판하는데, 내가 이름 앞에 박사 타이틀(Dr.)을 붙일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부끄럽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런 쉽지 않은 과정에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공부하고 있는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지도교수의 비판에는 인신공격성 발언이 없었고 위계를 앞세운 명령도 없었다. 그리고 딱 내가 쓴 부분에 대한 피드백에 국한된 비판이었다. 

게다가 본인들이 준 의견을 다음 수정본에 반영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었다. 다음번에 확인해 보고는 왜 내가 하라는 대로 안 했느냐 화내는 법도 없었다.

"어쨌든 네가 네 연구 프로젝트 보스(boss)니까 네가 결정하면 돼"라고 말해줬고, 내 결정을 존중해줬다. 


그리고 서로 각자 다른 연구실을 쓰기도 하거니와, 나의 출퇴근 시간이나 여행, 휴식 기간 등에 일절 왈가왈부한 적이 없다. 내 지도교수의 수업 조교를 한 학기 맡은 적이 있는데, 지도교수는 내게 복사 한 장 부탁하지 않고 본인이 다 알아서 했으며, 나에게 주어진 과업 이상의 성실함이나 헌신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섣부른 일반화를 하려는 게 아니라 내 경험이었다고 강조하면서 말해보자면, 나는 한국에서 학부, 석사, 인턴 그리고 직장 생활을 겪으며 이런 학문 또는 업무 상의 자유를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처음 박사과정 하고 싶다며 제출했던 연구계획서를 돌이켜 보면, 나를 뽑아준 것에 엎드려 절해도 모자를 수준이다. 처음과 지금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정말 장족의 발전을 했다. 

내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학문적 자유 덕분에 나는 정말 다양한 논문을 읽고, 방법론을 채택해서 써보고, 안되면 다른 길로도 빠져보고, 한동안은 잠시 멈추고 다른 주제를 파고들기도 했다. 


고군분투하며 이 나라까지 굳이 멀리 날아와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박사과정 연구를 하면서 내가 얻은 건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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