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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에 눈먼 자들이여
세상 바깥을 보라

'콘클라베', 확신이라는 치명적인 괴물을 추적하다

by 정덕현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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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이며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까닭은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갑작스런 선종으로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열리고, 이 '끝장선거'의 총지휘를 맡게된 로렌스 추기경(랄프 파인즈)은 투표에 재투표가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연단에 올라 그렇게 말한다. 신앙이라고 하면 어딘지 '의심'과는 거리가 먼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신에 대한 공고한 믿음이 그 바탕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렌스는 왜 의심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이유라고 말하는 걸까. 게다가 확신은 치명적인 적이고. 


의심은 '불신'이 아니다. 다만 이것이 진정 '신의 뜻'인가를 의심하는 것이야말로 확신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들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중세의 그 확신들이 얼마나 많은 폭력들을 낳았던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종교전쟁은 결국 종교가 저마다의 확신으로 나뉘어 타자들을 배척하는 불포용에서 비롯된 일이다. 타자를 포용한다는 건 내 안에 굳어진 확신과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로렌스 추기경이 한 말에서 방점이 찍히는 건 '살아있는' 이라는 말이다. 굳어진 확신은 죽은 신앙을 낳는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는데 교회가 그 변화를 수용하고 포용하지 않은 채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그 신앙은 살아있다고 보기 어렵다. 

콘클라베콘클라베

로렌스가 콘클라베의 투표에 앞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건, 교황을 뽑는 이 투표에서조차 세속적인 파벌 정치의 양상들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투표를 위해 전 세계에서 추기경단들이 모였지만 식사자리만 봐도 영어권, 스페인권, 이탈리아권, 아프리카권 등 언어별로, 지역별로, 성향별로 식사를 한다. 그 속에서 네 명의 유력후보는 파벌을 형성한다. 로렌스도 지지하는 진보 성향이 벨리니(스탠리 투치), 전통적인 교리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보수파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  아프리카 출신으로 제3세계의 지지를 받는 아데예미(루시안 음사마티), 중도 성향의 트랑블레(존 리스고)가 그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선거판 변수로서 교황이 생전에 비밀리에 임명한(의중 결정 추기경:교황이 대외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의중으로 임명한 추기경) 아프가니스탄 추기경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즈)가 등장한다. 


영화 <콘클라베>가 흥미로운 건 교황 선거라는 어찌 보면 한없이 성스러운 행위들이 펼쳐질 것 같은 곳에서조차 속세의 정치판과 다를 바 없는 파벌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걸 가감없이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타락한 교회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그런 건 아니다. 이들은 저마다 입장과 생각만 다를 뿐 천주교도로서의 구도자의 면모 또한 갖고 있다. 콘클라베의 지휘를 맡은 로렌스는 그 자신도 그 파벌들 속에 들어와 있고 선거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똑같이 흔들린다. 하지만 흔들림 속에서도 그는 확신이 가장 강력한 적이라는 신념을 갖고 보다 공정하게 이 투표를 이끌려 애쓴다.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로렌스에 의해 유력후보들의 엇나간 욕망과 사심들이 드러난다. 과반수 이상의 투표를 받아야 교황이 선출되고 끝이 나는 콘클라베는 이들의 사심이 드러나면서 요동친다. 

콘클라베콘클라베

<콘클라베>라는 제목은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즉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이란 뜻이다. 즉 이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는 선거 기간 동안 폐쇄되어 외부로부터 단절된 채 투표를 진행한다. 그래서 이 콘클라베에 부여된 '밀실'의 개념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추리스릴러적인 장르적 묘미를 부여한다. 일종의 '밀실살인'이 벌어진 곳에서 탐정이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의 묘미가, 밀실투표가 벌어지는 콘클라베에서 로렌스가 유력후보들의 교황으로서의 자격을 추적하는 과정의 재미로 펼쳐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 '밀실'의 개념은 현실 정치에 있어서의 폐쇄성과 파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일 수 있는가를 드러내는 메시지 또한 담고 있다. 바깥세상에서는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고(그것도 종교의 차이로 인한 전쟁과 테러다), 심지어 콘클라베가 열리고 있는 바티칸에서조차 테러가 벌어지는 상황인데, 이 밀실 속에 단절된 채 벌어지는 투표는 마치 저 바깥 세상과는 상관없이 저마다의 욕망에만 빠져 있는 듯 보인다. 


치열한 투표전쟁이지만 겉보기에 조용하게만 보이던 투표 과정에 돌발처럼 등장하는 폭탄테러 장면은 그래서 이 고요를 가장한 욕망들을 꾸짖는 듯한 계시처럼 보인다. 테러에 의해 창문을 폐쇄했던 장치가 깨지면서 생겨난 균열을 통해 밀실 안으로 저 바깥 세계가 틈입한다. 빛과 바람, 그리고 새소리가 안으로 들어온다. 투표를 하던 추기경들은 모여 앉아 이 사태에 대해 난상토론을 펼친다. 테러를 저지른 이슬람 세력을 "짐승들"이라고 흥분해 외치는 보수파 앞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추기경 베니테스가 "여러분은 진짜 전쟁을 겪어 봤는가"를 묻는다. 나와 다른 위치에 서 있다는 이유로 분열과 파괴로 이어지는 세상 속에서 이에 지지 않고 포용하며 나아가는 것이 자신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베니테스의 그 말은 그간 파벌로 나뉘어 정쟁을 벌였던 추기경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콘클라베콘클라베

결국 <콘클라베>가 도달한 이야기는 밀실로 대변되는 폐쇄성이 만들어내는 몰락에 대한 비판이고, 나아가 그 밀실을 깨고 바깥세상을 향해 나가는 개방성이 가져올 희망이다. 전혀 파벌과는 따로 서 있었던 베니테스가 교황으로 선출되고 "어떤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냐"는 질문에 '무결하다'는 어원을 가진 '인노켄티우스(Innocentius)'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는 확신도 불신도 아닌 의심을 통해 순수한 믿음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투표가 마무리되고 그래서 소임도 다끝난 것처럼 보이는 순간, 로렌스에게는 또다른 시험과 시련이 눈앞에 닥친다. 베니테스의 숨겨진 성정체성에 대한 비밀 앞에 로렌스는 잠시 흔들리지만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로 한다. 그간 진실을 폭로하는 것으로 선거의 공정성을 유지하려 해왔던 그의 선택과는 상반되는 이 선택은 그것이 교황으로서의 책무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 오히려 '열린 자세'를 가능하게 할 거라는 점 때문이었다. 


영화는 스릴러에 걸맞게 몇 번의 반전을 담아내는데, 그 반전에 등장하는 수녀와 성정체성의 비밀을 가닌 베니테스는 이 영화가 가진 혁신적 관점들을 잘 말해준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거북이 시퀀스도 의미심장하다. 땅과 물 속을 오가는 거북이는 서로 다른 지역으로 나뉘어 파벌로 전쟁을 벌이는 세상의 모든 비극들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들여다보겠다는 은유다. 연못 안에 있지만 틈만나면 밖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거북이처럼 세상의 진짜 현실은 밀실이 아닌 저 바깥세상에 있다. 연못 바깥으로 나왔다고 배척할 일이 아니라 조용히 품어주고 포용할 일이다. 로렌스는 연못 바깥으로 나온 거북이를 조용히 물속으로 돌려보내주는 것으로서 베니테스의 비밀 또한 포용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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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서 로렌스는 창밖으로 문을 열고 나온 수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폐쇄됐던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나가는 걸 내려다본다. 그렇게 밀실에 갇혔던 시선이 해방되는 이 장면은 특히 탄핵정국으로 혼탁한 우리에게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비상계엄에 탄핵정국으로 이어지며 더더욱 민생은 들여다보지 않고 파벌 정쟁만 벌이는 정치꾼들이 확신이라는 이름으로 밀실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세상바깥의 아픔과 고통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눈먼 자들처럼 보여서다. 우리의 정치는 언제쯤 저 파벌의 밀실을 깨고 나와 진짜 바깥 세상의 공기와 마주할 수 있을까. 교황 선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지만, 많은 현실들을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진:영화 '콘클라베')

20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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