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일곱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영화 “경주”를 보고 나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백하게 ‘말’이라는 주제를 끌어와 말 자체를 설명하기보다는 비장애인들에게 맞춰진 세상이 장애인들에게 주는 여러 사회적인 폭력임을 그려낸다. 우리가 편하게 바라봤던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도전이었음을, 우리는 우리조차 모르게 다수의 권력을 사용하고 있었음을 꽤 냉소적인 시선으로 감독은 전한다.
주인공인 ‘비아’는 어렸을 적에 심하게 고열을 앓은 이유로 언어를 더디게 배워왔다. 정확하게는 ‘말하는 방법’과 ‘듣는 방법’이 더뎠다. 그래서 남들보다 단어와 단어의 공백이 크게 느껴졌지만, 그만큼의 말하는 여유도 함께였기에 그녀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또한 비아는 판타지 소설을 비롯한 여러 이상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좋아했던 영향 탓인지 ‘말’에 대한 강박관념보다는 자신의 특별함을 즐겼다. 그도 그럴 것이 단어의 공백만큼 그녀는 생각하고, 관찰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그만큼 단단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그 공백만큼 답답해했다. 아니 어쩌면 그 공백의 몇 곱절만큼 답답해했다. 그들은 그들만의 공백이 익숙했고, 그녀보다 넓은 여유를 갖고 있지 못했다.
일분도 안되는 작은 공백은 사람들의 답답함을 걸쳐 짜증 그리고 화남까지 이어졌고, 곧 그녀에게 던져진다. 처음에는 그저 눈송이에 그쳤던 그 말들이 여러 사람에게 굴려지고 굴려져 두꺼운 눈덩이가 됐고, 그것이 매번 정확하게 그녀를 맞췄다. 비아는 그 차가운 냉기에 얼굴이 매번 빨개지면서 눈가가 물기로 젖는데, 처음에는 그저 눈이 녹아서 생긴 자국인 줄 알았지만, 점점 그것이 눈물이었음을 후반부에서 드러난다.
영화에서 주로 유심히 봐야 할 부분은 점점 고립되는 그녀의 심리를 나타내는 눈과 속도이다. 영화의 계절은 겨울로 첫 장면에서 비아가 사리눈을 바라보면서 흥얼거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 초중반부터 펑펑 눈이 내리고 쌓여서 종종 눈싸움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 그녀는 친구들과 웃으면서 눈싸움을 한다. 하지만 영화 중후반에서 그녀는 눈싸움하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기 시작했고, 끝에 달아서는 창 밖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커튼을 닫는다.
또한 눈싸움 장면만큼이나 나오는 비아가 걷는 장면은 끝에 다다를수록 그녀의 발걸음은 그대로지만 그 배경이 서서히 빨라진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사회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자신은 그대로이지만 세상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달려가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였다.
눈은 눈이 뭉치면 단단해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말들이 뭉치고 뭉쳐서 점점 단단해진 상태로 그녀에게 던져진다는 상황을 그려내고, 속도는 대다수 사람들의 무의식, 익숙함을 담은 듯하다.
그러기에 제목이 ‘경주’인 이유는 비아가 사회에 발을 들이미는 것이 어쩌면 ‘말(言)의 경주’ 참여하는 것과 같음을 나타낸다.
이 영화가 유독 먹먹하게 여운을 자아냈던 이유는 그 결말이 어떠한 쾌감도 혹은 반전도 주지 않고, 그저 결과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직장과 여러 모임을 나가지 않고, 자신과 똑같은 장애가 있거나 혹은 다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만 나간다. 비아는 웃음을 되찾았지만 전보다 생각하고 관찰하고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웃는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이 서서히 고립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처음에 영화를 봤을 때, 소리가 안 들려서 설정을 잘못한 줄 알고 한참이나 고생했다. 근데 사실 이 영화는 그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말들이 묵음 처리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는 이유는 어쩌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관객의 무의식을 끌어내 영화의 줄거리를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가 있다면 바로 이 영화일 것이다. 결국 비아라는 인물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무의식으로 넘겨버렸던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버스에서 몸이 불편한 분들을 도와주거나, 혹은 그들을 대신하여 일하거나 하는 일들을 도움을 행하고 한다. 그 친절은 그분들을 도와주기 위한 선심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빠르게’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함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천천히 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예를 들어 몸이 불편한 분이 버스를 타려고 했을 때 ‘도움을 드릴까요 ?’ 라는 말보다는 어쩌면 묵묵하게 당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그들이 세상을 편하게 나올 수 있게 만드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즉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버스를 타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길을 건널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그들이 ‘편안하게’ ,’언제든지 ‘, ‘어떤 상황에서라도’ 세상을 나갈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그 바탕은 모든 사람이 서로의 속도를 알고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요즘 대다수가 말하는 ‘서로만의 속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에서 ‘서로’에는 장애가 있는 분들은 포함이 안 된 채로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버스의 손잡이가 성인남성을 기준으로 해서 논란이 되었던 것처럼 이미 세상은 다수를 기준으로 한 ‘장치’로 덕지덕지 된 사회이다. 이에 더해서 그 사회를 이루는 ‘사람들’의 심리마저 비장애인들이 편하게 세상을 걷고 나아가고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정감에 위협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영화에서 특히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이에 따라 우리가 편안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누군가에게는 도전된다는 말이 더욱더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항상 늦는 친구가 또 늦으면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근처 서점에 들어가 기다리는 것처럼
세상 느긋하게 천천히 먹는 친구랑 밥을 먹으면 내가 말을 많이 해서 속도를 맞추는 것처럼
매번 말주변이 없어 1시간이 지날 때쯤에 말의 본론을 말하는 친구에게 그럴 줄 알았다면서 웃으면서 들어주는 것처럼.
수많은 비아가 세상에 마땅히 누려 할 것들을 누릴 수 있기 위해. 우리가 말하는 다름에 대한 인정의 범위가 어떠한 사각지대 없이 전 세계를 아우르길 바란다.
* 본 영화는 허구로 만든 가상 영화입니다. 다만 요지와 관련하여 인상깊게 본 영상이 있어 같이 첨부합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NWSFlvGBfrI
from.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