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일곱째주, 시언: 오백 원짜리 사랑

겨울호 일곱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by 어느 저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머리가 두 뼘은 덜 자랐던 시절, 문방구에서 유행하는 작은 책에 담긴 공포 이야기들을 읽으며 상상력을 넓히고, 텔레비전에 하얀색 쫄쫄이를 입은 연예인들이 소와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깔깔대던 그 시절에 고작 아홉 살밖에 안된 나는 육십 대 어른들과 자주 동거를 했다.

우리 가족은 엄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거제도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지금의 감천문화마을이 있는 동네 옆 신축 아파트에서 새로운 살림을 차렸고, 엄마는 자주 집을 비웠다. 엄마가 치료를 받으러 이곳저곳을 오가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일상은 보존되어야 했다. 매일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나가야 하는 우리를 돌보는 건 수십 년 전 똑같은 일을 경험해봤을 경력자인 할머니들의 몫이었다. 주로 그 역할은 아버지의 엄마인 친할머니가 맡아주었는데, 아주 가끔은 친할머니조차도 우리를 보살펴주지 못하는 상황이 올 때가 있었고,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가 그 역할을 맡아야 했다.


“은아. 조심히 갔다 온나.”


외갓집에서 나와 동생은 ‘언’과 ‘윤’으로 통했다. 모든 아이의 이름을 끝자락만 떼어서 부르는 외갓집 특유의 사랑 방식 때문이었는데, 그 때문에 우리는 더 특별한 이름을 가진듯한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외갓집 사람들은 ‘언아’를 ‘은아’로 발음하곤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사투리를 보유한 외할머니에게 나는 매번 발음상 ‘은아’가 되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여자였던 외할머니는 그야말로 츤데레의 정석이었다. 거침없는 말투와 행동, 어떤 말씀을 하실 때면 ‘앗 지랄’이라고 하시며 운을 떼셨지만, 사랑스러운 손주들을 볼 때면 아낌없이 애정을 나누셨다.

본인도 낯설 딸의 집에서 손주들을 각종 찌개로 아침을 먹이고는 나가는 길을 배웅까지 해주시던 외할머니의 애정은 오백 원짜리 동전에서 절정을 발휘했다. 이 당시 나의 일주일 용돈은 천원. 학교 준비물을 사야 하는 때면 그 거스름돈인 몇백 원이 늘어나는 정도였다. 대부분의 아홉 살이 그러하듯 나의 용돈은 유희왕 카드를 사거나, 메이플 딱지를 사거나, 슈퍼 앞 오락기에서 메탈슬러그를 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용을 차지했던 건 당연히 군것질이었는데, 단 것을 좋아하는 탓에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늘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였다. 일주일에 천 원이니, 백 원짜리 사탕을 하루에 고작 두 개씩밖에 사지 못했고, 그마저도 오락을 하거나 딱지를 사기 위해서는 먹고 싶은 마음을 꼭 참고 일주일 중에 이틀 정도만 그 유혹에 넘어가 강렬한 단맛을 느끼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오시는 날이면 나는 일주일 동안 매일 부자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늘 조심히 갔다 오라는 말과 함께 오백 원짜리 동전을 손에 꼭 쥐여주시곤 하셨는데, 아홉 살이 가진 소비의 고민을 단번에 없애버리는 용돈 체계였다. 주급 천 원을 받던 언이는 일당 오백 원을 받는 언이가 되었고, 외할머니가 계실 때 언이는 불량식품 두 개를 사 먹고도 슈퍼 앞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살고 싶은 걸 살 수 있는 행복을 알아버린 아홉 살 언이는 외할머니가 오시는 날을 은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할머니는 오백 원을 쥐여주실 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이것밖에 못 줘서 미안하다고, 더 맛있는 걸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심지어 가끔은 엄마가 아픈 것도 미안해하셨다. 자갈치공동어시장에서 수십 년을 허리 한 줌 제대로 피지 못하고 물고기를 만지며 번 돈으로 아홉 살을 단숨에 부자로 만들었음에도, 할머니는 항상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였다. 거친 손과 생선비린내를 미안해하셨고, 짧은 배움을 미안하다고 하셨다.

한번은 집의 도어락이 고장 나 할머니를 당황케 한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건전지가 방전되었던 거였다. 아홉 살의 언이는 당황해하는 할머니를 아무렇지 않게 도와드렸고, 할머니는 예의 미안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바보인가보다.”

“아니에요. 할머니가 바보인 게 아니라 기계가 잘못된 거예요.”


자꾸만 미안해하는 할머니에게 똑 부러지게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라 말하는 손자를 자랑스러워하셨고, 나는 특별하지 않아도 할머니의 자랑이 되었다. 나는 기억하지도 못 하는 말을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기억하며 늘 내게 감사하다고 말하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말 한마디로 감사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어릴 적 매일 받은 오백 원은 할머니의 연민이자 사랑이었으며, 오백 원짜리 애정표현이었다. 그래서인지 외할머니가 쥐여주는 동전에선 늘 바다 냄새가 났다. 깊고 가득 넘치는 그런 냄새가 났다.


외할머니의 미안함은 엄마의 죽음 이후 더욱 심해졌다. 나를 바라볼 때 할머니의 표정은 늘 슬펐고, 미안함을 담고 있었다. 어쩌면 안쓰러움일지도 모를 그 감정 앞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묵묵히 밥 한 그릇을 더 먹곤 했다. 외할머니는 나를 보면 늘 눈가가 촉촉해지셨고, 나는 자라면서 외할머니 앞에서 더 예의를 갖추게 되었다. 오백 원으로 연결되었던 외할머니와의 관계는 애(愛)에서 애(哀)가 점점 진해져 가고 있었다. ‘외(外)’라는 낯선 한 글자 때문일까. 죽은 엄마의 가족이라는 점 때문일까. 외갓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혹시나 나를 보면 딸의 모습이 너무 떠올라서 그런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 때가 있었다. 사실 나도 외갓집에 가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데, 훨씬 오랜 기간을 함께 살았을 외할머니의 마음을 감히 예상해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발걸음이 주저하게 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를 단축번호 ‘0번’에 저장해두셨다는 외할머니는 내 전화를 자주 기다렸지만, 나는 여유가 있음에도 자주 전화하지 못했다. 혹시나 바쁜 나를 방해할까 봐 단축번호 0번에 있음에도 할머니는 전화하시는 법이 잘 없었고, 단축번호 저장 자체를 하지 않는 나는 그보다 더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 머리가 조금 더 크고 나서야 가끔 드린 전화에 정말 기뻐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깨달았던 건 할머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점에서였다.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늘 강한 사람이셨다. 고된 업무를 아무렇지 않게 해내시는, 강한 사람에겐 엄격하고 약한 사람에겐 포근한, 한마디로 호걸과 같은 분이셨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거친 말투로 사랑을 표현하셨고, 가족을 그 무엇보다 아끼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더더욱 외할머니의 왜소한 몸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커다랗고 하얀 침대에 누워계시던 할머니는 호흡기에 삶을 의지한 채 편안하게 눈을 감고 계셨다. 그렇게도 커 보이던 할머닌데, 앙상한 팔과 움푹 들어간 볼은 처음으로 할머니가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할머니의 온기를 느끼면서 손을 잡았다. 언제라도 웃으시면서 손에 오백 원짜리 동전을 쥐여주실 것만 같은데, 그 손이 너무나도 작아져 버렸다. 손을 잡고 할머니를 꼭 안아드리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감사하고 죄송해요. 더 자주 연락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제 할머니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할머니. 할머니. 사랑해요. 사랑해요.”


나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볼 때면 그 어떤 것보다 비싸고 값진 사랑을 느낀다.



from.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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