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여섯째주, 은희 : 해님의 첫사랑

겨울호 여섯번째 주제 : 일월(해와 달)

by 어느 저자

차디찬 겨울날, 소녀는 벽난로 앞 의자에 앉아있는 할머니의 곁으로 다가갔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개 삼아 앉아 자작자작 장작 타는 소리를 듣는 이 시간은 소녀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는데, 이 시간에 결코 빠질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할머니, 옛날이야기 들려주세요!"


할머니가 해주는 옛날이야기는 소녀를 다양한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시켜주고는 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한껏 상기된 채 소녀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럴까, 이번엔 우리 예쁜 강아지한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그래, 옛날옛날에 한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


어둠이 내려앉은 사막 한가운데, 홀로 걷고 있는 한 소년에게 여우가 다가갔습니다.


"너는 이 어두운 밤에 어디를 가는 거야?"


"밤? 그게 뭐야?"


"밤을 모르다니 너 정말 바보구나? 지금 이 시간을 밤이라고 부르잖아."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우를 바라봤습니다. 그런 소년을 희한하게 바라보며 여우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보다 어디 가는 거야? 너는 어디서 왔어?"


"모르겠어. 나는 지금 저 친구에게 가는 거야."


소년이 가리키는 곳에는 유유히 밤하늘을 비추는 달이 떠 있었습니다.


"달?"


"저 친구를 달이라고 해?"


"맞아. 너는 밤도 모르고 달도 모르고. 도대체 너는 누구야?"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그저 저 달을 보는 순간 저 친구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달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여우의 말을 뒤로한 채 소년은 계속 걸었습니다. 아름답게 빛나는 달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걷고 또 걸었습니다.



"안녕"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여기야 여기!"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바위 위에서 쉬고 있는 도마뱀이 있었습니다.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됐다! 옆에 앉아서 조금 쉬고 갈래?"


도마뱀의 말에 소년은 바위에 앉았습니다.


"어디를 가고 있었어?"


"달에게 가고 있었어."


"달? 달에게는 왜 가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그저 저 달을 보는 순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는 달을 사랑하는구나!"


"사랑?"


"맞아. 나도 예전에 첫눈에 사랑에 빠진 상대가 있었지. 너무나도 아름다웠거든! 그 애에게 다가가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그 덕분에 지금은 귀여운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다고. 얼마나 귀여운지 알아? 어느 날은..."


수다스러운 도마뱀을 바라보던 소년은 고개를 위로 올려 달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년도 궁금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저 달을 보는 순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어쩌면 도마뱀의 말처럼 사랑에 빠진 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본 달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꼭 다가가 말을 걸고 싶었거든요.


"아무튼 꼭 달을 만나길 바랄게!"


도마뱀의 응원에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바위에서 일어나 다시 달을 향해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고 있던 소년은 멈춰 섰습니다.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거든요. 저 멀리서부터 땅이 솟구치며 다가왔습니다. 이윽고 소년 앞에 멈춰선 정체 모를 땅을 바라보던 소년은 갑자기 튀어나오는 무언가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두더지였습니다.


"안녕! 너구나, 달에게 간다는 친구가."


여우와 도마뱀에게 이야기를 듣고 왔다던 두더지는 소년과 나란히 달에게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두더지는 소년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옆에서 같이 걸어줄 뿐이었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두더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습니다. 소년도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춰 두더지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날이 밝을 거야."


두더지의 말처럼 저 멀리서부터 세상은 점점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달을 만나지 못했네. 괜찮아?"


소년은 점점 희미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곤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그 순간 소년은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응 어쩔 수 없지. 달을 만나면 꼭 얘기하고 싶었어. 너는 내가 지금껏 보았던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고 말이야. 아쉽지만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알아. 고마워, 같이 걸어줘서."


그 말을 끝으로 소년은 사라졌습니다. 사실 두더지는 소년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소년을 처음 본 순간 너무나도 빛이 나 모를 수가 없었거든요. 두더지는 가만히 서서 저 멀리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달과 다름없이 자체로도 환히 빛나던 노랑머리 소년에게 작별을 고하며.


-


"할머니, 남자아이는 어디로 간 거야? 달님한테 간 거야?"


"아니, 남자아이는 사실 해였단다. 날이 밝고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으로 돌아간 거지."


"그럼...그럼 해님과 달님은 결국 못 만난 거야?"


할머니의 미소를 바라보던 소녀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울지 말라며 달래는 할머니의 손길에도 소녀는 쉽게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달님을 만나지 못하고 해님으로 돌아간 소년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소녀는 지쳐 잠들 때까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다음날, 할머니는 소녀를 이끌고 밖을 나섰다. 하늘을 보라던 할머니의 말에 소녀는 위를 올려다 봤는데, 환했던 세상에 갑자기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할머니 해님이 사라지고 있어!"


"잘 보렴, 지금 이 시간을 일식이라고 불리는데 바로 해와 달이 만나는 시간이란다. 그때에는 결국 해가 달을 만나지 못했지만 이렇게 몇 년에 한 번씩 해와 달은 서로 만날 수 있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렇기에 해는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달에게 말을 거는 거야. 너를 본 순간 사랑에 빠졌노라고."


"그럼 달님은? 달님도 해님을 사랑해?"


소녀의 말에 할머니는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해는 모르겠지만, 해 또한 정말 아름답게 빛나거든. 그런 해를 보며 달 또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단다."




from. 은희

이전 06화[겨울호] 여섯째주, 하다 : 사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