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여섯째주, 하다 : 사춘기

겨울호 여섯번째 이야기 : 일월(해와 달)

by 어느 저자

그 애는 모든 이들의 관심 대상이다. 아니 대상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았었다. 뭐랄까 그 아이는 다른 차원에서 온 아이 같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나오는 앨리스처럼 아마 다른 차원에서 실수로 우리 세계에 빠져들어 온 듯한 기시감을 풍겼다. 어떨 때는 보기만 해도 너무 경이로워서 차마 다가가면 나로 인해 그 아이가 부정이라도 탈까 봐, 멀리서 그저 쳐다보기만 한 적도 있었다. 그 경이로움이 어느 정도였느냐면 만약 이 아이가 스스로 종교를 만든다면 모든 사람이 다 따를 것 같을 만큼이었다. 숭고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그게 그 아이가 지닌 점이었다.


그 날은 유독 해가 쨍쨍했다. 그늘을 어떻게든 없애겠다는 해의 심보가 담긴 듯,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하복을 벗어 던지고 땀이 나도 티가 안나는 새까만 면티를 찾아서 입었던 시절이었다. 선생님께서 혼이라도 내려고 하면 땀 냄새 때문에 갈아입었다고 변명하기도 좋은 날씨였다. 가뜩이나 땀 냄새때문에 제일 괴로운 건 선생님이라, 쉽게 이해해주었다.

그 날도 여김 없이 해가 중천에 떠도 축구에 진심인 나와 내 친구들은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 뛰어나가 미친놈들처럼 뛰어다녔다. 그리고 수돗가 근처에 모여 물싸움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게임으로 가위바위보에 진 사람한테 물을 몰아서 쏴주기로 했는데, 하필 내가 져서 질끈 눈을 감고 차가운 기운이 오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하나 둘 셋 '하고 친구들이 외쳤고, 약간의 물줄기와 순간의 정적 그리고 그 순간 ' ㅈ댔다 ' 라는 친구의 말과 함께 도망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친구들은 온데간데없고 뒤를 바라보니 그 애가 물에 젖은 채 서 있었다.


그 아이는 무척이나 놀란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그 아이의 얼굴을 정면으로 봤는데, 그 애의 얼굴에 정면으로 맞았는지. 얼굴에 물줄기가 그대로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고, 물이 줄기가 줄기를 이어 흐르고 있었다. 그 물줄기가 생김에 따라 햇빛이 그대로 담겨 천천히 반짝거렸다.


“아….” 나는 놀라 말문이 막혔고, 한참을 쳐다봤다.

모든 흐름이 멈춘 그 상황에서 정적을 깬 건 그 아이였다.

“야 그렇게 쳐다보기만 할꺼야?”

“ 아 안녕, 아, 안녕이 아니라..아, 정말 미안.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이거 어떻게 할 거야 ? 다 젖었잖아 “

“ 어, 아마 보건실에 가면 여분의 옷이 있을 거야.”

그러자 그 아이는 휙 돌아서 보건실로 향했고, 나는 뻘쭘함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너 뭐해? 같이 가야지?” 그 아이가 고개를 돌려 외쳤다.

“ 어? 미안 ”라며 그 아이를 따랐다.


나는 시작이 어려운 아이였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하고 그 매력을 알면 겉잡을 수 없이 그것만을 쫓는 성격이었는데, 그것이 사람한테도 적용되는지 그때 알았다. 그렇게 그 아이를 따라 보건실에 가고 그 이후로도 간단한 인사가 오고 갔다. 더 큰 욕심을 내서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그 아이의 대답은 늘 단답 아니면 침묵이었다. 하지만 꾸준하게 말을 걸었고, 언젠가부터 그 아이가 먼저 인사하는 적도 종종 있었다. 어쩌면 그 아이로서는 그렇게 인사하는 게 나 하나뿐이라 더 쉽게 마음을 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치 없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이도 저도 아닌 관계로 학기가 종료되었다. 학교 안이라는 공간에서 그나마 시간이라는 변수만을 감당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큰 변수를 둘 다 감당해야 했다. 나는 그것을 이기지 못했고, 그렇게 그 애의 기억이 저편으로 밀어나고 있었다.


긴 장마가 끝나고 다시 해가 구름 사이를 비집고 자태를 내뿜고 있던 날이었다. 방학답게 선풍기 바람 앞에서 누워서 수박을 먹고 있었는데, 평소 내 옷차림이 맘에 안 들었던 엄마가 쇼핑하러 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무시한 채 심드렁하고 누워있었더니, 엄마가 “맨날 검은색 옷만 입으니 누가 널 좋아하겠냐”라며 소리치는 바람에 그 성화에 못 이겨서 결국 일어나 옷장 문을 열었다. ‘진짜 다 검은색이긴 하네, 검은색이 얼마나 좋은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무거나 꺼내서 주섬 주섬입고 엄마를 따라 집 밖을 나섰다.


여러 쇼핑몰 매장을 들려서 계속 옷만 보고 있던 중이었다. 습관적으로 검정 옷들만 보다가 한 소리를 듣고 색깔이 있는 쪽을 보고 있었다. 이러다가 옷들에 파묻혀서 질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얀 셔츠가 눈에 들어와 그것을 집을 때였다.


“ 하지 마시라고요”

라고 누군가 외쳤고, 어딘가 익숙한 소리에 그 소리를 쫓아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애였다. 한 젊은 할머니에 맞서 그 아이가 있었다.

“너, 지금 어디 앞에서 소리지르는거냐. 버르장머리없이 ”

“할머니, 그 정도만 하세요. 더는 저희 집에 관여하지 마세요. 저 멀리 떠날 거예요.”

“ 무슨 돈이 있어서? 니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또 떠나. 얌전히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고생을 하니 ? 네 아빠도 참 ”

“아니요. 할머니, 앞으로 저 만나러 오지도 마세요. ”


할머니께서 손이 올라갔고, 갑자기 무슨 용기가 나았는지 그 아이의 손목을 잡고 쇼핑몰에서 나왔다. 나오면서 ‘아차 엄마는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옆에 그 아이를 본 순간 다른 차원으로 넘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저 우리는 그 차원에서 달리고 있었다.


숨이 혀뿌리까지 차오를 때쯤 뛰는 걸 멈추고 앞을 보자. 강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천천히 해가 나른하게 뿜어내는 열기와 주변의 풀 내음, 사람 내음이 뒤섞인 온갖 내음들을 들이마셨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앉아있었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그저 해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성이 돌아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 ‘ ‘이 손목을 언제 놔야 하지’ 등등 온갖 잡생각이 들어찰 때쯤이었다.


“고마워”라고 그 애가 말했다.

“ 괜찮아?”

“ 응…. 조금 부끄럽네…. 그래도 고마워 아마 너 없었으면 못 이기는 척 다시 할머니를 따라갔을 거야. ”

나는 속으로 ‘왜? 그 할머니가 친할머니야? 어디를 따라가?’ 등등 오만가지 질문들을 뇌에서 쏟아내고 있었지만 질문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그저 듣고 있었다.

“ 나 다음 학기부터 없어. 떠날 거야 ”

“ 아.. 그래…?”

“뭐야…. 어디로 가냐고 묻지도 않네 ”

“물어봐도돼?”

“ 사실 나도 몰라. 그냥 아빠 따라가는 거야. ” 그리고 그 아이의 긴말이 이어졌다.


“ 어렸을 때 엄마랑 아빠랑 이혼했거든, 나는 아빠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어. 그래서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라. 아무튼, 우리 외할머니가 손녀가 나밖에 없거든 그래서 종종 외할머니가 이 동네에 오셔…. 근데 올 때마다 아빠 욕을 하시는 거야. 정작 떠난 건 엄만데, 우리 아빠만큼 가정에 헌신적이었던 분이 어딨다고… ”

“아 정말? 많이 속상하겠네, 그럼 너는 아빠랑 떠나는 거야?”

“ 응 빠르면 다다음 주 늦으면 이번 달 말 ”

“ 그럼 이제 못보네…?”라고 말하자 그 아이가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봤다.

뭐라도 찾는 듯 계속해서 정확하게 쳐다보자 당황해서 그 눈을 피했다. 더는 바라보면 몽롱해질 것 같은 기분이라 아찔했다. 그러자 그 아이가 피식 웃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날 향해 자리에 앉으라며 가르치곤 다시 그 순간에도 묵묵하게 지는 해를 바라봤다. 나도 덩달아 앉아서 가라앉는 해를 봤다.


“있지. 해는 정말 불쌍한 것 같아.” 라고 그 애가 말했다.

“왜?”

“그냥 사람들이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해가 진다고 하잖아. 사실 해는 매일 그 자리에 있고, 뒤돌은 건 우리인데, 마치 해가 떠난 것처럼 말하니까. ”

“그러네..”

“너는 그러지 마, 네 눈앞에 없다고 해서 함부로 없다고 말하지 마.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그 자리를 붙잡고 힘들게 서 있을 테니까 ”


그 뒤로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해가 지자. 자연스럽게 일어났고 그 아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환히 웃으면서 잘 가라고 했다. 집에 오자 엄마가 화를 냈고, 그것을 듣는 둥 마는 둥 지나쳐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내 침대 위에는 엄마가 사오셨는지 아까 봐두었던 흰색 셔츠가 놓여 있었고 인제야 작별이 실감이라도 난 듯 눈물이 핑 돌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당황한 엄마가 들어왔고,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달랬지만 이미 한번 쏟아낸 물줄기는 줄기를 이어서 떨어졌다. 나는 그 애를 때문에 운 것인지 그 애 대신에 울고 있는 건지 모른채 계속 무언가를 토해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오늘도 변함없이 뜨는 해를 바라볼 때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그러면 곧잘 내가 내 기억의 수면에 그 아이를 올렸다가 다시 천천히 가라앉힌다. 그 아이가 분명 어딘가에 항상 있다는 것을 믿기에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왜 그 아이를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시절에만 존재했기에 아름다운 기억된 것이라고, 그러기에 지구가 공전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저 그 기억에서만 맴도는 이유가 그 시절의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곧이어 나 혼자 속으로 말한다.

나에게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여름, 해와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었다고.



from.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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