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여섯번째 이야기 : 일월(해와 달)
작은 경비행기에 몸을 싣고 눈을 붙인 지 세 시간쯤 지났을까.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에 졸린 눈을 애써 뜨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산 듬성듬성 묻어있는 만년설, 깊은 푸른색의 냉기가 느껴지는 넓은 바다, 회색빛과 초록빛이 섞인 대지의 형태는 아주 낯선 곳에 도착했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나를 이곳까지 이끌었던 이유는 단 한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
남미 대륙의 최남단, 남극과 고작 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그 장소. 배낭 메고 집을 나섰으면 세상의 끝에는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그거야말로 ‘세계여행’ 아니겠냐며 여행을 꿈꾸던 시절, 나는 이곳에 꼭 오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다. 세상의 끝이 절벽이 아니라는 걸, 이 행성이 둥글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겠다는 다짐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려 산장처럼 생긴 작은 공항을 빠져나오니 옅은 자작나무 향이 물씬 풍겼다. 잘 닦인 도로와 북유럽 느낌이 나는 뾰족한 지붕의 집이 듬성듬성 있는 작은 도시는 조용했다. 아니, 고요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듯했다. 거대한 몸집을 바다 아래 숨긴 해빙처럼, 마을에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을 둘러싼 설산들은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었다. 설산 넘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해가 여전히 그 따사로운 빛을 내뿜고 있었는데, 극지방에도 햇빛이 닿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세상의 끝에서의 하루는 생각보다 무척 심심했다. 삼십 분 정도 걸으면 시내를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마을엔 우주 너머로 이어지는 절벽이나 거대한 유적지 같은 건 없었다. 대신 오후 10시가 되어서야 해가 지기 시작하는 아주아주 긴 낮과 짧은 밤, 적막한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우수아이아 간판, 가끔 마주치면 친절한 웃음을 지어주는 주민들이 있었다. 할 일은 없고 매력적인 풍경을 가진, 친절한 주민들이 거주하는 도시. 이런 도시는 게으른 여행자에겐 완벽한 도시가 되곤 한다. 나는 그곳에서 가끔 걸었고, 가끔 나가지 않았으며, 꽤 자주 멍을 때리며 극지방의 하루를 보내곤 했다.
우수아이아에서 매일 겪는 하루는 이런 식이었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숙소 주인이 정성스럽게(그래봤자 식빵에 누텔라를 바르는 식이지만) 차려둔 아침을 먹는다. 그러곤 따뜻한 차를 들고 낡은 라디에이터 앞에서 굳어있는 몸을 녹이며 창 넘어 남극으로 이어질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파타고니아 대부분의 집이 그러하듯 숙소에는 늙은 개와 젊은 개, 그리고 도도한 검정고양이가 한 마리씩 있었는데, 숙소에 머무는 날이면 그 친구들과 노느라 하루가 다 지나갔다. 늙은 개는 활발하고 사람을 유독 좋아해 매번 한 손 가득 침을 뭍이곤 했으며, 젊은 개는 소파에 누워 잠을 자다 옆에 앉으면 고개를 슬쩍 들어 쳐다보곤 했다. 검정고양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방에서 보내다 심심해지면 거실로 내려왔는데, 고양이가 등장하면 개들은 고양이의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움직이는 것이 고양이가 이 집의 서열이 가장 높은 듯했다. 가끔 두 개가 다투며 집안을 어지럽힐 때면 고양이는 낮게 울었고 그러면 둘은 정신없이 싸우다가도 정신을 차리곤 눈치를 살피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웃겨 온 종일 그들의 삶을 관찰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거리로 나왔다.
배를 채우고, 바다를 관찰하기도 하고, 곧 있을 트래킹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경도 해보고, 그냥 목적지 없이 걸어보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설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를 꽉 채우고 돌아와도 해는 늘 떠 있었다. 씻고 잘 준비를 할 때가 되어서야 수평선 끝에 빨간 태양이 걸려있었다. 극지방에서 석양을 보는 일은 하루가 다 지나갔음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 이상한 시간 패턴에 적응이 되질 않았다. 마치 처음 시차를 겪는 사람처럼 비틀비틀 거렸다. 쉽게 잠들지 못했고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밥도 제때 먹는 법이 없었다. 해가 다른 시간에 졌을 뿐인데, 나는 이상할 만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하루를 보냈다. 극지방에서 할 일이 많지 않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해가 지는 시간’이 상대적인 시간일 거라곤 생각해보지도 못한 탓이었다.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우수아이아에선 달과 별은 만나기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밤이 짧다는 건 많은 것을 뜻했다. 두려워할 시간이 적어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외로워할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느 연인이 낭만적인 밤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고, 야경이 아름다운 레스토랑에겐 슬픈 일이기도, 감성에 젖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늘 이상한 적막이 감돌았다. 길고 충분한 해는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었고, 짧은 밤은 건조한 세상을 만들어냈다. 세상의 끝은 밤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숨겨져 있는 세상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걸 보고는 함께 있던 짝꿍에게 얘기했다.
“해가 이제야 진다.”
“그러네.”
“하루가 되게 긴 것 같아.”
“실제로도 하루는 길지 않을까? 밤에 가려졌을 뿐”
“그런가.”
다른 계절의 극지방을 떠올려 보았다. 해는 짧고 달과 별로 가득 찬 하루. 외로움을 견뎌낼 긴긴밤. 아무리 잠이 들어도 끝나지 않는 어둠. 어쩌면 세상의 끝의 절벽은 땅이 아닌 하늘에 있는 건 아닐까. 겨울철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모를 밤의 공간이 짧디짧은 해의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절벽. 그 반대로 떨어진다면 우주 바깥으로 나갈 그 공간. 햇빛 끝자락에서 애써 버틸 그 시간들을 떠올리다가 해가 긴 때의 우수아이아를 방문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발 딛고 해의 공간을 받아드릴 수 있으니 말이다.
“석양 보러 가자.”
밤, 아니 그냥 오후 열한 시. 극지방의 석양을 보러 나섰다. 해가 질수록 달은 밝아진다. 하늘은 푸르러지고 수평선의 끝은 옅은 주황빛으로 가득 찬다. 반대편에는 짧은 밤을 보낼 달이 뜬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공존할 수 없는 존재들은 서로의 순서를 숨을 죽이고 기다린다. 작은 어둠이 내리고, 극지방의 하루는 지나간다.
- 비행기에서 바라본 우수아이아
- 우수아이아 시내
- 숙소의 늙은 개와 함께
from. 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