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호 마지막 주제 : '편지'
타닥타닥, 리듬감 있게 들리는 빗소리에 괜스레 흥얼거리게 되는 날입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더위도 비가 몰려옴에 주춤해져 버렸고,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가을이 다가옴을 알려주고 있는 요즘이에요. 이제는 창문을 열고 잠이 들면 아침에 목이 살짝 칼칼해지기도 한답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여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는데, 이렇게 여름의 끝이 보이니 웃기게도 아쉬운 마음만 가득 들게 돼버렸어요. 이번 여름엔 더위라는 핑계로 많은 것을 미루기만 한 것 같아서, 여름의 찬란함을 온몸으로 느껴보지 못한 것 같아서. 그래서 그런지 지금 오는 비가 조금 더 오래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해요.
시언님의 여름은 어떠셨나요? 저처럼 여름의 더위에 굴복해 집 안에만 숨어 있었을까요? 아니면 무더운 더위 뒤편에 숨어있는 찬란함을 수집하는 나날이었을까요? 아마 시언님의 채집통 안에는 아름다운 여름의 파편들이 가득한, 그런 계절이었지 않나 상상해봅니다.
편지의 대상이 시언님이라는 메일을 받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시언님의 글을 처음부터 차근하게 읽어보는 것이었어요. 글을 읽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시언님의 글은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기분을 주곤 한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저는 아드리아해의 석양을 바라보았고, 저의 약점을 마주보기도, 암벽을 타고 오르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응원하고 아찔해 하기도 했죠. 서로의 사랑에 지친 커플을 보며 아쉬워하기도, 찬송가가 흐르는 시장 한편에 서서 소름이 돋기도 했어요. 시언님의 글은 좋은 영화를 본 뒤 깊게 남는 여운처럼, 꽤 오래도록 곱씹게 되는 힘이 있어요.
여기까지 편지를 읽은 시언님은 아마 제가 누구인지 약간은 짐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속으로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요. 손발이 잘 안 펴질 수도 있겠지만,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엔 시언님의 글을 좋아하는 한 독자로서, 시언님이라는 사람에 매력을 느끼는 한 팬으로서, 오로지 진정성만을 담았으니 조금의 오그라듦은 잠시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ㅎㅎ
요즘 들어 유독 저희가 처음 만났던 장소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아마 그곳이 지금 이맘때와 비슷한 날씨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높은 습도와 쨍한 햇볕으로 얼굴이 찡그려지기도 하지만, 아침과 저녁엔 선선한 바람이 불어 온몸을 감싸곤 했죠. 시원한 맥주가 참으로 잘 어울렸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시언님의 첫인상은 뭐랄까, 그 장소와 같은 '여름' 같은 사람이었어요. 청춘영화의 배경이 대부분 여름인 것처럼, 제게는 시언님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빛나 보이기도 했답니다. 다재다능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속이 깊고 남을 배려하던 모습이, 과거의 힘듦과 상처를 가지고 있을지언정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그럼 모습들이 말이죠. 뭐, 지금은 "무슨 주인공이야ㅋㅋㅋㅋㅋ" 이러면서 놀리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여름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푸르다, 찬란하다, 싱그럽다는 표현들이 가득한 그런 여름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계절로 따지자면 초겨울 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글 또한 그 계절 같은 글을 쓰고 싶기에, 그래서 시언님을 항상 동경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언님의 글에는 여름의 아름다운 단어들이 가득 표현되어있기에, 딱 시언님의 글을 쓰고 있기에 말이죠. 궁금해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피드백을 진행할 때 시언님의 글이 제일 어려웠답니다. 어떤 글이든 읽다 보면 순식간에 읽게 되는 흐름 때문인지, 전체적인 분위기도 세세한 묘사도 모두 제 취향이다 보니 피드백이라기보단 감상문을 발송했었죠. 그렇기에 이 자리를 빌려 작은 욕심을 말씀드리고자 해요. 앞으로도 꾸준히 매 계절의 시언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언님이 펜을 놓는 일이(지금은 키보드 일라나요?ㅎㅎ)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어떤 곳이든, 어떠한 글이든, 항상 시언님의 글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럼 더는 제 손발을 지킬 수 없을 것만 같아 이만 마침표를 찍도록 할게요. 항상 고마워요, 시언님.
진심을 담아서
from.어느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