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느 저자 Feb 27. 2022

[가을호] 첫번째주,하다 : depression

어제 저는 죽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당신에게 소개하고 싶었으나, 당신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됐습니다. 요즘 힘들었냐며 저를 안아줄까요? 아니면 병원에 가보라고 할까요? 너도 그 아이처럼 똑같다고 할까요.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닐 때쯤에, 그쯤에 불행하게도 당신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큼큼 여보세요?”
“저예요. 수정 씨 잘 들어갔어요?”
“ 네 딱 마침 집에 들어와서 씻고 누웠어요” 
“ 오늘 어땠어요?”
죽고 싶었어요. 하늘이 소름 끼치게 파랗고 순식간에 저를 덮칠 것 같았어요. 집에 돌아가는 길은 너무나도 길어서 긴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았어요. 앞에 보이는 빛을 쫓아서 죽을힘을 다해서 가야 하는데, 자꾸 뒤만 쳐다봤어요. 그러다 보니 걸음이 느려지고 시야가 흐려지고 숨이 가빠오고..
“ ..좋았어요. ”
“ 저도요. 오늘 푹 자고 낼 연락해요. 잘 자요.”
“네, 기린 씨도….”

손에 힘을 풀어 그대로 핸드폰을 떨어뜨린 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거미줄을 치우려고 라이터로 이리저리한 흔적들이 보이더군요. 흰 벽지에 검게 그을린 그 모습들이 오늘따라 안쓰럽게 보입니다. 저는 분명 무언가를 지우려고 한 것인데, 오히려 무형을 새기려고 한 흔적들 같아, 괜히 허공에 손을 벅벅 긁어봅니다. 

그러다가 더듬더듬 머리맡을 짚어 핸드폰을 집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바라보지요. 그 어떤 표정 변화 없이 손끝에 감정을 실어 `좋아요`를 누르고 넘기고 댓글을 달고를 하다 보니, 전에 봤던 게시물이 보입니다. 그러면 그 앱에서 나와 유튜브에 들어가서 누르고, 누르고 또 누릅니다. 아. 벌써 새벽 2시네요. 핸드폰을 다시 내려두고 이불 속에 더 파고듭니다. 더 더 온기를 느끼고 싶어 두 팔로 두 무릎을 감싸 안다가, 그래도 올라오는 추위에 이리저리 뒤척이다 기어코 다시 일어나 펜을 잡아봅니다. 

하얀 백지에 파란색 펜으로 오늘 했던 일들을 꾹꾹 힘을 주어 적어봅니다. 그와 이것을 먹었고, 먹었으면서 이런 대화를 했고, 다 먹고 어디를 갔고, 가면서 이런 대화, 여기선 내 손을 잡았고 …. 를 쭉 적어봅니다. 그 위에는 오늘 했던 일들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그 전 장에는 오늘 했던 일들과 같은 내용이, 그 전전 장에도 있습니다. 그 전전전 장에도 같은 내용이 있음을 확인했을 때, 저는 스탠드를 끄고 다시 이불 속으로 어둠을 향해 벽에 가로막혀 파고들 수 없을 때까지 계속 파고듭니다. 고개를 두 무릎 사이로 처박고 더, 고개를 두 발 사이로 처박고 더 파고듭니다.  

그 아이는 아파트 1층에 삽니다. 엘리베이터에 오를 일도, 내려갈 일도 없이 그저 평이한 1층에서 살고 있지요. 지상과 제일 가까워 사람들과 가까울 거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이웃과 함께 밀착된 공간에서 오르고 내려간 적이 없으니, 누구보다 고립되어 살고 있지요. 뭐 어쩌면 그 아이의 성격과 딱 맞춤인 층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평이한 성격 말이지요. 

그런 그 아이에게 누군가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봅니다. 아니요. 없습니다. 
그런 그 아이에게 누군가는 본인이 잘못했냐고 물어봅니다. 아니요. 없습니다.

아 아니야 그 아이가 아니야 

그런 저에게 누군가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봅니다. 아니요.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 누군가는 본인이 잘못했냐고 물어봅니다. 아니요.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 누군가는 표정이 어둡다고 물어봅니다. 아니요.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 누군가는 …

오늘은 오랜만에 그를 만났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를 뺀 채 수정이가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저와 인연을 같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남들이 말하는 연인은 아니지요. 그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희의 온도는 딱 36.5도, 두 사람이 모여 더 높은 온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온도를 유지할 뿐이지요. 저는 평범한 온도가 좋습니다. 

그와 길을 걷기만 해도, 그와 손을 잡아도, 영화를 볼 때도 저를 뺀 수정이는 미소를 짓습니다. 그가 재밌는 장난을 칠 때는 저를 뺀 수정이가 깔깔 웃습니다. 그러다가 그와 헤어지고 아파트에 정적이 서리면 제가 조용히 일상으로 합류하는 하루가 반복됩니다. 

수정이는 이럴 때마다 저를 매번 부정하곤 합니다. 저를 떼어내려고 문을 걸어 잠그거나, 대답을 안 하거나, 무작정 힘을 주어 걸어 나가곤 하지요. 그렇지만 저는 여기에 계속해서 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제풀에 못 이기면 결국 주저앉고 아이처럼 엉엉 울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기에 계속해서 있습니다.

여전히 저는 아직도 아파트 1층에 삽니다. 엘리베이터에 오를 일도, 내려갈 일도 없이 그저 평이한 1층에서 살고 있지요. 이웃과 함께 오르고 내려간 적이 없으니, 누구보다 고립되어 살고 있지요. 뭐 어쩌면 제 성격과 딱 맞춤인 층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평이하고 괴상한 성격 말이지요. 

  


from.하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호] 마지막주 : 여름을 담아, 시언님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