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고양이 한 마리였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한편에 서서 어딘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길고양이는 이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상황과 반대로 쭈그려 앉아 고양이를 부른 건, 며칠 전 길고양이에 대한 글 한 편을 보고 내내 머릿속 안에서 맴돌았던 추억 탓인지도 모르겠다. 야옹- 하며 다가오는 고양이를 보고 “잠시만 기다려.”란 말을 남긴 채 서둘러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딸랑-
그곳의 3월은 1년 내내 무더울 것 같던 이미지와 다르게 아침저녁으로 조금 쌀쌀한, 늦가을 같은 날씨였다. 이집트 다합, 그곳에서 나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어느 날 숙소 앞에서 애달프게 울고 있던 고양이를 발견했고, 사람들과 근처 슈퍼에서 참치캔 하나를 사 와 챙겨주던 그 날이 새끼 고양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고양이는 함부로 만지기 무서울 정도로 너무 작고 연약해 보였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뿐이었다면 잊혀졌을 기억이었겠지만, 며칠 뒤 고양이는 다시 숙소 앞에 나타났다. 야옹 하며 애달픈 목소리로 울던 고양이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나의 다합의 일과에는 ‘고양이 밥 챙겨주기’가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다합에 오래 지냈던 K가 건넨 말이 있었다. “너무 정을 주지는 마.” 그때는 그 말을 듣고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K는 여행자의 손을 타버린 새끼 고양이의 운명을 예상했기 때문에 경고를 건넨 건 아니었을까 싶다. 언젠가 떠나게 될 나를 걱정한 한마디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언젠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던 나의 무책임한 행동을 비난한 건 아니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는 어미처럼 나를 따랐고, 때가 되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숙소 앞으로 찾아왔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지만, 새끼 고양이에겐 자신을 돌봐줄 보호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진실을 깨닫게 된 건 다합을 떠나기 며칠 안 남았을 때였다. 이미 사람 손을 타버린 고양이는 험난한 이집트에서 길고양이로 살아갈 수 없어 보였고, 그 모습은 지난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했다. 애초에 밥을 챙겨 주지 말걸, 아니 밥을 챙겨줘도 너무 예뻐하지는 말걸, 숙소로 따라 들어오던 고양이를 냉정하게 내칠 걸, 이름을 지어주지 말걸. 앞날을 생각하지 않던 나의 무책임함은 결국 마지막 날, 남아 있는 다른 이에게 잘 부탁한다는 한마디로 떠넘기며 상황을 외면한 채 떠나버렸다.
이후 다합에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사람들이 돌보며 집고양이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양이의 소식이 간간이 들려올 때마다 작은 안도감이 들곤 했다. 길고양이로 살다가 죽지 않아서, 걱정과 별개로 죄책감을 모두 떠맡지 않아도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 때마다 놀라곤 했다. 과연 고양이를 돌보던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던 것일까. 연민이었을까, 그런 나를 보며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였을까, 그저 여행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던 걸까. 그 모두였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끝엔 죄책감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마음만 남아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사하는 도중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지만,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간혹 핸드폰을 보다 보면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지 마세요] 라는 글을 발견하고는 한다. 사람 손을 타버리게 되면 자급자족할 능력이 떨어지고, 길고양이의 무리에서 소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끝까지 책임질 생각이 없다면, 애초에 처음부터 희망을 주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이해되는 내용이지만 막상 길거리에서 배고프다며 울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것 또한 마찬가지다. 길에서의 생활을 위해 고양이의 배고픔을 외면하는 것, 그저 연민이라는 감정 하나로 무책임한 행동을 행하는 것. 과연 어떠한 것이 고양이에게 옳은 일인가는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가끔 '고양이는 살아있을까?'라는 의문을 스스로 건네곤 한다. 나는 무엇도 장담할 수 없었다.
딸랑-
편의점을 나와 고양이가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디에도 길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몸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참치캔을 들고 있는 내 어리석을 행동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from.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