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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아무나 하나

땅을 밟고만 다녀본 리얼 초보의 좌충우돌 도시텃밭가꾸기

by moca and fly


초보라는 말도 부족하다. 진짜 초보? 생초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농부의 텃밭 가꾸기 일기




#1 언제 심어야 해?


씨앗도 사놓고 모종도 사놓았지만 날씨가 도와주질 않아서 느긋하게 빈땅으로 몇 주를 보냈다. 어떤 날은 초미세먼지를 핑계로 어떤 날은 비가 올 것 같다는 핑계로 또 어떤 날은 날이 서늘하다는 핑계로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안될 것 같은 4월 하순으로 가던 지난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모종을 심고 씨앗을 뿌리기로 했다.




#2 필요 없는 것들은 덜어내자


밭을 배정받고 가장 궁금했던 게 바로 밭마다 누구랄 새도 없이 쳐놓은 그물과 내 땅 표시의 쇠막대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우리도 해야 하나 했지만 사실은 내 땅을 표시하는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구입했던걸 반납했다. 새가 먹는 것도 조금 용서해 주고 그리고 옆집이 조금 넘어와도 용서해 주는 걸로 때가 돼서 토마토나 가지처럼 지지대가 필요함 그때 지지대를 다시 새우기로 했다. 물론 비닐 멀칭도 하지 않았다. 뭣도 모르지만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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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렇게 심으면 되는 거야?


씨감자와 오이 모종 토마토 모종 그리고 상추 씨앗 땅콩 그리도 토종 당근 씨앗을 뿌리기로 했다.


처음이다 보니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높이와 간격을 따져가며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을 넘어가고 있다. 생초보 농부는 물 한병도 챙겨가질 않고 고스란히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만만히 본거 같다. 4월 초인데 얼굴이 익어가는 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엉덩이에 뭐 묻을까 쪼그리고 앉았던 자세를 털석으로 자연스럽게 바꾼다. 에라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심는 건 맞는 거야?


점점 좁아지는 간격 점점 대충 심는 모양새 에라 모르겠다. 검색을 해보고 다시 심고 맞나? 맞아??




#4 뭘 심는 거유?


몇 시간째 쪼그리고 앉아있는 두 아줌마의 모습이 참으로 불쌍했나 보다. 지나가던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우릴 보고 물으신다.

뭘 심은 거야??

아~ 네 여긴 감자 여긴 땅콩 표정이 점점 재미있으시다는 아니 표정이 이걸 어쩌면 좋노? 하는 표정이시다. 호미는 있냐고 물으시더니 소매를 걷으시고 옆에 앉으신다. 그리고 밀가루를 만지시는 거 마냥 흙을 아주 부드럽게 버무리신다. 나물 무치시는 거처럼 보드랍게 손에 착착 붙게..


이때 느꼈다. 아~ 고수이시구나.


심었던 씨앗을 다시 꺼내고 고랑을 다시 만드시고 자연스럽게 씨앗과 모종의 집을 만들어내신다.


어때? 이제서야 흙이 좀 부잣집 흙 같지 않아? 같은 재료로 엄마가 만든 음식과 내가 만든 음식의 차이가 뭔지 안다 오늘 어르신이 만들어내신 밭 모양은 딱 그랬다. 엄마가 만든 음식은 콩나물무침 하나도 다른 클래스가 느껴잔다. 어르신의 밭을 만지는 손길이 그랬다.


감탄하는 사이 누군가 등 뒤에서 소리친다.


"아버지 우리 집 밭은 어쩌고

이집꺼 먼저 해주심 어떻게요오~"


이런 이런.. 우리가 엄청 딱해 보였다는 증거다. 아드님도 우리 하는 모양새?를 보더니 더는 타박하지 않고 돌아선다. 미안하고 죄송하고 감사하다 두 분 모두에게..



#5 그래서 밭은 만들어진 거?


그렇게 하여 고수의 손길로 우리만의 텃밭은 모양새를 갖추었다. 몇 시간 쪼그리고 하던 그걸 단 몇십 분 안에 부잣집 밭을 만들어 주셔서 상추 오이 땅콩 토마토 감자 당근 모두 다 심었다.



여기서 텃밭일지 팁


물을 충분히 주고 흙을 섞어준 후 모종을 심는 게 좋다.


토마토나 가지 오이는 냉해에 약하기 때문에 미리 심지 말고 모종이 시장에 팔아도 5월 초 넘어서 심는 게 낫다


토마토 가지 오이는 키가 커지니 텃밭 둘레에 쪼르르 심어도 좋다.


땅콩류는 까치들이 먹을 걸 각오하고 심자! (수확을 못할 수도 있다는 말씀)-

우리 남편 우는소리 들린다아~~




어르신은 물으셨다. 텃밭을 왜 하고 싶었냐고 나는 그동안 너무 쉽게 얻어먹고 산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것도 맞지"라고 하시면서 흙을 만지다 보면 마음이 편해져서 힐링이 된다고 정신건강에 좋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생각해 보니 흙을 만지는 몇 시간 동안 머릿속이 정지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늘 풀가동되고 있는 나의 뇌가 흙으로 잠시 쉼표를 찍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이제 어엿한? 밭 모양새를 갖췄으니 이제 잘 키우는 일만 남았다. 생초보 농부이지만 어쨌든 나의 농작물에게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많이 많이 들려줘야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보여주겠지 싶다. 마음이야 벌써 채소를 뜯어서 고기파티할 생각에 아주 들떴지만..


어쨌든 초보 농부의 텃밭 일기가 시작됐고 좌충우돌 농부 성장기도 계속될 예정~~부디 적을이야기가 별로없이 잘키워 잘먹었다로 끝내고 싶은데 어.,어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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