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by moca and fly

올해로 이 집에 이사 온 지 4년 차가 되어간다. 아이들이 꼬꼬마였던 아가시절을 지나고 보니 어떤 날은 집이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각자의 시간과 해야만 하는 일이 늘어나는 그들만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그러다 보니 위층 아래층의 소리가 우연히도 더 잘 들릴 때도 있다. 아~ 위층은 아들 녀석이 있구나.( 가끔 노래 부르는 소리와 그의 목소리가 뜨문뜨문 들린다) 물론 아이들이 아주 조용할 때만이지만 아이들이 어린 그 시절은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왜냐 우리 집이 더 시끄러우니까 ㅋㅋ



그러던 2주 전 엘리베이터에는 우리 바로 윗집이 2주간 대공사를 시작한다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그전에 살던 집은 남자아이 한 명만 있어서 층간 소음이 거의 없었는데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떤 이웃을 만날까 기대도 됐지만 요란한 소음이 얼마나 지속될지 걱정도 되었다. 물리적인 소음의 기간이 지나가면 공생하는 그 시간 동안 생기는 층간 소음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경험치만큼의 걱정이었다.



첫날부터 공사가 요란했다. 바닥공사부터 샷시까지 뼈대만 빼고 모두 다 들어내는 모양이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드릴 소리와 자잘한 망치소리가 며칠을 집을 울려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2주간 약속시간만큼의 공사기간 동안은 소음을 감수하기로 했으니 2주가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위층 공사 중 하수도에 문제가 생겨 우리 집으로 주인분이 다녀가는 일이 생겼다. 준비되지 않은 위층과의 대면이었다. 이사온 윗층은 5살 6살 아가들을 키우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테리어 쪽 일을 하다 보니 어쩌다 혼자서 셀프 인테리어를 하게 됐다며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주었다.


남편이 전해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의 첫 아파트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 어린 시절 셀프 인테리어를 해보겠다며 몇 날 며칠을 아이들을 친정에 맡기고 페인트칠을 여러 번 해서 말리고 덧칠하고 그리고 우리가 살 가구를 리폼하고 했더랬다. 그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둘이 소위 말해 막노동?를 했음에도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며칠을 먼지 구덩이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했는데도 변신한 새집에 너무너무 만족해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위 사서 고생을 한 거였다. 그 당시 싱크대 공사를 해주시던 업체 분이 제일 힘든 인테리어 부분을 직접 하시는 거라며 혀를 내둘렀는데 그건 그 작업을 하고도 그때는 몰랐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야 우리가 미친 짓을 했.,.구나 하면서 둘이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첫 입주를? 하던 날 아이가 질질 끌던 의자 소리에 바로 인터폰으로 시끄럽다고 전화를 받았던 기억도 같이 소환됐다. 어이쿠 이게 바로 신고식인가? 하며 남편과 오싹해하던 기억과 함께 꼬맹이였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돼가던 때까지 내내 발소리도 지적을 해가며 그 아파트에서 몇 년을 살았다.



위층 주인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우리의 젊은 시절 에피소드가 불현듯 생각나면서 좀 다른 이웃이 되고 싶어졌다.


어린아이를 키우면 무조건 조용히 하겠다며 엘베만 타면 죄송 모드로 변신하던 그때, 애들은 좀 뛰면서 커도 되라고 말이라도 다정하게 해주던 그 어르신에게는 더 조심했던 그 마음이 떠오르면서 비단 상황이 같아도 결국 결이 다른 마음이 내가 그들과 어떤 자세로 마주하게 될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공사가 다시 재개된 그다음 날부터는 이상하게 그 소음이 그럭저럭 참을만해졌다. 공감되는 그 뭔가가 생긴 것 같았다. 이사 올 그분들이 갑자기 친근감이 들었다기보다는 그 시절 아이를 키우던 내 젊은 시절의 나를 보듯 좀 더 넉넉한 이웃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2주 후 사다리차가 올라가는 걸 보니 이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늘부터 우리 1일이구나...


그리고 학교 갔다 돌아오는 아이의 손에는 달콤한 비타민과 정성껏 손으로 쓴 메모가 들려있었다. 문 앞에 놓여있더란다. 윗집이 두고 간 쪽지와 선물이었다.



쪽지의 내용은 덕분에 이사 잘했노라고 생각한 대로 너무너무 인테리어가 예쁘게 돼서 행복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리고 아이가 아직 어려서 층간 소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며 혹시라도 불편하심 이야기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말이다.




나도 그들이 이사 잘했음을 다행이라고 말하고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길 바란다는 메모를 간단한 간식과 함께 문앞에 올려두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현관앞을 보니 초인종을 누르는건 실례가 될것 같았다.



아파트에 살면 늘 느끼는 층간 소음과 늘 낯선 경계의 태도는 이렇게 한순간의 공감대 형성과 과거의 기억 소환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물론 앞으로 서로가 더 조심해 주는 정말 현실적인 일들이 남았지만 나도 그 옛날의 엘베에서 봤던 어르신처럼 아이들은 좀 뛰면서 놀아야죠라는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마음이 여유로운 그런 이웃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 말 한마디가 아이를 키우는 그들에게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는 대화일지 알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좋은 이웃으로 기억될 차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농부는 아무나 하나